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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향미>

초등학교 3학년인 우리 아이의 반 애들 중에는 학원 순회로 바빠, 숙제가 많다 싶은 날은 숙제를 못해오는 애들이 대여섯 명에서 많을 때는 10명 가까이 된다고 한다. 아이가 “엄마, 우리 선생님 딱 엄마 같다(평소 좋은 엄마지만, 잘못했을 땐 무서운 엄마라는 말). 그런데 엄마랑은 비교도 안 되게 무서워”라는 말을 했을 때, 이런 저런 식으로 제멋대로인 아이들을 다잡아야 하는 교사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당연하지. 엄마는 너 하나만 혼내면 되지만, 너희 선생님은 34명 애들을 바로 잡아줘야 하니, 훨씬 더 무서워야지”라고 선생님을 지지해 주었다. 동시에 학교가 아무리 형편없다지만 선후는 가릴 수 있어야지, 숙제도 못 해갈 정도로 아이를 학원에 매달리게 하는 부모들에 대해 안타까운 감정이 들었다.

그런데 부모들이 사교육에 아이를 맡긴다고 해서 수강료만 내주고 두 손 탁탁 터는 것은 아니다. 사교육에 아이를 맡기기 위해 부모, 특히 어머니들은 다양한 고군분투를 통해 사교육을 떠받쳐 주고 있다.

엄마는 운전기사… 생활관리사

우선, 강남 중산층 거주지에서 운전기사로서의 역할은 어머니 역할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학교는 체험학습을 한다고 아이들을 데리고 몇 번 수영장을 간다. 신나게 수영장을 다니던 아이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수영이 매우 서툴다는 것을 발견하고 주눅들고 수영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수영을 가르치지는 못하고 맛보이기로만 경험케 하는 학교 체험학습은 아이와 어머니로 하여금 수영 사교육을 선택하게 하고 수영장이 집 근처에 없는 한, 이는 운전기사로서의 어머니 역할을 요구한다. 이미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학교 외부에서 주최하는 수학, 영어, 과학 경시대회에 다니는 아이들이 한 반에 한둘씩 생기며 어머니들은 경시대회 정보 입수, 설명회 참여, 등록, 애 데려다주고 데려오기 등 일체의 매니저 역할을 해야 한다.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밤 12시에 끝나는 학원에 다니게 되면 아이를 데려오는 것이 일과가 된다. 학원 차가 있는 경우도 여러 지역을 돌면 늦기 때문에 부모, 특히 딸을 둔 어머니는 아이를 직접 데려오거나 동네 엄마들과 카풀을 운영하게 된다. 따라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사교육 팀들이 형성되는데, 이때 ‘세컨드 차(어머니용 자가용)’가 없는 엄마는 팀에 낄 수 없다. 어떤 어머니는 집에서 학원까지, 그리고 집에서 20∼30분 거리 내에 있는 마트 밖의 지역으로는 운전에 자신이 없어 차를 몰고 나가지 않는다고 할만큼 운전은 주부의 한정된 생활 범위 안에서 이뤄지기도 한다.

엄마는 과외교사… 방문판매원…

남편의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계층에서 대학원을 졸업했거나 유학까지 다녀와 직장을 갖게 된 어머니가 직장을 포기하는 것은 ‘애 말이 늦어서’와 같은 표면상의 이유로만 설명되기 어렵다. 운전기사 역할 하나만 충실히 한다고 해도 어머니가 전일제 직장 생활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고 운전은 단순 운전이 아니라 아이의 생활 관리 매니저로서의 한 기능인 것이다.

상층 계층에서 육아나 교육을 위해 어머니가 일을 그만 두는 것과는 반대로 서민층에서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즉 사교육을 위해 어머니들이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보다 더 일반적이다. 지역 사회에서 오로지 아이만 기르고 살림에만 전념하는 주부들은 점점 더 보기 어렵다.

정식 출퇴근을 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어머니들은 많지 않지만 어머니들이 살림과 겸업할 수 있는 그 어떤 일들을 하고 있거나 찾고 있는 것이 지역사회에서 관찰할 수 있는 일반적 풍경이다. 남편 월급으로는 사교육비나 생활비 감당이 벅차 어머니들은 다양한 시간제 일을 하기도 하고, 사교육 직종의 경우에는 취업이 바로 어머니가 아이들의 가정교사 역할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일하게도 된다. 여기서 어머니들의 학력 차나 출신 대학에 따라 취업 유형의 차이가 관찰된다.

대체로 대여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학을 나온 경우에는 과외 선생을 한다. 이들은 지역에서 어머니들간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가정 방문형이나 또는 동네 아이들이 교사 집에 오는 형태의 과외를 주로 한다. 영어 방문 교사나 학원 강사를 하기도 하지만 학원 강사는 꽤 늦게 까지 일해야 하기 때문에 그리 선호되지는 않는다. 이 밑의 층이 학습지 교사인데, 이 직종 종사자들에게서는 과외 교사처럼 학벌 우위는 발견되지 않는다.

사교육 직종에 종사하기 어려운 어머니들이 다음으로 많이 종사하는 직종이 방문 판매원이다. 보험 외판원, 책 외판원, 생식 외판원 등을 많이 한다. 지난번에 다루었듯이 돈벌이가 목적이 아니라 학습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 사교육 회사의 책 판매원이 되기도 한다.

결혼한 사람들에게는 한평생이란 것이 자식 낳아 키워 시집, 장가보내면 홀딱 지나가 버리는 별 것 아닌 것이긴 하지만, 그런데 이 일이 애 매니저 노릇이든 돈벌이이든 사교육 수발로 환원돼 버린 듯해 영 허탈하기만 하다. “우리 부부는 자식 사교육을 위해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라는 구령을 전 국민이 열심히 날마다 외치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김정희/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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