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약혼자는 신고, 여성만 처벌했던 나라”
“헤어진 약혼자는 신고, 여성만 처벌했던 나라”
  • 진주원 기자
  • 승인 2019.04.21 11:10
  • 수정 2019-04-21 1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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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특집]
[인터뷰] 김수정 변호사 소송대리인단 단장
호주제 폐지부터 낙태죄 폐지로
“낙태죄는 생명 보호 목적 아닌
‘문란한 여성’ 처벌법이었다”
낙태죄 위헌 청구인 공동대리인단장 김수정 변호사
낙태죄 위헌 청구인 공동대리인단장 김수정 변호사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은 여성에게만 좋은 결정이라고 보지 않는다. 사회 모든 구성원에게 좋은 결정이라 생각한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인권은 물론이고 생명보호 등에서 새로운 고민을 할 수 있는 장이 열렸다.”

낙태죄 헌법소원 공동대리인단의 단장을 맡은 김수정 변호사(49·법무법인 지향)는 낙태죄 폐지 결정문의 ‘자기결정권’이 시사하는 것은 여성의 프라이버시만이 아니라 낙태를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사회보장적인 문제부터 성평등과 관련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은 ‘인권’이다.

주요 인권 관련 변론 곳곳에 김 변호사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는 변호사 1년차인 2001년 시작해 2005년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호주제 위헌소송, 18년간 이어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위헌소송, 항소심 승소 후 현재 대법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미군 기지촌 피해여성 손해배상 소송 등을 진행하고 있다. 한 일간지에는 ‘여성을 위한 변론’을 연재하며 법과 판결을 여성의 관점에서 재해석해 호평을 받았다.

15일 만난 김 변호사에게 이미 수도 없이 쏟아진 소감을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지만 새로운 대답을 내놨다. “여성의 목을 밟고 있는 발 하나를 치웠을 뿐이다”. “미국 긴즈버그 대법관가 했던 말인데 여태 용기가 없어서 인용 못했다”면서 함박웃음 지었다.

여성 인권에 관한 여러 가지 소송을 맡았던 그는 우리나라에서 낙태죄 폐지가 왜 이렇게 늦었을까. 김 변호사는 두가지 요인을 들었다.

먼저 형법상 낙태죄가 66년 됐지만 형사처벌이 드물고 암수범죄로 묻혀 있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과거엔 국가가 인구조절을 위해 월경조절술을 하면서 피임을 시켰다. “어머니세대는 ‘낙태가 처벌되는 거였어?’ 라고 되물으며 깜짝 놀라기도 한다”고 했다. 기소되는건 헤어진 남자가 복수로 신고하는 정도다.

또 여성 인권이 성장했다고 하지만 성을 이중적으로 바라보는 문제가 여전하다는 점이다. “결국 처벌되지는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나서지 못하는 것은 미혼 여성에게 성관계는 무서운 낙인이기 때문에 누구도 감히 얘기하지 못했다”면서 2013년에도 헤어진 약혼자가 신고해 자신만 낙태죄 처벌받은 여성이 헌법소원을 내기로 했다가 낙인찍힐 게 무서워 포기했던 사례를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남성은 흔적 없지만 여성은 임신이 남는다”며 “낙태죄는 결국 생명을 버린 여성보다는 문란한 여성이라는 낙인인 셈”이라고 강조했다. “문란한 여성을 처벌하는 게 아니냐는 추정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는 생명 존중을 외치는 일부 사람들이 보여준 그릇된 인식도 강하게 질타했다. “낙태죄 변론 하면서 가장 모욕적이라고 느낀 비난은 ‘여성이 문란해서 생명을 경시한다’는 것”이라면서 “선고 당일 헌재 앞에서 거대하게 확대한 초기 태아 사진을 들고 와서는 생명이 너무 소중하다며 목놓아 외치는 분들이 많이 모여 계셨다. 그런데 그들 중에 성소수자 혐오의 현장에서 마주쳤던 분도 봤다. 소름끼쳤다, 태어난 사람의 정체성(생명)을 부정하는 분들, 태어난 생명은 짓밟던 분들이 생명권을 외치며 낙태는 살인이라고 외치고 있었다”고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낙태를 선택하는 여성은 생명을 경시해서가 아니라, 생명을 경시하는 세상이기에 경시받는 생명으로 살게 하고 싶지 않아서 낙태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김 변호사는 여러 차례 강조했다.

“미혼모를 비롯해 여성에 대한 차별이 낙태를 낳았고 이는 저출산 등과 다 연결된 문제다. 정말 생명존중 세상을 원하신다면 평등한 세상을 위해 노력해달라. 아이가 존중받지 못하게 될 삶을 걱정하는 여성들에게 생명 경시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비난하는 방식은 더 이상 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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