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 문화평론가

누구더라, 원폭의 섬광을 ‘신의 윙크’라 했던 사람이? 실제로 원폭의 위력은 신이 자연에 감추어놓은 창조의 비밀을 훔친 자가 만들어낸 초인간적인 규모의 파괴력이리라. 그 섬광은 실로 인간적 척도를 초월하는 신적 규모를 가진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신’의 윙크가 아니라, 신의 지위를 넘보는 자, 바로 ‘악마’의 징그러운 윙크라 할 수 있다.

악마는 거대한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 플래시를 터뜨리고, 수 킬로미터 상공까지 버섯구름을 솟아오르게 하고, 그 밑의 모든 것은 거대한 용광로 속에 집어넣어 자글자글 끓어오르게 하고, 주변의 산소를 빨아들였다가 다시 내뿜어 지상에 서 있는 모든 것을 날려버린다. 충격과 공포. 압도적인 무력의 시위로 적의 저항력을 무력화시킨다는 생각. 부시는 이 히로시마의 전쟁미학을 이라크에서 재연하고 싶었다.

‘충격과 공포’의 효과를 위해 원래 미군은 이 폭탄을 무인도에 떨어뜨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맨해튼 계획에 참여했던 한 과학자가 “이 폭탄을 사람이 사는 곳에 떨어뜨려야 비로소 효과가 있을 것”이라 주장했고, 실제로 그 폭탄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져 그들이 바라던 효과를 거두었다. 그렇게 격렬하게 저항하던 일본의 군부도 단 두 개의 폭탄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원자폭탄을 민간인들이 사는 곳에 떨어뜨려야 한다고 주장했던 그 과학자는 순수 기술적인 면에서는 현명했다. ‘충격과 공포’의 작전이 후세인에게 그들이 노렸던 미적 효과를 주지 못하는 이유는, 거기에 사용된 폭탄의 파괴력이 원폭의 그것을 따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폭격이 의도적으로 민간인을 겨냥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충격과 공포의 효과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충격과 공포’의 미적 효과는 외려 미영 동맹군이 체험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라크군의 ‘자살폭탄공격’이 그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자살폭탄공격’은 개인주의 문화를 배경으로 자라난 미국과 영국군 병사들에게는 아마 상상할 수 있는 한계 밖에 있는 현상이리라. 그 어떤 대의를 위해 스스로 제 목숨을 끊을 수 있다는 이슬람의 윤리, 그것 역시 인간적 상상의 규모를 초월한 것이고, 그 앞에서 앵글로색슨의 병사들은 아마도 어떤 숭고한 ‘충격과 공포’의 감정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리라.

가공할 파괴력을 무기로 한 가학적 숭고와 초인간적 희생을 무기로 한 피학적 숭고. 한쪽은 첨단과학 기술로 숭고의 효과를 연출하고, 다른 쪽은 봉건적인 종교적 심성으로 또다른 숭고의 효과를 연출한다.

한쪽에는 감정이 메마른 차가운 과학적 합리성의 괴물이, 다른 한쪽에는 뜨거운 파토스로 가득 찬 종교적 비합리성의 괴물이 맞붙어, 인간의 척도를 넘어서는 숭고한 규모를 자랑한다. 이라크 전선에서는 이렇게 두 개의 숭고가 부딪치고 있다.

미국의 초기 전략에 차질이 생겨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진 것은 곧 그들이 사용했던 숭고의 전략에 차질이 생긴 것을 의미한다. 부시가 말한다. “우리 연합군이 어떠한 경우에도 ‘가공할 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아마도 원자폭탄처럼 거대한 버섯구름을 만들어내며 원폭에 맞먹는 파괴력을 자랑한다는 신형 폭탄을 가리키는 듯하다. 이제까지는 ‘숭고’의 시늉만 냈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숭고’하겠다는 얘기다.

다른 쪽에서도 숭고의 효과를 강화하기로 했다. 극도의 과학적 합리성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극도의 종교적 비합리성뿐이다. 이미 4천 명의 자살특공대가 순교를 각오한 채 동맹군 병사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도 모자라 아랍 전역에서 자발적 순교자들이 몰려오고 있다고 한다.

알라는 앞으로 승천할 순교자들을 위해 천국에 미리 넓은 공간을 마련하느라 바쁘다고 한다.

미국과 이라크는 이 두 개의 숭고로 서로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어 상대의 저항을 무력화시키려 한다. 하지만 이 숭고한 놀이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사람들은 결코 숭고하지 않은 민간인들이다. 평균적인 수준의 합리성과 평균적인 정도의 종교적 심성을 가진 너무나 평범한 남자들, 여인들, 그리고 아이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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