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연출의 연극 ‘인형의 집 Part 2’

‘인형의 집 Part 2’의 한 장면.ⓒLG아트센터
‘인형의 집 Part 2’의 한 장면.ⓒLG아트센터

작품에 묘미가 있다. 등장인물 각자의 변이 나름 같은 무게와 논리성을 가진 채 서로 충돌하는 듯 보여서다. 작가는 주인공의 입장을 부각하기 위해 주변 인물들을 의도적으로 악하게 만들거나 깎아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주인공의 견해를 반박하는 사람들의 말이 조리가 있고, 태도도 당당하다. 현실적으로 설득력을 확보한듯한 그들의 말을 쫓는 것 자체가 쏠쏠한 재미를 준다. 등장인물들이 둘씩 흡사 토론을 하는 것 같은 형식으로 진행되는 점도 흥미롭다.

연극 ‘인형의 집 Part 2’(연출 김민정, LG아트센터, 4월 10~28일)는 제목에서 암시되듯 19세기 노르웨이 극작가 입센이 쓴 ‘인형의 집’의 속편 같은 작품이다. 최초의 페미니즘 희곡이라고 평가받는 ‘인형의 집’ 마지막에 주인공 노라는 여성으로서의 자유를 찾아 남편과 세 아이를 뒤로하고 집을 떠난다.

‘인형의 집 Part 2’는 미국의 신예작가 루카스 네이스가 쓴 희곡. 노라가 문을 박차고 나선 지 15년 만에 돌아와 남편 토르발트, 유모 앤 마리, 그리고 딸 에미와 대면하고 이틀 만에 다시 집을 나서는 과정을 그렸다.

‘인형의 집 Part 2’의 한 장면.ⓒLG아트센터
‘인형의 집 Part 2’의 한 장면.ⓒLG아트센터

여성주의라는 진지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큰 틀에서 이 작품은 코미디다. 노라는 “가출 후 사회적 냉대 속에 비참한 생활을 면치 못했을 것이고 아마 죽었을 것”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유명 페미니스트 작가가 됐다. 그것이 코믹한 이야기 전개의 출발점이다. 집에 돌아온 이유도 알고 보면 가족이 그리웠다기보다는 남편이 당초의 약속과는 달리 이혼 수속을 밟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후속 절차를 밟기 위해서다. 노라가 되돌아온 집에서 확인한 것은 긴 세월 동안 여성에 대한 인식과 여성의 지위에 관한 한 아무것도 변한 게 없었다는 점이다. 노라는 가족과 재회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어이없는 상황에 답답함을 느끼는 노라와 그런 노라를 오히려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남편, 딸, 유모와의 대화 속에 적지 않은 유머가 끼어든다.

딸은 느닷없이 나타난 엄마가 곧 있게 될 자신의 결혼에 큰 장애요소가 될 것으로 인식한다. 여성의 삶을 속박하는 결혼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노라를 향해 에미는 "사람들이 다 엄마가 죽은 것으로 알고 있으니 차라리 엄마가 사망신고를 하고 멀리 이사를 하는 것이 어떻냐."라는 제안을 당당하게 한다.

‘인형의 집 Part 2’의 한 장면.ⓒLG아트센터
‘인형의 집 Part 2’의 한 장면.ⓒLG아트센터

유모는 평화스러운 가정에 갑자기 노라가 찾아와 파문이 이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는 자신을 밥 먹여주고 재워주는 주인 토르발트의 심사를 건드릴 이유도 없고, 변화가 두렵기만 하다. 집안을 시끄럽게 하는 노라가 원망스럽다.

토르발트는 노라가 필명으로 쓴 베스트 셀러 책을 사서 읽고는 자신이 못된 남편으로 기록된 것이 아주 못마땅하다. 그가 노라의 요구대로 이혼신청서를 쓰게 된 것도 알고 보면 나중에 노라가 쓰게 될 책에 자신에 대한 서술을 좀 좋게 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15년의 세월 속에 뭔가 변화와 화해의 분위기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노라는 결국 다시 집을 떠난다.

결혼과 부부 간의 애정에 대한 노라의 생각은 극중 토르발트가 사서 읽은 노라의 책 내용 속에 반영되어 있다.

“당신을 존재 그 자체로 바라볼 수 없는 사람과 사는 건 목숨을 위협받는 일이다.”

원작의 암울한 마무리와는 달리 ‘인형의 집 Part 2'는 마지막 장면이 희망적이다. 노라의 결연한 의지도 엿보인다.

“알아요. 많은 사람과 또 싸워야 하겠죠. 지난번보다도 훨씬 더 힘들 거예요. 그리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한 번 해본 거니까 다시 할 수 있어요.”

‘인형의 집 Part 2’의 한 장면.ⓒLG아트센터
‘인형의 집 Part 2’의 한 장면.ⓒLG아트센터

미니멀한 무대 위에 놓인 의자 2개를 도구로 활용해 노라와 토르발트 간의 대립 등 심리 묘사를 한 연출방식이 흥미롭다. 등장인물 4명의 성격을 대사를 통해 뚜렷이 부각하고, 언어의 유희를 통해 관객의 웃음을 자극한 점 등이 돋보이는 깔끔한 코미디다. 출연진의 좋은 연기가 작품을 많이 살려냈다.

서이숙·우미화 배우가 노라 역으로, 손종학·박호산 배우가 토르발트 역으로 각각 더블캐스팅됐고, 에미 역을 이경미 배우가, 앤 마리 역을 전국향 배우가 맡았다.

강일중 공연 칼럼니스트. 언론인으로 연합뉴스 뉴욕특파원을 지냈으며 연극·무용·오페라 등 다양한 공연의 기록가로 활동하고 있다. ringcyc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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