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우물 파는 사람이 인정받는 세상 될 겁니다”
“여러 우물 파는 사람이 인정받는 세상 될 겁니다”
  • 채윤정 기자
  • 승인 2019.04.10 23:33
  • 수정 2019-04-10 23: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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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형주 아주대 총장
양방향성 핵심
‘아주비전 4.0’ 발표
“여성이 수학 못 한다는 건 편견,
충분한 동기 있으며 잘 할 수 있어
앞으로는 ‘연결의 시대’ 될 것
전공분야 전문성보다 여러 영역의 지식 더 중요”
박형주 아주대학교 총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박형주 아주대학교 총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해 2월 취임한 박형주 아주대 총장은 수학자 출신이다. 박 총장은 취임 1년을 맞아 10일 아주대의 향후 10년의 청사진을 담은 발전계획인 ‘아주비전 4.0’을 발표했다.

“고등교육을 시작할 때 트레이닝(Training)으로 첫 번째 단계를 거쳤다면, 티칭(Teaching)은 학생이 일방적으로 가르침을 받는 거죠. 3단계는 한 단계 더 발전한 러닝(Learning)이며, 4단계인 크리에이팅 밸류즈(Creating Values)로 쌍방향 학습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아주비전 4.0은 교수와 학습자가 서로 의견을 주고 받는 양방향성이 핵심이다.

박 총장은 물리학을 빨리 배우고 싶어 고등학교 1학년 말 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치른 후 1년 먼저 1982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프랑스 수학자 갈루아의 이론에 빠져 수학자의 길로 진로를 바꿨다. 이후 유학을 떠나 미국 버클리대학원에서 수학과 박사학위를 마쳤다. 국내로 들어와 포스텍 수학과 교수를 거쳐 2015년 수학과 석좌교수로 아주대에 왔다.

박 총장이 수학자인 만큼 평소 “근거 없는 신념은 미신과 다름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인공지능 대학원을 만든다고 할 때 ‘단순히 남들이 하니까 우리도 하자. 요즘 키워드고 멋있다’라고 이유를 말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러면 저는 직원들에게 근거인 데이터를 가져오라고 하죠.”

박 총장은 의사 결정을 할 때 항상 데이터를 보고 결정을 내린다. 교직원들이 처음에는 그의 스타일에 힘들어했지만 이제는 알아서 데이터를 먼저 챙긴다고 한다.

수학자로서 여성들이 수학을 못 한다는 보편적인 생각에는 동의할까. “그건 역할 모델의 부재라고 생각해요. 수학계 노벨상으로 불리우는 필즈상을 여성 최초로 수상한 이란의 미리암 미르자카니를 2014년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수학자대회’에서 만난 적이 있어요. 이란 남자 대표단 중 1명이 아파 올림피아드 대회에 못 나게 되자 그의 교장이 여성이어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마르자하니를 강력히 추천해 대회에 출전했죠. 그 때 동메달을 받아 이란에 첫 메달을 안겨 국가적 영웅이 됐어요. 결국 여성에게도 동기에 주어지면 수학에서 충분히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요.”

아주대는 지난해 기준으로 학사과정 학생수가 9704명에 남학생이 6042명, 여학생 3662명이 재학 중이다. 교원 714명 중 여성은 152명이, 직원 274명 중 149명의 여성이 근무하고 있다.

박 총장은 총장 취임시부터 다양한 구성요소들이 독자성을 가지면서도 서로 협력하는 ‘연결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해오고 있다. 그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배우고 생각하고 연결하고’라는 저서도 지난해 8월 출간했다.

“통계를 보면 한국의 대학졸업자 반 이상이 전공과 무관한 직업을 갖습니다. 기업에서도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만 일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여러 업무를 거치게 되죠. 하지만 전공 이외 부서에 배치됐을 때 대다수는 ‘멘붕’이 되거든요. 전공과 유관한 분야에 가도 몇 년이 지나면 트렌드가 바뀌게 되구요.”

박 총장은 이제는 기업들도 한 영역에서 전문성을 가진 사람에 큰 관심이 없는 시대가 됐다고 말한다. 데이터를 보면 자신의 도메인을 벗어났을 때 기능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닌 ‘잘 배우는 사람’이 살아남는 시대가 된다고 말한다.

“이제는 교육의 틀을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 영역에 관한 소양을 폭넓게 갖는 인재가 중요해졌거든요. 오히려 한 우물을 파면 망할 수도 있어요. 여러 우물을 파는 학생들을 길러내는 게 저희가 해야 할 역할이예요.”

지난해 3월 단과대학을 돌면서 간담회를 개최했는데 미디어학과와 문화콘텐츠학과의 커리큘럼이 유사한 부문이 많아 ‘과목을 공유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학점이라는 예민한 요소가 있어서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제도를 바꾸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번호별로 학점을 따로 매기면 되거든요. 연결의 문제는 제도의 변화를 고민하고 실행해야만 해결할 수 있어요.”

박형주 아주대학교 총장이 9일 경기 수원 아주대학교 총장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대학 중장기 발전계획을 담은 ‘아주비전 4.0’에 대해 설명했다.
박형주 아주대학교 총장이 9일 경기 수원 아주대학교 총장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대학 중장기 발전계획을 담은 ‘아주비전 4.0’에 대해 설명했다.

아주대는 대학의 슬로건도 ‘커넥팅 마인드’로 정했다. “‘연결지성’이나 ‘마음 연결하기’로 해석할 수 있어요. 여러 가지를 같이 보고 연결해서 새로운 밸류를 만들어내는 거죠. 연결지성으로 세계를 변화시키는 대학을 만드는 게 목표예요.”

그렇다면 연결의 시대를 맞아 학생들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 지 많이들 물어온다.

“공학이나 과학을 공부하는 친구들도 철학을 공부해야 해요. 인문대 재학생들도 코딩을 배워야 하구요. 공부하는 게 늘어나면서 백그라운드가 확대되는 거죠.

아이들을 키우는 학부모들에게는 ‘잡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독서도 특정 분야에 편식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우아한 책만 읽히지 말고 만화도 읽히고 무협지도 읽히라고 말해요. 이를 통해 생각 연습이 이뤄지는 거죠.”

그는 학창시절 모습은 어땠을까. 자신의 경우, 어학에 대한 관심이 물리학, 수학까지로 뻗어나간 경우라고 했다. 그는 초·중학교 시절에는 공부에서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5남매 중 중간이어서 없어도 모를 정도로 존재감도 없었다.

“미국 부부가 평화봉사단으로 학교에 왔어요. 제가 남을 돕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그 분들을 도와주려고 영어를 배웠어요. 그들을 통해 회화가 늘었고 나중에는 주한미군방송(AFKN)도 100% 이해하게 됐죠.”

서울대 본고사 문제를 풀어보면 만점을 맞을 정도로 그의 영어 실력은 향상됐고, 고 1 때 중 3 학생에게 입주과외를 해 번 돈으로 영어 원서를 사서 읽기 시작했다. 이 일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아인슈타인 전기를 읽고 물리학에 빠져 물리학자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수학도 대학 때부터 관심을 갖다 보니 잘 하게 됐고 수학자가 된 거죠. 충분한 동기가 있으면 숨어있던 잠재력이 발현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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