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존엄성 짓밟는 성범죄
끊임 없이 되풀이되더라도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 위해
체념 말고 모두 행동해야

박찬성 변호사
박찬성 변호사

 

한 언론사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필자의 사무실이 위치한 지역에서 장애인 대상 성범죄 사건이 또 발생한 모양이다. 리포터가 물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비슷비슷한 장애인 대상 성범죄가 왜 이렇게 반복되는 건가요?” 말문이 막혔다. (그… 저기, 제가 한 짓이 아니라서, 저도 잘…) “글쎄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렇게 반복되는 성범죄에 대해서 변호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입은 안 열리고 점점 더 머리만 복잡해졌다.

장애인 대상 성희롱·성폭력에 관한 처벌 조항에, 그래도 지난 10년 동안 상당한 보완이 이뤄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성폭력처벌법 이외에 장애인복지법에도 별도의 성희롱·성폭력 처벌규정을 두어서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까지 처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하였다. 형법상 강간죄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되어 있지만, 신체 또는 정신적 장애가 있는 사람을 강간한 자에 대한 성폭력처벌법 조항은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정한다.

19세 이상인 가해자가 19세 미만의 장애아동․청소년을 간음했다면 이때는 피해자의 동의 유무, 폭행․협박 여부를 묻지 않고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공소시효에 대한 특별한 예외규정도 두었는데, 신체 또는 정신적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강간이나 강제추행 등 법에서 정하는 몇 가지 범죄 피해를 입혔다면 공소시효의 적용이 배제된다.

답하기가 어려우니 제대로 된 답변은 미뤄두고, 장황하게 법 조항을 늘어놓았거늘 결국에 이는 동문서답일 수밖에는 없다. 이런 날카로운 질문자 같으니라고.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문제만 더 복잡해졌다. ‘법이 꽤 꼼꼼한 것 같은데도 문제가 반복되는 이유는 도대체 뭔가요?’ 이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끙! 빠져나갈 수가 없다. 망했다.

뭐가 문제인 걸까? 타인의 존엄성을 끝끝내 짓밟고서라도 자기의 부도덕하고 추악한 욕구를 충족하려는 인간 내면의 어두운 본성이 문제인 걸까? 장애인 성범죄에 관한 어느 논문에서 이런 내용을 읽었다. 여러 유형의 장애인 가운데에서도 특히나 지적 장애인이 성범죄 피해를 경험하는 비율이 유달리 높은데, 이는 타인의 숨은 의도를 잘 파악하지 못하고 타인을 쉽게 믿는 지적 장애인의 특성에 기인하는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성범죄라는 것 자체가 이미 윤리를 저버린 악행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순수한 인간적 신뢰를 악용하고 그 신뢰를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가며 타인의 인권을 유린하는 범죄가 더할 수 없이 극악하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조금 더 생각해 보자. 하기는, 경찰·검찰이 매일 같이 범죄수사에 전념하고 있지만 그렇더라도 세상에 범죄가 사라질 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범죄가 되풀이 된다는 것은 인간이란 존재가 워낙에 악한 면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인간 본성을 논하는 답변도 그리 틀린 것은 아니리라. 한데, 매우 찜찜하다. 이건 너무 근본적인 이야기다. ‘인간은 원래 그래요’라는 답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나? 어쩔 수 없으니 체념하라는 건가? 이게 무슨, ‘산 정상을 향해서 노 저어 가는 것’ 같은 소리인가!

오래 전에 들은 이야기다. 한 소년이 매일같이 바닷가에 나와서 파도에 떠밀려 뭍으로 나온 불가사리를 다시 바다로 던져주었단다. 그 모습을 본 누군가가 비웃으며 물었다. 내일이면 또 다른 불가사리가 다시 파도에 밀려 올 텐데 지금 네가 하는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소년이 답했단다. 적어도 오늘 바다로 돌려보내 준, 그래서 삶을 되찾은 바로 그 불가사리에게는 분명한 의미가 있는 것 아니냐고.

어디선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저질러지는 악행을 앞으로도 우리가 100퍼센트 뿌리째 뽑아내 버릴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손을 놓고 무신경한 태도로 일관한다면 지금보다도 더 많은 피해자의 눈물을 맞닥뜨리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반대로 우리 모두가 조금씩 더 관심을 가지고 주변을 살필 때, 국가와 사회가 제도적 차원의 꾸준한 보호와 배려의 노력을 더해 나갈 때, 우리는 오늘보다는 더 나은 내일을, 성폭력의 위험으로부터 구출된 한 사람 한 사람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반복되는 사건 소식들이 절망을 낳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결코 비관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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