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몸 손대는 것 주저하는 동안 골든 타임 놓쳐
성추행 시비 벗어날 구체적 지침 필요

남성의 형상뿐인 교구와 심폐소생술 시 여성 속옷 제거 여부, 성추행 시비 등 여성의 심폐소생술에 대한 정확한 지침이 없어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남성의 형상뿐인 교구와 심폐소생술 시 여성 속옷 제거 여부, 성추행 시비 등 여성의 심폐소생술에 대한 정확한 지침이 없어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심폐소생술 교육용 인형을 ‘애니’라고 부른다. 오래전 영국에서 애니(Annie)라는 소녀가 물에 빠져 의식을 잃고 있을 때 심폐소생술(CPR)을 받지 못해 사망했다. 이런 사고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심폐소생술 교구가 만들어졌고 인형에는 애니라는 이름이 붙었다.

정작 우리나라 심폐소생술 교육에는 여성 인형이 없다. 가슴이 납작한 남성 모습 ‘애니’ 뿐이다. 이러한 심폐소생술 교육 모형이 실제 여성 심정지 환자들에 대한 심폐소생술 시행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국에서도 여성이 쓰러졌을 때 성추행 시비 우려로 심폐소생술을 주저하는 일이 있다는 연구가 나와 있다.

2017년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 연구팀은 갑자기 응급환자가 발생한 가상의 상황을 만들고 실험을 진행했다. 남성 마네킹과 여성 마네킹에 대해 심폐소생술과 자동 심장충격기를 사용하는 비율을 측정한 결과, 사람들은 여성 환자(마네킹)에 응급처리하는 경우가 더 적었다.

작년 11월 미국 콜로라도대 연구진은 의료시설이나 의료인이 없는 공공장소에서 여성 환자가 남성 환자보다 심폐소생술을 더 적게 받는다는 기존의 연구결과와 관련한 근거를 찾기 위한 조사를 실시했다. 설문 결과, 남성들이 여성에 대한 심폐소생술을 주저하는 주된 원인으로는 환자에게 외상이 발생할 것에 대한 두려움, 성추행 의혹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여성의 가슴이 심폐소생술을 더 어렵게 한다는 오해, 여성 환자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생각 등이 있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여성에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할 때, 성추행이나 부적절한 접촉이라는 비난을 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경우는 남성이 여성의 2배에 달했다. 연구팀은 “이 모든 원인들은 여성이 위급상황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지 못하거나 지연되게끔 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면서 “심혈관 질환은 성별과 인종, 민족과 관계없이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더 중요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떨까. 대한응급의학회는 남성 애니가 많은 이유가 “국내에서 초기 제작된 모형이 남성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추정한다. “미국에는 흑인 애니나 여성 애니 등이 다양하게 나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기자재 단가 등의 이유로 남성용 애니가 대부분”이라는 설명이다. 여성에 대한 심폐소생술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성추행으로 오인될까 봐 심폐소생술을 꺼리는 인식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국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구조자가 남성인 경우 젊은 여성 심정지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데 대해 의지가 낮은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대한심폐소생협회 는 “심정지 환자는 즉시 심폐소생술을 시행해 주지 않으면 100% 사망한다”며 “의료진이 아닌 일반인도 심정지 환자를 보면 그 자리에서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여성이든 남성이든 똑같이 심폐소생술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성에 대한 심폐소생술 매뉴얼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속옷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지침이 있다. 심폐소생술은 브래지어 등 가슴을 죄는 속옷을 위로 끌어올리고 시행하여, 금속 부품을 사용한 브래지어는 자동전기충격기 사용 시 피부 화상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벗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것이다. 대한응급의학회 관계자는 “한국심폐소생술 지침은 국제지침과 마찬가지로 심폐소생술 시 탈의할 것을 명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한심폐소생협회 관계자 역시 “속옷에 부착된 금속이 전기 충격을 가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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