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특집]
낙태죄 헌법불합치 이끈 7인의 여성 변호사들
김수정·류민희·박수진·유원정·차혜령·천지선·최현정
“입법에 재생산권 반영해야”

낙태죄 헌법소원 공동대리인단 차혜령, 박수진, 류민희, 김수정, 유원정, 천지선, 최현정 변호사(왼쪽부터)가 위헌소원심판이 열린 11일 헌법재판소에 들어가기에 앞서 각오를 다졌다. 장길완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간사 제공.
낙태죄 헌법소원 공동대리인단 차혜령, 박수진, 류민희, 김수정, 유원정, 천지선, 최현정 변호사(왼쪽부터)가 위헌소원심판이 열린 11일 헌법재판소에 들어가기에 앞서 각오를 다졌다. / 장길완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간사 제공.

“승소를 예상하고 시작했던 건 아니다. 다만 해야 할 일이라 한 것뿐이다.”

한국 여성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펼친 낙태죄 위헌 헌법소원 공동대리인단 7인의 여성변호사의 답변은 한결같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여성인권위원회’ 소속 김수정·류민희·박수진·유원정·차혜령·천지선·최현정(가나다순) 변호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낙태죄 헌법소원이 열린 2019년 4월 11일 오후 2시, 이들 소송대리인들은 방청석 맨 앞줄에 앉아서도 위헌과 합헌 두 가지 경우를 함께 그릴 수밖에 없었다.

이번 낙태죄 위헌 헌법소원 청구인은 낙태 시술을 한 산부인과 의사였다. 그는 2013년 11월부터 2015년 7월까지 69회에 걸쳐 낙태수술을 한 혐의로 기소됐고, 이에 대해 재판을 받던 중 낙태시술을 불법으로 규정한 형법 제269조 제1항·제270조 제1항의 위헌 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 심판을 2017년 2월 8일 헌법 재판소에 청구했다. 이 청구인의 변호를 맡겠다고 나선 것이 7명의 변호사다.

여성의 전인격적인 결정으로서 자기결정권의 행사가 임신기간 전체에 걸쳐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한 헌재 결정문은 이들이 쓴 171쪽의 변론서와 공개변론 후부터 선고 직전까지 제출한 의견서들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이들은 짧게는 수 년, 길게는 20년 가까이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해 싸워온 변호사들로, 친한 선후배들이다. 이들은 2013년 맡았던 낙태죄 여성의 재판이 이들 모두에게 너무나 중대한 사안이었다고 꼽는다. 차혜령·천지선 변호사 등이 참여했던 이 재판에서 함께 기소된 남성은 무죄를, 여성만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는 일이 벌어졌다. 이대로 끝낼 수 없었다.

“의뢰인께 헌법소원으로 낙태죄의 위헌성을 다퉈보자고 권했지만, 의뢰인 역시 낙태한 여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두렵고, 그가 무죄를 선고받은 상황에 절망하여 끝내 포기했다.”

당사자의 거부로 다음을 기약한 이후 임신과 출산 등에 관한 재생산권에 대한 연구의 폭을 넓힐 기회가 왔다. 2017년 초 천지선·최현정 변호사가 권미혁 국회의원실과 (가칭)재생산기본법 작업에 착수하면서다. 낙태 시술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의사 A씨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한 그 무렵이다. 이 사건의 중요성을 인지한 류 변호사가 가장 먼저 해당 사건을 이들을 포함한 동료들과 공유했고, 자연스럽게 공동대리인단이 꾸려졌다. 2005년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아낸 호주제 위헌소송에 참여했던 김수정 변호사에게 단장을 맡아줄 것을 요청하고 청구인 의사A씨에게 연락해 ‘여성인권 측면에서 변론을 맡고 싶다’고 제안해 성사됐다.

낙태죄는 당장의 변화를 촉구했지만 국민적 공감대라는 토대가 없인 위헌 판결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합헌 결정 즉, 패소할 경우 변호사로서는 심리적 내상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이들로서는 ‘해야할 일’이었다.

당초 청구인의 소송대리인이 냈던 헌법소원심판청구서는 14쪽 분량이었다. 이들은 12배 분량의 171쪽 변론요지서를 냈다. 이들은 청구인에게 “의사낙태죄가 아니라 자기낙태죄 부분, 즉 여성의 낙태 문제만 다룰 거라고 미리 말했다”고 했다. 자기낙태죄가 위헌 결정이 나면 의사낙태죄도 위헌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다.

이들은 준비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도 결국 소송 내용이라고 했다. 태아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충돌 구도를 넘어서기 위해 치열하게 준비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국내에는 낙태죄와 관련한 여성의 건강권이나 평등권 연구나 학술자료나 단행본이 거의 없었다. 국제보건기구,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 등 국제인권조약기구의 견해, 해외 판례 등을 참고해 작성했다.

“여성의 임신과 임신중단이 삶에서 얼마나 중대한 경험인지부터 시작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중심으로 진술했다. 또 출산, 양육을 할 때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연결되는 과정을 부각시키려고 노력 많이 했다.”

낙태죄 헌법소원 공동대리인단 7명 중 김수정, 최현정, 박수진, 천지선 변호사(왼쪽부터)가 집회에서 모여 기념촬영을 했다.
낙태죄 헌법소원 공동대리인단 7명 중 김수정, 최현정, 박수진, 천지선 변호사(왼쪽부터)가 낙태죄 폐지 집회에서 모여 기념촬영을 했다. / 천지선 변호사 제공

 

헌재 대심판정에서 결정을 듣던 변호사들이 눈물 흘린 순간은 헌법불합치 결정주문만이 아니었다.

천지선 변호사는 “‘임신한 여성의 전인격적 결정’, 또 여성의 안위와 태아의 안위를 설명했을 때 또 울컥했다”고 상황을 떠올렸다. “낙태 행위를 가해자 피해자 관계가 아니라고 명시돼서 기쁘다. 결정문 전반에서 여성의 삶과 여성의 결정과 여성이 임신으로 느끼는 실제를 많이 이해하려 노력하고 실제로 이해하셨구나, 느낌이 들어서 감사하고 기뻤다.”

2012년 합헌 결정이 태아의 생명권과 임부의 자기 결정권이 충돌하는 구조였다면, 이번에는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박수진 변호사는 “몇 년 전만하더라도 낙태죄 연구를 위한 일반인들의 인터뷰는 하기 힘들었다. 개인의 경험이 외부에 말해지지 않는 분위기에서 2012년 합헌 결정이 났다. 여성의 현실이 전혀 반영 안 된 것”이라며 “최근에는 여성들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을 밝히는 용기 있는 발언이 이번 결과를 이끈 것이라 본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여성의 현실이 반영된 것이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차혜령 변호사는 “종교관이나 가치관에 따라 낙태죄에 관한 의견은 각기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현행 낙태죄 규정이 법규범상으로는 헌법에 합치되기 어렵다는 변론으로 많은 분들이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면서 “헌재 결정을 계기로, 낳고 싶은 사람이 잘 낳을 수 있고 잘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바랄 뿐이다”고 밝혔다.

유원정 변호사는 “낙태가 여성, 특히 미혼 여성에게 죄이고 낙인이던 사회에서 나고 자랐다. 이제라도 여성을 옭아매던 억압을 하나 벗어던지게 되어 기쁘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선고를 들으며 무척 기쁘면서 동시에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을 보장하는 입법을 해야하는 또 다른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법까지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헌재가 낙태가 범죄라는 논란에 종지부를 찍으면서 여성의 권리로 명시했지만 우리 사회가 가야할 길은 한참 멀다”고 이들은 벌써부터 우려하고 있다. 헌재의 취지에 부합하는 입법이 당장 2020년까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제는 그동안 ‘낙태죄’에 밀려 논의조차 되지 않았던 재생산권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낙태를 보통의 보건의료제도에 포함시키고, 피임 의료급여화, 성교육·피임교육 등과 제정법 수준의 모자보건법 전면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