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논단] 인지장애 할머니의 성애 (1)
[여성논단] 인지장애 할머니의 성애 (1)
  •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 승인 2019.04.14 00:23
  • 수정 2019-04-14 00: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속박에서 자유로워지자
나오는 말과 감정
무성적 존재로 여겨졌던
할머니의 속내

“내가 머 성적으로 머를 하자는 그런 욕심이 있어서 그러는 거는 아니야. 그냥 밤에 와서 내 침대에서 같이 자자는 거야. 그러면서 서로 정도 생기는 거잖아. 그런데 니네 아버지는 아주 독하고 인정머리가 없어. 그걸 안 들어주는 거야. 다른 걸로 잘 해주는 거는 그냥 가식이고 거짓이야.”

왜곡과 분노가 최고조를 들락거리던 시절, 어느 날 뜬금없이 차분해져서 큰딸인 나를 붙들고 한 말이다. 인지장애의 기미조차 없이 나름 일목요연하고 타당해보이지만, 저 주장의 핵심은 아흔을 넘은 남편이 방에 다른 여자를 들여 아이까지 낳았다는 거다. 밤마다 남편에게 핸드폰을 해대고, 받지 않으면 더 바글바글 속을 끓이다가, 찾아오는 남편이나 자식들에게 한 바탕씩 하는 거다. 아내에게 당분간은 핸드폰이 없는 게 낫겠다는 간호사와 자식들의 말을 듣지 않은 벌을 남편은 톡톡히 당하고 있는 거고, 귀 잡순 덕에 아버지가 밤잠이라도 푸욱 잘 거라는 게 자식들 생각에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각각 별도의 독립거주공간을 쓰다가 노쇠와 인지장애가 심해진 아내가 공동 캐어홈으로 옮긴 2018년 1월 1일 이후 새롭게 드러난 증상이다. 그 전까지 엄마의 집착과 인지장애에 의한 왜곡은 돈과 장남이었는데, 공동 캐어홈과 휠체어에 ‘갇히’고서는 남편에 대한 왜곡이 단연 최고가 되었다. 만 20세에 결혼해서 주생계부양자가 뒤바뀐 것에서 시작된 갈등이 심했던 부부가, 2012년 만 79세(남편 83세)에 실버타운으로 들어와 1, 2년 사이에 ‘세상에 없는 잉꼬부부’가 된 것이 불가사의였는데, 이제 또 헤까닥 뒤집어진 거고 물론 가끔 엎어지기도 했다. 과일과 간식을 챙겨 하루 세 번씩 아내를 찾아와 휠체어를 밀며 타운 마당을 산책하던 남편은, 다른 노인들과 직원들과 자식들과 때론 손주 며느리에 증손주 앞에서까지 난데없는 모욕을 당해야 했고, 끝까지 잘 견뎠다. 그런 아내를 이제 자기 방에 데려 갈 수 없는 것은 그로서는 최소한의 방어였고, 이를 아는 자식들은 “아버지 방에 가봐야겠다!”는 맹렬한 주장을 아버지 몰래 가끔 들어주면서 방을 싹 다 보여주곤 했고, 엄마가 확신하는 증거는 나올 리 없었다. 그러면 “니네들까지 다 한통속이 되서 나를 바보를 만든다.”고 했다.

그러다가 또 어느 날은 행복해져서, ‘니네 아버지는 나보다 훨씬 인품이 좋은 사람이’란다. 그 김에 설득이라는 걸 해보려고 그 억지를 들먹이면, “내가 언제 그랬냐? 나는 그렇게 교양 없이 막 되먹은 여자는 아니다, 한국남자들이 다 거기서 거기지만, 나는 그런 거 가지고 남자를 못살게 구는 여자는 아니다. 양반집 여자는 그러면 안 된다”는 거다. 그 애와 증, 제 정신과 딴 정신 사이를 오르내리느라 우선 엄마가 가장 힘들었고, 남편과 자식들과 사위 며느리들 모두 괴로움을 넘어 때로 기가 찼고 민망했지만, 나로서는 한편 각별한 공부거리여서 몰래 흥미로웠다. 워낙에 열정적인 여성이었으니, 성애적 욕망 역시 비교적 많았을 수 있다. 다만 평생 남편을 미워하느라 드러나지 않았을 수 있고, 혹은 눌러 가둬놓았을 수 있다. 인지장애로 자타의 감시에서 자유로워진 채 나오는 말과 감정들은, 무성적 존재로만 여기지는 “할머니들의 성애”에 대해, 모처럼 사례 하나를 확보한 거다. 게다가 그녀는 일흔 끝에 2년 간 나와 구술생애사 작업을 한 내 엄마다. 이리저리 옆구리를 찌르며 끌어내려 했던 성애에 관한 내 질문에 대체로 입을 싹 씻었던 그녀가, 인생 막판에 와서 사실이든 투사된 방어기제든 말과 감정을 털어놓고 있는 거다. 거기에 무심결에 내게 말했거나 내가 보았던, 혹은 딸의 성을 단도리 하느라 했던 잔소리의 기억들을 끌어내 역추적해서, 그녀의 성애에 관한 경험과 인식과 표리부동함과 분열 등을 나름 정리해볼 수 있는 거다.

“쪼그만 기집애가 벌써!“ 여덟 살 즈음 이불 속에서 자위를 하다 들킨 내게, 눈을 흘기며 누구 들을 새라 속삭이듯 빠르게 뱉은 엄마의 잔소리가 그 시작이다. 그렇다면 엄마도 이미 자위의 꿀맛을 알았던 거다.

박현숙 작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50 (3가 222번지) 골든브릿지빌딩 1층, 9층
  • 대표전화 : 02-318-93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신준철
  • 제호 : (주)여성신문사
  • 사업자등록번호 : 214-81-03304
  • 대표이사 : 김효선
  • 발행·편집인 : 김효선
  • 여성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9 여성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admin@wome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