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애/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상담위원 ilove@lawhome.or.kr

지난 토요일(4월 5일), KBS의 <추적60분>에서는 ‘민법 제781조를 폐하라’는 제목으로 호주제를 다루었다. 민법 제781조는 주지하다시피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르고 부가에 입적한다’는 내용으로 부계혈통의 고착화와 여성차별의 대표적 조항이다. 위 프로그램에서는 호주제 때문에 피해를 받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호주제를 양성평등정신에 어긋나고 민주사회질서에도 맞지 않는 없어져야 할 제도로 자연스럽게 정리를 하였고 특히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르고’ 부분을 정면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기존 프로그램들과 차별화되었다.

그러면서 재혼가정 뿐만 아니라 미혼모 가정, 이혼가정 그리고 일반가정 등에서 겪고 있는 부성강제조항으로 인한 피해를 깊이 다루었고 자녀의 성을 부모가 합의로 정할 수 있고(가족성), 성 변경 조항을 두고 있는 이웃 일본의 사례까지 상세히 소개하여 위 조항의 위헌성과 문제점을 적시했다. 이제껏 어느 프로그램에서도 부성강제조항을 제목으로 한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볼 때 소신 있게 문제제기를 한 훌륭한 프로그램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위 프로그램에서는 호주제 폐지가 지연되는 이유로 호주제 존치를 주장하는 세력이 만만치 않음을 시사하고 그들의 반대 여론을 듣기 위해서였는지 유림측의 인터뷰에도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는데, 유림측이 내세운 호주제 폐지 반대 이유는 대강 이런 것이었다.

첫째, 호주제가 폐지되면 집안의 어른인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우리 고유의 가족제도가 없어짐으로써 위계질서가 없어지고 부모·자식간 그리고 남편·아내간 위아래가 없어진다는 논리이다. 유림측이 아는 가족질서와 오늘날의 가족질서는 너무나도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늘날 가족질서의 흐름은 민주적 가족에 기반을 두고 있다. 아버지 중심으로, 아들 중심으로 가부장권이 군림하던 시대의 가족이 아니라 모든 가족이 평등하고 사랑하며 웃어른을 존경하고 아랫사람을 보듬는 변화된 가족인 것이다.

둘째는, 호주제가 폐지되면 가족이 붕괴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미 1947년에 호주제를 페지한 일본의 경우 가족이 다 흩어져 버렸고 가족의식도 존재하지 않는가. 호주제가 전혀 존재조차 하지 않은 대다수의 국가들의 경우 가족이 붕괴된 상태인가. 호주제가 있어 가족이 존재하고 가족결속력이 강화된다는 논리는 ‘가부장권 부활을 꿈꾸는’ 반시대적인 자들의 억지에 불과한 것이다.

셋째는 호주제가 폐지될 경우 족보도 없어지고 가족사를 기록할 수도 없어 친족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다고 했다. 족보와 호적은 전혀 별개의 개념이며 족보는 호주제가 폐지되어도 원하는 사람들이 기록하고 간직하던가 하면 그뿐이다. 유림측은 호적제도 자체도 이해를 못하는 집단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늘 주장하던 것처럼 호주제는 우리 전통의 제도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김주수 교수께서 일본 판사의 문헌을 보여주며 정리를 해주어 일본에서 들어온 제도임이 명백해졌지만, 100% 양보하여 그들의 틀린 주장이 설사 맞다 하더라도 전통에는 지켜나가야 할 것이 있고 시대 변화에 따라 버려야 할 것이 있음은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이치일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아무런 논리나 설득력도 없이 무조건 호주제 존치를 주장하는 유림측의 주장을 언제까지 받아주고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토론 방송이나 인터뷰 등에서 주장하는 내용도 천편일률적이고 체계도 없어 유림이 우리나라 가족제도의 발전과 유지를 위해 한 일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가족법 개정의 숱한 역사 속에서 유림이 한 것은 개혁의 발꿈치를 잡고 국회에 드러눕거나 국회의원들에 대한 협박 등을 통해 민주적 가족의 발전을 저해해 온 것 밖에 없다. 유림이 과연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보수세력인가. 그렇다면 너무 부끄러운 일이다. 이제는 이들을 과감히 무시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사회의 안정과 존속을 고민하고 진지하게 문제를 접근하는 일부 보수세력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유림측의 눈치를 살피는 언론과 국회는 정말 옳은 일을 위해 정리를 할 줄 아는 용기를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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