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하라 칼럼] 할머니의 파격
[반하라 칼럼] 할머니의 파격
  • 반하라 인류학자·작가
  • 승인 2019.04.20 12:18
  • 수정 2019-04-20 12: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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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반전의 시간은
평생 자신의 삶에서
부정되었던 삶을
향유하는 모험의 여정이다”
1965년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원작을 바탕으로 프랑스에서 제작된 영화 ‘품위 없는 할머니’(La Vieille dame indigne) 포스터.
1965년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원작을 바탕으로 프랑스에서 제작된 영화 ‘품위 없는 할머니’(La Vieille dame indigne) 포스터.

작은 인쇄소를 하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할머니는 능력이 되는 자식한테만 소소한 생활비를 받고 혼자 살겠다고 선언하셨다. 할아버지의 가게를 처분하자 빚만 남았는데72세의 할머니가 어떤 자식들과도 살지 않겠다고 선언하시자 아버지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는지 유일하게 고향에 남아있는 막내삼촌에게서 할머니 근황을 열심히 챙기셨다.

“어머니는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신다”는 소식이 왔다. 당시 소도시의 극장은 비행 청소년들이나 연애하는 남녀들이 들락거렸는데 할머니가 그런데 가시면서 돈 낭비를 하신다니 의외란 느낌을 주었다. 또 소식이 왔다. “어머니는 근처 모텔식당에 가서 격일로 외식을 하신다. 꼭 포도주 반주를 하시고 식당의 부엌보조인 해이한 젊은 여자와 친하게 어울리신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인쇄소의 두어 명의 직공들 포함 12인분의 대가족 밥을 평생 해주셨고 본인은 남은 음식들로 대충 식사를 해오셨기 때문에 나들이 식사소식도 생소했다.

그러나 그건 약과였다. “어머니는 과거의 친지들과 어울리는 대신 허름한 지역의 구두장이 가게에 자주 가신다. 실직한 여급들과 떠돌이 장인들이 모이는 구두장이 집에 어머니는 품행이 해이한 젊은 여성친구도 데려가고 함께 포도주를 마시면서 사회민주주의자로 소문난 구두장이와 객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시세비판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신다.” 막내삼촌은 마침내 할머니의 정신상태가 염려되어 할머니를 찾아가 봤는데 집은 예전 같이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고 홀로 드시는 음식은 지극히 소박하고 어린 사촌들을 대하는 자상한 관심은 예전 그대로라고 보고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파격적 행보는 계속 보고되었다. 헤퍼보이는 젊은 여성과 마차를 빌려서 장미꽃을 꽂은 모자를 쓰고 피크닉을 가기도 하고, 큰 시의 경마장에도 간다고 했다. 부엌에선 젊은 그 여성친구와 포도주를 마시면서 카드게임을 하고, 홀로 된 할머니를 위로차 방문하신 교구 신부님을 외려 할머니가 극장에 초대해서 함께 가셨다고 했다. 할머니는 근방의 사람들 그 누구의 눈에도 외롭기는 커녕 ‘할머니 정말로 즐기시네…’ 하는 수근거림이 빈말이 아니게 인생을 즐기시면서 평생을 돌본 자식들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2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할머니는 젊은 여성친구가 극장에 함께 가기로 해서 들렸을 때 안락의자에서 앉아 창을 너머 보시는 자세로 평화롭게 숨을 거둔 채 발견되었다. 후에 구두장이가 큰 도시로 가서 괜찮은 구두방을 열었는데, 집을 저당잡혀 자식들도 모르게 써버린 할머니의 돈은 구두장이 친구에게 쾌척한 선물 아니었을까 자식들은 짐작만 할 뿐이었다.

위는 독일 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쓴 ‘품위 없는 할머니’(Die unwürdige Greisin)라는 아이러니한 제목이 붙은 단편의 이야기다. 자식들의 눈에는 충격적일 수 있었던 ‘무자격한’ 분일 수 있지만 말년에 극적인 반전의 삶을 선택한 할머니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 삶의 아름다움을 음미하고 떠나셨다. 문학작품을 영상으로 옮겨 원작을 잘 풀어내긴 쉬운 일이 아니지만 독일 소도시가 배경인 단편을 프랑스의 마르세이로 배경을 바꿔서 르네 알리오 감독은 1965년에 멋진 영화로 만들기도 했다. 단편을 읽든 영화를 보든 거기서 볼 수 있는 할머니의 반전의 시간은 평생 자신의 삶에서 부정되었던 삶을 향유하는 모험의 여정이다. 소도시 사람들이 멸시의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해이한 폼새의 식당 부엌 도우미(영화에선 바에서 일하는 여급으로 바꾼 것 같다)에게 할머니는 편견없이 다가갔다. 할머니는 그가 지닌 삶의 피로함을 이해하기 때문에 그대로 친구가 될 수 있었고 젊고 아름다운 그와 보내는 시간은 어떤 삶의 시간보다 가볍고 부드럽게 느껴졌을 거다. 서로 포도주로 신경을 풀면서 카드게임을 즐기고 함께 영화를 보고 피크닉을 다니는 등 즐거운 시간을 나누면서 쌓을 수 있는 진정한 우정의 기쁨을 맛보았다. 또 구두장이 집에 모여 정의가 실종한 세상에 억눌린 사람들이 튀어내는 이야기를 듣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아마도 구두장이의 논설이 맘에 들었을 할머니는 집을 저당잡혀 마련한 돈을 쾌척하실 만치 그의 입장을 후원하셨던 싶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 들어가서 밥을 먹고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하는 것은 72세의 할머니에게 큰 모험이다. 할머니는 모험을 결행하는 삶의 반전을 통해 우정과 연대의 열린 마음으로 행동으로 세상의 기쁨, 삶의 기쁨을 만끽하고 떠나셨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1300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참석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2017년 ‘1300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참석한 김복동 할머니.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어떤 시점에서 이전의 삶과 전혀 다른 모험의 삶을 선택해서 이야기 속의 할머니를 뛰어넘어 현실의 삶에서 더할 수 없는 용기로 삶을 만끽하셨던 김복동 할머니를 우리는 안다.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과거를 안고 살았던 김복동은 예순 살도 지난 나이에 가까운 친척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서운’ 세상에 커밍아웃하는 용기를 냈다. 그 후 상상을 초월해서 전개되었던 모험적인 여정에서 김복동의 삶은 전세계적인 여성인권 운동가로서의 반전의 삶으로 승화되었다. 할머니가 된 김복동은 극악한 전쟁범죄를 전 세계에 증언하고 책임을 묻고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한편, 비슷한 전쟁범죄의 피해자가 된 전 세계 젊은 여성들의 고통을 보듬고 그들에게 생존의 용기를 주셨고 그 바탕에서 고매한 인권투쟁의 길을 걸어가셨다. 할머니는 의롭지 못한 정치가들을 꾸짖고 피해자 할머님들과 함께 연대의 수요시위를 전개하시면서 의로운 세상을 향한 열정적 모범을 구현하셨다. 할머니는 사랑으로 나비재단을 만들고 자신을 가볍고 아름답게 정신의 꽃들 사이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나비의 모습으로 보여주셨다. 같은 피해자 할머님들을 서로 받쳐주며 행동하셨고 하나 둘 돌아가시는 분들을 향해선 소명으로 유지를 받아 연대투쟁에 적극 나서시면서 전세계 여성들과의 연대를 이루고 거기서 얻은 우정과 믿음, 강한 연대의 삶이 주는 따뜻하고 고결한 삶의 맛을 음미하셨다. 삶의 마지막을 반전의 절정으로 끌어올리면서 떠나셨던 브레히트의 할머니와 김복동 할머니에게서 용기와 모험, 자존의 회복, 우정과 사랑을 바탕으로 한 연대의 기쁨 그리고 쟁취한 큰 자유를 본다. 할머님들의 파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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