식약처 가이드라인 BMI 30 이상 권고
실제로 지켜지지 않아…
오남용시 망상·환각·조증 유발 위험

일부 병·의원이 식욕억제제를 무분별하게 처방하고 있어 문제다. ⓒ여성신문
일부 병·의원이 식약처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고 식욕억제제를 무분별하게 처방하고 있어 문제다. ⓒ여성신문

 

4월 22일, 포털 사이트에 ‘식욕억제제’를 검색하자 50여 건의 병원 광고 링크가 떴다. 온라인 여성 커뮤니티에  “서울에 식욕억제제를 쉽게 처방해주는 곳이 있냐” 글을 올리자 수십 군데가 댓글 달렸다. 피부과, 이비인후과, 내과, 산부인과 등 진료과목도 다양했다. 그 중 가장 많이 언급 된 두 군데를 방문했다. 

오후 5시, 첫 번째 병원에 방문하자 경비원이 병원이 닫았다며 돌아가라고 말렸다. 이미 일백여 명이 방문했다며 이곳에 방문하기 위해서는 2시에는 와야 한다고 했다. 두 번째 병원에 가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으러 왔다고 하자 간단한 설문지를 작성하게 했다. 키와 몸무게를 적는 란에 솔직하게 ‘167cm, 50kg’이라고 기입했다. 식욕억제제를 먹은 경험에 ‘없다’고 썼다. 

5분 후 만난 의사는 왜 식욕억제제를 먹으려 하냐고 물었고 “몸무게를 유지하려고 한다”고 답했다. “잠이 오지 않을 수 있고 조금 우울할 수 있다. 그럴 땐 두 번 먹는 약을 한 번만 먹으면 된다”고 했다. 바로 처방전을 써주었다. 

처방받은 약은 식욕억제제 P정, 에너지를 소비 촉진시킨다는 감기약 U정, 비만치료제 S정, 변비치료제 M정이었다. BMI지수가 17.93㎏/㎡에 불과한 저체중인 기자는 그렇게 식욕억제제를 한달치 쉽게 처방받았다. 가격은 진료비 포함 총 9만2100원이었다. 

무분별한 식욕억제제 과다 처방이 문제다. 지난 4월 초, 필로폰 양성반응으로 수사를 받는 연예인 양씨가 펜디메트라진 성분의 식욕억제제 8알을 한번에 복용했다고 진술해 식욕억제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식욕억제제는 포만감을 느끼게 해 음식 섭취량을 줄여 체중감소를 유도한다. 대표적인 성분으로 식욕중추를 억제하는 ‘펜터민’과 ‘펜디메트라진’이 있다. 두 성분 모두 향정신성의약품(마약류)으로 두통, 불면증, 뇌줄증 등 신경계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다. 심한 경우 망상, 환각, 조증을 유발한다. 마약 암페타민과 화학구조가 유사해 의존성이나 내성 또한 생길 수 있다. 약품 품질보증서와 식품의약품안전처 가이드라인은 체중 감량이 필요한 사람(체질량지수가 30㎏/㎡ 이상)에 한해 3개월 이내로 복용하도록 제한한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향정신성식욕억제제의 판매량과 부작용 건수는 매년 증가 추세다. 2017년 판매량은 총 2억2968만여개로 1102억원 상당이다. 2014년 1억 8232만여개에서 3년간 25% 증가했다. 지난해 10월 김광수 민주평화당 의원이 발표한 식약처 자료에 따르면 16세 이상을 대상으로만 허가된 식욕억제제가 어린 아동에게 처방 된 사례와 58세 환자가 3개월간 특정병원서 26회 3870정을 처방받은 사례도 있었다. 

무분별한 처방 속에서 부작용을 겪는 환자들 또한 속출하고 있다. 압구정동에 사는 32세 김모씨는 “성형외과에서 처방 받아 2년 복용했다. 160cm에 39kg일 때도 처방받았다. 복용 중 기억력에 문제가 생기고 우울해지고 심장이 심하게 뛰는 증세가 있었지만 살을 빼고 싶은 마음에 끊을 수 없었다”며 “삼개월 전 약을 끊고 두근거림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우울한 증세가 있어 정신과에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박현아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마른 체형이라 해도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에 따라 피검사 후 식욕억제제를 처방할 수는 있다. 그러나 마른 체형의 사람에게 피검사 없이 처방하는 것은 잘못된 진료행위다”라며 “식욕억제제는 3개월 이상 복용이 금지된 약물로써 의사의 엄격한 처방에 따라 복용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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