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경 칼럼] 치매 검사를 했다
[정진경 칼럼] 치매 검사를 했다
  • 정진경 사회심리학자
  • 승인 2019.04.20 12:12
  • 수정 2019-04-20 1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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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검사를 했다. 가끔 내 건망증에 문득문득 놀라기는 해도 아직 치매 걱정을 심각하게 하지는 않는데, 기회가 있기에 그냥 했다. 대학병원 신경과에서 일하는 제자가 전화하더니 미안해하면서, 치매를 선별하는 노인용 인지능력 검사 개발에 기초자료가 필요한데, 내 나이와 학력대의 피험자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은퇴하고 남는 게 시간이라 쾌히 해 주마 했다.

며칠 후 석사과정 대학원생이 집으로 찾아왔다. 친절하고 상냥한 태도가 노인을 대하는 검사자로 적격이었다. 검사는 쉬운 상식문제, 도형 따라 그리기, 보기와 같은 도형 찾아내기, 단어 목록 외우기, 간단한 논리적 추론, 이야기 듣고 기억해서 정확히 다시 말하기 등 다양한 문제를 포함했다. 치매를 가려내는 검사라 과히 어렵지 않았다.

이렇게 시험 보는듯한 검사는 몇 십 년 만에 해보는지. 삼십대 이후 시험이라고는 운전면허 시험밖에 보지 않았다. 흥미가 발동해서 한번 잘해 볼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한데 조금 후, 나는 죽기살기로 열심히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신경을 120% 초집중하고, 나이 든 뇌를 최대한 가동하고, 연상법 등 기억을 높이는 방법까지 동원하면서, 최고의 수행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기를 쓰고 있었다. 마침내 검사를 끝내고 나서 내가 처음 한 말, “몇 개 틀렸어요?”

동시에 그런 자신이 웃긴다는 생각이 드는 걸 어쩔 수 없었다. 평생을 학교에서 지내다 보니 시험이라면 총력을 다해서 임하는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해 이 나이에도 이러고 있네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검사를 실시한 대학원생이 너무 잘한다고 칭찬하기에 조금 무안하여, 정말로 열혈 노력해서 풀었다고 공연스레 변명까지 했다.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검사를 받아본 소감을 이것저것 말해 주었더니, 이 참한 대학원생이 자기 부모님에게도 검사를 해보고 싶은데 겁이 난다고 했다. “저희 부모님은 대학도 못 다니셨고 평생 일만 하느라 바쁘게 사셔서 이런 검사는 잘 못 하실 것 같아요.” 기를 쓰고 잘하려 한 것이 미안했다. 이제 나이도 먹고 기운도 없어서 아등바등하지 않고 느긋하게 살기로 마음먹고 어느 정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의 이 태도는 뭐지?

그때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났다. 돌아가시기 한 달 전 여든여덟에 요새 건망증이 좀 심해진다고 자진해서 치매 검사를 받겠다고 하시기에 모시고 갔다. 검사자가 결과가 아주 좋아서 전혀 걱정하실 필요 없다고 했다. 그리하여 흐뭇해지신 어머니 말씀, “그런데 나 몇 개 틀렸어요? 뭘 틀렸나?” 아이구, 모전여전이었네.

고령화되면서 치매 걱정들이 많다. 암병동 환자들이 그래도 치매 아니라 다행이라고 할 정도로 치매에 대한 공포는 크다. 여성이 더 오래 살다 보니, 치매 걱정도 더 많다. 어머니만 그러셨던 것이 아니고, 주변의 모든 여성 노인들은 부디 치매 걸리기 전에 가는 게 소원이라고 하신다. 우리는 모두 세상 떠나는 그 순간까지 최대한 똑똑하게 제정신으로 살고 싶다.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안타까울 뿐. 노인 10명 중 한명은 치매가 되고 앞으로 5년 내에 치매인구 100만이 넘을 거라는데, 사회적 대책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가벼운 치매환자들이 여생을 요양병원 입원실에 갇히지 않고, 치매안심마을이라는 시설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또 독립적으로 지내는 외국 사례를 보았다.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희소식 아닌가. 우리나라에서도 건립하려는데, 그 부지의 동네사람들이 혐오시설이라고 반대해서 짓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뉴스에서 들었다. 언제고 나의, 내 가족의 일이 될 수도 있는데. 나는 우리 동네에 들어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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