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특집]
[인터뷰] 모낙폐 이유림·인의협 윤정원
피임 의료급여화 필요
미혼모 복지, 장애아 키우기 등
실제로 필요한 정보 알려줘야
보건복지부 지금껏 책임 방기

윤정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여성위원회 위원장과 이유림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집행위원이 14일 서울 중랑구 면목동의 공원에서 만났다.
윤정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여성위원회 위원장(왼쪽)과 이유림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집행위원이 14일 윤 위원장의 직장인 서울 중랑구 면목동의 녹색병원 인근 공원에서 만났다. / 이정실 사진기자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폐지 결정은 ‘국민의 법감정’ 즉 사회 분위기의 변화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변화를 이끌어낸 힘은 낙태죄가 왜 문제인지, 여성들이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를 알린 수많은 여성들의 노력에서 나왔다. 대표적인 집단은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모낙폐)’이다. 한국여성민우회 등 여성단체의 의제를 넘어 의료·노동·사회단체 등 다양한 주체들이 한목소리를 냈다. 헌법재판소 결정 전날까지 4개월 넘게 매일 1인 시위를 이어나갔고 집회와 캠페인 등을 벌였다.

모낙폐의 동력에 이유림 집행위원과 산부인과 전문의인 윤정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여성위원장을 빼놓을 수 없다. 2013년 당시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에서 이 위원은 인류학 연구 활동가로, 윤 위원장은 인턴을 마친 후 상근활동가로 만나 재생산권을 논의하다가 성과재생산포럼을 기획해 연구를 이어왔고, 2017년 9월 모낙폐의 이름으로 단체들을 모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모낙폐는 회원도, 활동비도 없는 연대조직이라는 점에서 이들은 ‘인력을 갈아 넣어서 만든 한강의 기적’이라고 했다. 성과재생산포럼이 출간한 책『배틀그라운드』은 지난해 11월 출간해 2쇄를 찍었고 헌재 판결 이후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다. 이들은 책 인세를 활동비로 사용하고 있다.

-정말 기다리던 순간이었을 것 같다. 헌재 결정문에서 어떤 대목이 가장 기억 남나.

정원= 눈물이 날 정도였다. 특히 ‘안전한 낙태’라는 표현을 썼는데 낙태가 법과 도덕,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보건의료의 문제라고 인식한 것이고, 세계적 흐름에 따른 것이다.

유림= 우리는 그동안 차별금지법 제정, 한반도 비핵화, 낙태죄 폐지 중에서 가장 늦게 실현될 문제로 낙태죄 폐지를 봤다. 그 정도로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집회,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과연 이게 될까, 늘 회의적인 생각을 했다.

-헌재는 낙태를 태아의 생명권 논쟁을 넘어서 국가 책임으로 인식했다. 그동안 정부 부처들이 엉뚱한 정책을 만들어내면서 문제를 키웠던 것과 정반대다.

정원= 보건복지부는 사과라도 할 줄 알았다. 앞서 헌재가 의견서를 받았을 때 국가인권위원회와 여성가족부는 폐지 의견을, 법무부는 엉터리로라도 냈지만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아예 안냈다. 지금까지 책임을 방기해왔고, 최근까지도 ‘헌재 판결이 안 나서’, ‘입법이 안되고 있어서’라면서 미루고 있다.

유림= 그런 의미에서 임신중지를 정치화 과정에 국가의 책임이라고 국가를 주어로 세운 게 좋은 전략이었던 듯하다.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다’라는 슬로건을 사용했다. 헌재도 결정문에서 국가가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낙태죄 폐지는 OECD 국가 중 가장 늦은 편이고 국내 여성인권 이슈 중에서도 늦은 이유는 무엇일까.

정원= 외국 언론과 인터뷰를 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질문이다. 한국의 상황을 잘 이해를 못하고 ‘유교문화 때문이냐, 기독교 때문이냐’고 묻는다. 국가의 가족계획 정책 때문이라고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다. 형법상 낙태죄가 있음에도 1960년대 이후 인구가 늘자 산아제한 시기에 낙태를 지원하고 한국의 임신중지가 불법이라는 것도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또 낙태죄를 처벌한다면서도 국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히려 암시장에 맡겼다. 그 과정에 성적으로 통제해내면서 여성이 부끄럽고 숨겨야할 뒤에서 알아서 해야할 일이라는 분위기가 강화됐다.

유림= 시민사회에서도 관심이 약한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저희가 피임 사전, 여성건강권 운동을 2013년 쭉 해왔지만 한국 페미니즘 운동 안에서 건강권 운동에 대한 관심은 뜨겁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보건의료 운동에서는 무상의료 확대·공공의료 강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낙태죄 찬반 논란이 일단락되면서 이제 재생산권 관련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방향을 제시한다면.

정원= 방향성은 ‘어떻게 임신 중지를 줄일까’로 가야 한다. 임신중지를 줄이는 것에 대해서는 보건학적 의미는 임신중지 하려는 사람의 마음을 돌려서 낳게 하는 게 아니라, 임신중지의 선행사건인 원치 않는 임신을 줄이는 것이다.

유림= 예를 들어 미혼모 여성이 아이를 원하면 지울 수 있지만 원치 않는다면 학습권을 보장하고 보육 제도 등 지원해야 하는데, 아이, 모성을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차별이라는 것을 국가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재생산권의 핵심이라 생각한다.

-보건의료서비스로서 제공하게 될 낙태 상담은 어떤 방식이 적절할까.  

정원= 모든 수술은 법에 따라 동의서를 작성해야 하지만 그동안 낙태에는 없었다. 상담 역시 낙태라서 필요한 게 아니라 건강에 관한 것이므로 당연히 제공해야 하는 거다. 임신중지가 특별히 다른 보건의료시술이라서 상담이 필요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국가는 어떤 방향성을 가진 상담 아니라 중립적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결정은 여성이 하고, 의사는 조력하는 상담이 돼야 한다. 저는 낙태죄 폐지론자지만, 그렇다고 낙태를 하라고 종용하는 건 아니다. 임신을 유지할지, 중지를 선택할지를 여성이 결정할 수 있게 한다는 주의다.

유림= 여성을 주체로 놓은 상담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미혼모의 경우 어떤 복지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 장애아를 가졌다면 실제로 살아가는 장애가족을 만나볼 수 있게 지원해준다거나 하는 식의 상담 방식 자체를 입법자가 바꿔야할 때다.

정원= 외국에서 숙려의무 기간을 굳이 둔 이유는 여성에 대해 충동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할 거라는 차별적 시선 때문이다. 하루가 급한데, 여성은 얼마나 속이 타겠나. 태아가 클수록 낙태할 때 건강에도 더 나쁜 영향을 미친다.

-재생산권 관련 논의에서 구체적으로 더 다룰만 한 것은?

정원= 피임의 의료급여화다. 문재인케어의 핵심인 ‘비급여의 급여화’ 논의가 활발했다. 그때 보건복지부에 피임시술 급여화 계획이 있냐고 질의해봤는데 ‘피임요?’라고 놀라서 되묻더라. 관계부처 마저도 피임을 보건의료나 건강 이슈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 것 같다.

유림= 그동안 임신중지를 범죄로 규정해서 여성에게 책임만 전가했을 뿐 국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할 게 너무 많다. 성교육은 물론, 피임과 낙태에 관한 다양한 잘못된 정보를 차단하는 것까지 국가가 해내야 한다. 실질적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을 국가가 만들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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