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여성들이 투표권을 얻은 것은 1944년이다. 의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금은 물러난 조스팽 정부에서 만든 남녀동등정치참여법이 생긴 이후에도 10%를 간신히 넘고 있다.

프랑스야말로 남성 지배의 전통이 매우 강한 나라이다. 이러한 전통은 노동조합이나 좌파 정당 같이 진보를 표방하는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68년 5월 운동의 와중에서 여성들은 이를 분명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 활성화되기 시작한 여성운동은 여성들만의 운동이 될 수밖에 없었다. 평등과 자유를 내세우는 진보적인 조직에서조차 여성들이 발언권을 얻지 못하고 불평등한 관계에서 보조적인 역할만을 강요당했기 때문에 여성들은 남성들을 배제하고 여성들만의 여성운동 단체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런 여성운동 단체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이 ‘여성해방운동’(MLF)이었다. 여성운동의 일부 흐름이 레즈비언 운동으로 흐르면서 남성들은 감히 여성운동의 대열에 끼지 못했다. 여성운동은 여성들이 남성 지배를 거부하고 여성들의 권리를 증진시켜 남녀평등을 지향하는 운동으로 알려졌다.

1970년대에 피임과 낙태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고 여성의 권리를 증진시키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시작되면서, 특히 1981년 사회당의 미테랑 대통령이 집권하고 여성부가 신설되면서 여성운동은 점차 약해졌다. 아직 모든 영역에서 남녀평등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남녀평등을 위한 기본적인 틀이 갖추어지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남녀평등은 보편적인 가치가 되었고 가부장적 남성지배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 여성들의 동등한 정치참여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여성의 정치참여를 촉진시키기 위한 법안을 놓고 토론이 불붙으면서 여성운동도 다시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다른 한편 대도시 주변의 교외에 사는 아프리카 출신 이민 공동체 내에서도 새로운 여성운동의 물결이 일어났다.

남성을 페미니스트로 만들자

남성중심적 이슬람 문화에서 억압적인 생활을 하는 이민 여성들이 가정폭력, 강간, 성희롱 등 다양한 형태의 폭력으로 나타나는 가부장제를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1990년대에 들어서 다시 일어나고 있는 제3의 여성운동의 물결에서 의미가 있는 현상은 남성과 여성이 함께 하는 여성운동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1997년에 만들어진 ‘믹스시떼’(Mix-cite)라는 이름의 단체가 그 본보기다. 남녀가 평등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성들만 바뀌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남성들이 바뀌어야 하고, 그것은 강요나 억압이 아니라 남성들 스스로 정황을 분석하고 해석하고 대안을 찾는 노력에 의해서 이뤄져야 한다.

이 모임의 창립 취지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 모여 바람직한 남녀 관계에 관해 함께 생각하고 토론하고 대안을 찾는 것이다. 여성운동에 대한 반대와 저항의 본질을 더 잘 이해하고 그것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도 남성과 여성이 함께 하는 여성운동이 필요한 것이다.

이 단체를 만든 남성들은 자신들이 기존의 스테레오타입화된 남녀관계 모델의 희생자라고 주장한다. 개인의 특성과 관계없이 정해진 남성 역할모델과 남자다움을 강요받고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여성들 가운데서도 페미니즘에 반대하면서 여성은 가정으로 돌아가야 하고 낙태는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여성이라고 다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페미니스트는 여성이면 자연히 되는 것도 아니고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될 권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가치의 문제이며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문제이다.

믹스시떼는 가정과 학교에서부터 남녀평등적인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다. 중고등학교를 순방하며 남녀평등을 주제로 청소년들과 다양한 방식의 모임을 갖고 가족 내에서 새로운 부모 역할, 특히 아버지의 새로운 역할을 정의하고 실천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또 이혼이 보편화되어 재결합한 부부가 각기 자기 아이를 데리고 함께 사는 가족이 생겨나고, 동성애 부부가 인정되기 시작하면서 아이를 입양하여 키우는 동성애 부부가 늘어나 다양한 가족관계에 대한 논의도 확산되고 있다.

장미란 파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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