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45개국 전·현 여성의원 123명
85% 심리적 폭력 경험했으나
성희롱 피해 신고는 23.5% 뿐

제63차 UN 여성지위위원회 회의 참가자들이 합의문을 채택하고 기뻐하는 모습. ©UN Women/Ryan
제63차 UN 여성지위위원회 회의 참가자들이 합의문을 채택하고 기뻐하는 모습. ©UN Women/Ryan

* [CSW Report⑤] 제63차 유엔 여성지위위원회(CSW)가 지난 3월 11일부터 22일까지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렸다. CSW는 매년 세계 각국 대표와 여성단체 활동가, 전문가 등이 모여 성평등과 여성이슈를 논의하는 가장 큰 규모의 국제회의로 '유엔 여성 총회'라 불린다. 올해 참가자들의 참관기를 릴레이 연재한다.

아직 꽃샘추위가 한창인 지난 3월 11일, 제63차 UN 여성지위위원회(CSW)가 열리는 뉴욕 유엔본부에 들어서니 입구 오른쪽 마당에 총구를 묶어 비폭력을 형상화한 조각상이 눈에 띄었다. 그 옆에 누군가가 올려놓은 노란 장미 한 다발과 이루는 조화는 새삼 이번 회의의 의미를 새기고 기대감을 갖게했다. 전 세계에서 온 7000여명의 참가자들로 회의장은 어디를 가도 북적였다.

각국 NGO들이 준비한 포럼은 400여개나 되었는데, 젠더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문제를 제목으로 한 포럼만도 스무개가 넘었다. 이번에 참여한 여성폭력 관련 포럼 중 ‘의회 여성들에 대한 성차별주의, 성희롱 그리고 폭력’ 포럼은 시사점이 많았다. 소위 정치 영역에서 권력을 가진 여성들이 국가, 대륙을 불문하고 성폭력, 성희롱에 시달리는 현실들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논의하는 자리였다. 총 45개 유럽 국가의 국회에서 일하고 있는 123명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85%가 넘는 여성의원들이 재임 기간 중 심리적 폭력을 경험했고, 성희롱 피해를 입은 여성의원 중 23.5%만 신고했다는 사실은 의회 밖 현실과 다름이 없음을 보여주는 결과였다. 특히 선거에서 여성을 제거하기 위하여 심리적, 물리적 폭력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SNS상에서 여성 후보자들에게 온라인 성폭력을 가하고 있는 현실이 짚어졌다.

의회 내 여성에 대한 폭력문제를 다룬 포럼 @이미경
의회 내 여성에 대한 폭력문제를 다룬 포럼 @이미경

지금 유럽에서는 “#Not in my Parliament(의회에서는 안돼), #Not in my office(사무실에서는 안돼)” 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한국 상황도 크게 다를 바가 없을 텐데 우리 국회는 조용한 점이 오히려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한 발언자의 “백래시(backlash, 반격·반발)가 계속 많이 진행되고 있지만 그만큼 우리의 성과도 진행되고 있고, 계속된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는 말은 큰 울림을 주었다.

3월 14일에는 세계 여성쉼터 네트워크(GNWS)와 대만의 ‘희망의 정원(Garden of Hope)’이란 단체가 공동주최한 ‘여성 쉼터, 사회보장 시스템의 심장’이라는 포럼에 참여했다. 각 대륙별로 발표를 했는데, 대부분이 재정마련의 어려움과 정부와의 거버넌스에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부가 중심이 되어 쉼터를 운영하면 입소부터 여러 제한을 하고, 특히 정부가 보수적일수록 더 심하다는 지적을 했다. 얼마 전, 멕시칸정부가 여성단체를 포함해 모든 단체가 부패했다면서 예산을 중단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했다. 유럽에서도 여성쉼터 숫자는 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라고 했다. 특히 이주여성인 경우 불법체류로 추방당할까봐 ‘남편’에게 협박당하고 병원을 가거나 일도 못했음이 드러났다.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가정폭력 관련 법안들이 통과되었지만 여성쉼터를 지속적으로 운영하기에 예산이 턱없이 부족해 입소하기까지 한참을 대기해야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국제의회연맹(IPU)과 유엔 여성(UN Women)이 발표한 2019년 세계 여성지도자 비율 및 국가별 현황. ©IPU·UN Women
국제의회연맹(IPU)과 유엔 여성(UN Women)이 발표한 2019년 세계 여성지도자 비율 및 국가별 현황. ©IPU·UN Women

 

이 외에도 임신중지(낙태)문제에 관련해 의대생들이 중심이 되어 연 포럼에서는 의대 정규 커리큘럼에 임신중지 내용이 들어가야 하고, 수술받는 여성들에게 의료보험 혜택을 주어야한다는 점 등이 다뤄졌다. 이미 임신중지가 불법이 아닌 나라에서도 풀어야 할 과제는 많음을 새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LGBTI 포럼에서는 성소수자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문제만이 아니라,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포함한 의료서비스에의 접근성을 높이는 문제, 그리고 차별과 혐오문화를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논의들이 오갔다.

일주일동안 매우 제한적으로 참여한 UN CSW 회의였지만 여성에 대한 폭력을 종식시키고 성평등 사회를 향한 전 세계인의 열망과 노력을 체감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특히 내년 3월에 뉴욕에서 열릴 UN CSW는 1995년 북경여성대회 선언과 행동강령의 25주년을 맞아 대대적으로 각국의 이행과정을 살피고 여성과 소녀들에게 좀 더 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이를 기념한 전 세계 NGO 활동가들의 회의가 내년 6월에 프랑스나 멕시코에서 열린다고 한다. 내년에는 좀 더 많은 활동가들이 다양한 회의에 참여하고 연대해, 서로에게 용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6년 만에 현장에 돌아온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신임 소장은 24년간 성폭력 추방 운동에 투신한 상담소의 ‘역사’다. 이 소장은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바꾸는 촘촘한 운동을 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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