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장애인 성폭력 피해 시
수사·재판과정에서 소통 돕는
진술조력인제도 도입 6년
성폭력 사건 5419건 지원
장애인 특성·취약성 이해하고
진술과 아픔이 조사자에게
전달되도록 곁에서 도와

 

#1
“……”
당황한 그녀의 침묵으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낯선 환경, 낯선 조사자, 쏟아지는 어려운 질문들…. 여러 명으로부터 성폭행 피해를 입은 지적장애 3급의 장애를 가진 그녀는 곧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어떻게 피해를 입었는지를 특정해야만 가해자들로 하여금 법의 심판을 받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녀로부터 진술을 들어야만 했다. 조사자의 계속되는 질문에 그녀는 각 사건의 피해내용이 혼란스러운지 뒤섞어서 진술하기 시작했다. 지적장애가 있는 그녀는 다수의 가해자로부터 입은 수차례의 성폭행 피해를 순서에 맞게 진술하기 어려웠다. 그녀에게는 자신의 특성과 태도를 이해하고 진술을 도와줄 조력자가 필요했다.

#2
과거 지적장애 2급을 진단받은 그녀는 성추행 피해에 대한 조사를 받기 위해 해바라기센터에 왔다. 그런데 그녀는 조사자의 말을 즉각적으로 따라 말했고, 상황에 맞지 않는 혼잣말을 반복했으며, 눈 맞춤도 어려워보였다. 그녀는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학습된 질문에 대해서만 기계적으로 답할 수 있었고, 스스로 상대방과 소통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진술조력인은 성폭력범죄 또는 아동학대범죄 피해를 입은 아동과 장애인이 경찰, 검찰에서 조사를 받거나 법정에서 증언을 할 때 의사소통을 도와주는 전문가를 말한다. 이들은 임상심리, 발달심리, 상담심리, 특수교육, 언어치료 등 아동 또는 장애인의 심리 및 의사소통 분야에 전문성을 지니고, 법무부에서 실시하는 형사절차, 진술조력 전략 등에 관한 전문 양성교육을 이수한 뒤 자격을 부여받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2013년에 처음 도입된 진술조력인은 현재까지 총 107명이 양성돼, 지난 5년간 총 5419건 가량을 지원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진술조력인을 단순히 피해자의 긴장감을 풀어주는 사람 정도로만 인식하기도 하고, 아동 또는 장애인 피해자가 일상생활에서 말을 잘 한다고 판단되면 진술조력인을 활용하지 않기도 한다. 그리고 수사기관이 진술조력인과 정보공유를 하지 않는 등 역할 수행에 한계가 발생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진술조력인이 굳이 필요하냐는 질문도 수 없이 받게 되고, 진술조력인이 장애인 피해자의 진술을 오염시킨다는 가해자 측의 공격도 받는다.

그렇지만 현장에서 장애인 피해자의 아픔을 본다면, 그들의 형사사법절차상 진술권 보장은 장애인 인권보호의 기본 중의 기본이라는 점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장애의 종류와 특성, 장애인 및 아동과의 소통방법, 장애인 및 아동의 심리, 아동의 발달과정을 고려한 조사가 이뤄져야만 2차 피해를 방지하고 사건의 진실을 밝혀낼 수 있다. 수사기관, 법원 등 사법종사자들도 진술조력인의 조력을 받은 장애인 피해자가 전달하는 더 정확한 진실을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시각적 시간 선의 예. ©여미경
*시각적 시간 선이란? 피해가 여러 차례일 경우 진술 조사 시 타임라인(Time line)을 활용할 수 있다. 종이에 간단히 타임라인을 그린 후, 색깔을 구별할 수 있는 포스트잇을 활용해 시점 혹은 장소를 명확히 구별해 줄 수 있다. 사진은 시각적 시간 선의 예. ©여미경

앞서 소개한 사건들은 모두 실제사건이며, 진술을 힘들어하고 불안해하던 피해자들은 진술조력인의 도움으로 피해사실을 구체적으로 진술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사건에서 진술조력인은 진술을 힘들어 하는 피해자에게 쿠키맨 그림을 활용하는 조사방법을 제안해, 쿠키맨 그림에 각각의 피의자들 특징과 피해사실을 써서 구분하도록 했다. 또 타임라인(시각적 시간 선, 사건이 여러 차례일 때 시점 혹은 장소를 구별하는 보조도구)을 그려서 사건들의 시점이 특정되도록 도왔다. 이로서 범죄사실이 특정되었고 가해자를 재판정에 세울 수 있었다.

쿠키맨 ©pixabay
쿠키맨 ©pixabay

 

*쿠키맨이란?
생강빵(gingerbread) 또는 생강쿠키맨이라고도 부름. 신체 부위 중 어느 곳에 피해를 입었는지를 가리키기 위해 사용한다. 이 사례에서 진술조력인은 쿠키맨 종이를 여러 장 준비해 각 피의자의 이름, 만난 장소, 피해사실 등을 피해자가 작성하게 해 의사소통을 도왔다.

 

두 번째 사건에서 진술조력인은 주의 깊은 사전면담을 통해 그녀가 지적 문제를 동반한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겪고 있음을 알게 됐다. 개인마다 다양한 특성으로 발현되는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있음을 파악한 진술조력인은 보호자와의 면담을 통해 그녀가 의미 없이 반복하는 반향어는 무엇인지, 어떤 상동행동(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하며, 그 의미는 무엇인지 등을 파악했다. 진술조력인은 지적문제를 동반한 자폐스펙트럼장애인에 대한 조사 경험이 없었던 조사자에게 자폐스펙트럼장애에 대해 먼저 설명하고,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도 함께 알려줬다. 그리고 진술조력인은 진술조사 시 사용해야하는 질문의 수준과 방법, 그녀가 과잉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물건과 행동에 대한 주의사항 등에 대해 조사자와 함께 논의하면서 조사계획을 세워 진행하였고, 피해자 조사를 마칠 수 있었다.

장애가 없는 성인의 관점에서 진술조력인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이해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장에서의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들은 장애인이면서도 범죄피해자라는 이중적 취약성으로 인해 사실을 진술하는 것조차도 매우 힘들어하고 평범한 조사자의 질문에도 불안해한다. 이런 장애인 피해자들에게 그들의 특성과 취약성을 이해하고 그들의 진술과 아픔까지 조사자에게 전달되도록 조력하는 진술조력인의 존재는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에게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진술조력인은 수사기관이 피해자의 장애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 피해자에게 적합한 조사가 이뤄지게 하고, 피해자의 장애 특징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해 법원이 사건을 판단할 때 이를 고려할 수 있도록 전문적인 의견을 제공하는 역할까지 수행한다. 최근 진술조력인의 지원 건수는 큰 폭으로 늘고 있는 추세이며, 장애인 학대범죄에 확대해서 지원하라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진술조력인 제도가 널리 알려져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가 형사절차에서 자신의 피해사실을 충분히 진술하고 보호받게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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