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페미니스트와 ‘사회생활’
[기고] 페미니스트와 ‘사회생활’
  • 여성주의 칼럼니스트 끝순
  • 승인 2019.04.12 10:45
  • 수정 2019-04-12 1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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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여자’들을 희롱하고,
배제시키고, 벌주는 것을
정당화하는 대한민국의
‘사회생활’은 함께 모여
살아가는 것에 대한 증오행위

 

‘사회생활’ 못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무서워서 뭔 말을 못 하게 만드는 여자’가 사회생활 내내 나를 따라다닌 평판이었다. 그러나 나는 무서운 사람이 아니다. 누구를 때리거나 의도적으로 괴롭히거나 면전에서 욕한 적 없고, 누군가를 무섭게씩이나 할 만큼의 권력을 가져본 적도 없다.

최근 직장에서 해고당했다. 사람을 일회용품처럼 쓰기로 이름난 조직에서 일했는데 또 한 번의 ‘분리배출’을 진행하면서 사회생활 못 하는 내가 가장 먼저 처분당했다.

나는 그놈의 사회생활을 참도 못했다. 휴지 어디에 있느냐, 어디 사무실 전화번호가 뭐냐는 질문이 일상적으로 말단 여성 직원인 나를 특정해서 떨어질 때 모른다고 답했다. 정말 모르니까. 차 대접을 해야 할 때 여성 직원들만 우르르 일어나 탕비실을 기웃거리고 있으면 남성 직원들도 불러서 ‘거들게’ 했다. 다짜고짜 반말로 무례한 말을 쏟아내는 업무전화에는 그렇게 말하면 같이 일할 수 없다고 답했다. 몇 개월 일하다 보니 나는 조직에서 ‘급진 페미니스트’로 불리고 있었다. 페미니즘에 대한 한국 가부장제 사회의 구조화된 혐오를 이용하여 ‘무서운 여자’들을 ‘더 희롱하고, 더 배제시키고, 더 벌주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발명된 그 호칭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나의 페미니즘이 얼마나 가짜인지에 대해 내 앞과 뒤에서 자주 감별회를 열었다. 괴로웠다.

나는 끝까지 ‘급진적’일 수는 없었다. “다른 상사들이 너를 해고하라고 한다” “직원들이 너와 일하기 싫어한다”는 말까지 듣게 되었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나에게 강요되던 사무실 ‘돌봄노동’과 ‘감정노동’을 거부하면서 유난히 일을 못하는 사람으로 재직기간 내내 지칠 만큼 후려치기도 당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도 ‘사회인’이었다.

그러다 최근 웃지 못할 소식을 듣게 됐다. 그 직장에서 나에게 사회생활을 못 한다고 앞장서서 말했던 30대 남성 직원이 대학생 서포터즈단 중 20대 초반 여성 다수에게 상습적으로 새벽에 연락하고 둘이서만 술 먹자고 추근대 공식적으로 문제가 불거졌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나에게 “당신 앞에서는 무서워서 미스터피자도 못 시켜먹는다”라며 나를 ‘잘못된 페미니스트’ 취급하던 그 조직이 피의자 징계와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대학생 대표단에게 좋은 게 좋은 거니 덮고 가자는 식으로 마무리 짓자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생각하게 됐다. 그런 게 더는 ‘사회생활’이어선 안 된다고.

대한민국은 지속불가능한 사회가 되었다. 이를 가장 명시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 중 하나가 ‘합계출생률’ 통계이다. 2018년 대한민국의 합계출생률은 0.98명(통계청, 2018년 출생·사망통계 잠정 결과)이다. 합계출생률이 1.3명이던 2017년에 세계 198개 집계대상국 중 세 번째로 출생률이 낮았으니(유엔인구기금, 2018세계인구현황 통계) 다음번 통계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출생률이 낮은 국가로 순위 매겨질 지도 모른다.

저출생 문제에는 수천만가지의 이유가 있겠으나 나는 그것이 함께 살아가는 것이 끔찍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나라에서 사회생활은 어원대로 ‘함께 모여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증오행위에 가깝다. 약자와 소수자를 희롱하고, 다양성을 배제시키고, 권력자의 입맛에 따라 선택적 차별이 상벌처럼 내려지는 것이 사회생활이라 명명되는 이곳에서 우리는 살아있음을 혐오하고 함께하는 것을 증오하게 되었다. 인간을 지속시키지 못하는 사회가 지속불가능해진 것은 당연하다.

솔직히 나는 저출생 관련한 뉴스들에 낙담보다는 어떤 기대감을 느낀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서운 여자’라는 이유로,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그리고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부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권력이 없다는 이유로 이 사회는 나를 끊임없이 탄압하고 소외시켜왔다. 사회발전에 기여하고 미래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런 사회의 근간의 위기가 나에게는, 내가 발붙이고 살아가는 땅에서 내가 제외되지 않는 새로운 사회가 움트는 희망의 전조로 보인다.

그 모든 ‘증오’를 끝내야 한다. 함께 살아가는 것이 끔찍하지 않은 사회생활이 이제는 시작되어야 한다.

ⓒ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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