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연령, 직업군
장애여성 인터뷰 후기
너무나 평범한 일상이
장애여성들에겐 ‘꿈’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반 아이들에게 “장래희망이 뭐니?”라고 묻더라고요. 머릿속이 복잡해졌어요. 전 서서하는 일을 못하니까 앉아서 하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계속 생각을 했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피아니스트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피아노를 배운 적은 없지만, 선생님이 물어보면 그거 한다고 해야지 생각했죠. 그런데 공교롭게도 선생님이 제 앞에 와서는 아무것도 묻지 않더라고요. 저부터 질문이 끊긴 거예요. (소아마비장애 여성 A씨)

#아이 셋을 데리고 편의점에 갔는데, 어떤 분이 “애들이 예쁘다”며 우리가 고른 걸 모두 계산해 주었어요. 처음엔 기분이 나쁘더라고요. 일반적으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아이가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그 많은 과자 값을 계산해주진 않잖아요. 그분은 좋은 마음으로 한 일인데,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분이 말씀하신 그대로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하니 그런 시선들이 오히려 편해졌어요. (시각장애여성 B씨)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다양한 연령층과 직업군에 종사하는 장애여성들과 만나 그들의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필자 역시 시각장애를 가진 여성으로서 많은 것들을 공감하는 기회였다. 우리 장애여성들의 꿈은, 읽고 싶은 책 읽기, 나홀로 여행가기, 조용한 카페에 앉아 차 마시기, 아무 도움 없이 물건 구매하기, 아이와 마음껏 뛰어놀기 등 어떻게 보면 매우 소박하고 평범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 행위들이 모두 ‘꿈’으로 그려졌다.

외국여행을 다녀온 장애여성 C씨는 한국에선 불가능했던 꿈을 외국에서 이뤘다. 무수히 많은 턱 때문에 진입조차 어려운 한국 카페와는 달리, 경사로를 구비해 놓은 외국의 카페는 접근성이 매우 좋았다. 자신의 신체적 장애가 사회적 장애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을 경험하게 된 거다. 주문을 받는 종업원의 태도도 달랐다. 주문을 받기 위해 드높은 주문대에서 나와, 자신과 눈높이를 맞추며 메뉴를 받아적었다고 한다. 한국에선 한번도 없었던 일이다. 항상 높은 주문대에 막혀, 커피 먹기 전에 스트레스부터 한 잔 마셔버리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상적인 몸에 대한 허상을 가지고, 그런 몸을 가지지 않은 사람을 비정상으로 치부해 버리는, 상상력이 결여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누구를 만날 때 ‘이 사람은 당연히 귀가 잘 들리고, 눈이 잘 보이고, 걸어다닐 것’이라고 확신해 버린다.

시각장애인 여성 D씨는 44살에 갑자기 시력을 잃은 중도장애인이다. 보이던 것들이 보이지 않게 되는 답답함,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막막함 때문에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다. 그는 장애를 가진지 10년 만에 비로소 집밖으로 나왔다. 할 일이 참 많았다.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람들과 큰소리내며 싸워야했고, 함께할 동료들도 만들어야 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점점 쇄약해지는 자신의 몸을 보며, 집안에서 울고만 있었던 10년의 세월이 한탄스럽다고 말한다. 만약에 누군가가 D씨에게 “장애는 새로운 삶의 시작에 불과 하다고, 우리 같이 잘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성차별에 반대하기는 쉬우나 성차별이 무엇인지 알기는 어렵다. 장애 또한 그러하다. 장애는 단지 불편할 뿐이지 불행이 아니라는 말이 지니고 있는 무게와 깊이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장애가 있는 우리 아이보다 하루 더 사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는 부모님들의 마음이 어떠한지, 그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사회가 얼마나 폭력적인지 헤아리려 하지 않는다.

장애여성은 이중 혹은 삼중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교육받지 못하니 사회생활을 할 수 없고, 사회생활을 못하니 돈을 벌지 못한다. 돈을 벌지 못하니 빈곤에 시달리고, 빈곤에 시달리니 절대 병원에 쉽게 가지도 못한다. 어쩌다 밖에 나가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너무나 험난하다. 이상한 사람을 만나면, 혹시라도 해코지할까봐 최소한의 방어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장애여성들을 위한 법은 전무하다. 교육권의 박탈과 빈곤에 시달리며, 안전·육아·건강에 취약한 장애여성들에 대한 제대로 된 법 하나 없는 비정상적인 사회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대부분의 사람은 전쟁이 일어나거나 사회적·환경적 재난이 일어났을 때 평범한 일상을 그리워한다. 하지만 장애여성들은, 장애를 얻은 그 순간부터 그 평범한 일상을 ‘꿈’처럼 여긴다. 다시 말해, 매일을 전쟁처럼, 재난상황인양 일상을 살아내고 있다.

상상력은 공감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아무 거리낌 없이 받아들여지고, 우리의 상상력이 현실이 되는 사회를 꿈꾼다.

 

필자 정아영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복지위원회 부위원장과 한국장애인연맹(DPI) 정책위원으로 일하며,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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