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경선, 지역구 할당, 여성전용구제, 본선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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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정치 진출을 늘리는 제도개선 요구가 거세지만, 정치판의 ‘낡은 정서’ 탓에 난항을 겪고 있다. 여야 정치권은 여성관련 정당·정치 개혁방안이 나온 뒤로도 짐짓 처리를 미루고 있고, 여성의 진출을 강력히 천명해 온 청와대나 정부도 뒷짐을 지고 있다.

여성들은 상황이 마뜩치 않자 ‘자력갱생’에 나서, 정치판과 사회에 뿌리 박힌 고정관념을 깨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정당·정치개혁을 명분으로 삼은 숱한 개혁안과 제안들이 여성에겐 되레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상향식 공천에 따른 경선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계보정치를 깨는 정치개혁의 대표적인 방안이긴 하지만, ‘조직’이 없는 여성에겐 크게 불리한 면이 있는 탓이다. 지역구 국회의원 30% 할당은 기득권을 내놓지 않으려는 남성들의 방해로 전망이 불투명하다. 이 와중에 민주당 개혁특위가 내놓은 여성전용구제는 다시 위헌 시비가 붙었다.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란 해묵은 논란도 다시 일고 있다. 이것들은 여성은 당선 가능성이 적다는 이유로 합리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여성의 정치 진출을 놓고 벌어지는 논란을 짚어본다.

쟁점①

내부 경선은 과연 민주적인가

공직후보자 선출과 관련, 여야의 개혁방안은 지금까지 모두 ‘상향식 공천’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시·도 의원은 당원만으로 뽑되, 국회의원은 지난해 대선 때 선보였던 국민경선제를 원용한 국민참여 경선이나 완전개방 경선제로 한다는 것.

노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후보 경선에서 승승장구한 것을 두고 ‘노풍’으로 표현한 것은, 당시 그가 경선 승리의 전제가 되는 ‘인맥과 계보, 돈’에서 크게 열세였기 때문이었다. 여성 정치인들이나 후보들이 내부 경선에서 이길 가능성을 낮게 점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에 대해 “내 경험으론 당내 경선을 할 때 적어도 수억원이 든다”며 “여성들은 흔히 말하는 계보나 조직이 없기 때문에, 사람을 쓰고 일일이 발로 뛰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선택을 꺼리는 유권자들의 의식도 한 몫 한다. 민주당의 한 여성 의원은 “여성이 지역에서 아무리 일을 많이 해도, 남성인 ‘지역유지’가 나서면 그 사람한테 관심이 쏠린다”며 “보스정치, 패거리정치에 길들여진 국민들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충분이 자격이 있는데도 ‘여성’이란 이유로 본선에 나갈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건 여성의 ‘피선거권’을 해치는 비민주적 행태란 얘기다. 이 때문에 여성들은 사고가 난 지구당의 조직책을 여성에게 주거나, 현역 지구당 위원장이 여성이면 그를 경선 없이 출마시키는 방안을 제안했다. 아울러 여성 후보들이 경선에서 주로 2위를 하는 것이 앞서 말한 ‘고정관념’에 따른 것인 만큼, 여성이 2위를 한 경우 두 사람 모두를 중앙당에 추천토록 하자는 제안이다. 경선 때 여성 후보에게 아예 가산점(20%)을 주자는 안도 있다.

쟁점②

지역구 할당은 불가능한가

남성이 대다수인 여야 지도부는 여성 할당제를 말할 때 “비례대표를 절반으로 하면, 그걸로 다 되지 않냐”고 흔히 말한다. ‘엄청난’ 선심을 쓰고 있다는 식이다. 비례대표 절반이라고 해봐야 의석은 여야를 통틀어 23석밖에 되지 않는다. 전체 의석을 늘리지 않는 한 실효가 없다는 얘기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외교)는 이와 관련 “명목상 할당제를 권고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할당제를 지키지 않았을 경우, 실제로 불이익을 받도록 하는 조치가 있어야 할당제를 실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야 의원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 두 당 개혁특위가 지역구 국회의원의 30%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토록 하자는 안에 국고보조금을 더 주거나 뺏는 방식의 강제조항을 넣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것이 입법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핀란드나 스웨덴 등 유럽 나라들은 의회의 절반이 여성 의석인 경우가 많은데, 우리 식으로 말하면 모두 비례대표들이다. 비례대표를 늘려 여성 의석을 확보하려면 국회의원 전체 의석을 키워야 하고, 선거구제도 바꿔야 한다는 난제가 있다.

한 여성 국회의원은 “여야 모두 현재 당 지도부를 두고는 이 문제를 풀 수 없다”며 “정계 개편이 진행된 뒤, 여성 지역구·비례대표 할당을 각 당 합의로 입법화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여성전용구제 같은 할당 방안까지 나오긴 했지만, 마땅한 시행방안이 없는 게 사실”이라며 “소모적인 마찰 없이 지역구 여성 할당을 관철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털어놨다.

쟁점③

여성전용구제는 위헌인가

민주당 개혁특위의 개혁방안이 주목을 받은 건 ‘여성전용구제’를 도입하자는 제안 덕이다. 전국을 일정 수의 선거구로 나눈 뒤, 특정 선거구에선 여성 의원만을 뽑자는 것이다. 재·보궐선거나 선거구가 나뉘는 경우에 여성 후보 공천을 의무화한다는 내용도 함께다.

처음 이 의견을 낸 이는 민주당 이미경 의원. 이 의원은 “지난해 지방선거 때 실제로 여성전용구를 한 곳도 있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며 “내년 총선에서 여성이 정치권에 대거 진출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조항”이라고 강조했다.

남성 후보들의 진출을 원천봉쇄한다는 게 위헌론을 던지는 쪽의 근거다. 한 의원은 “한 선거구에서 한 명을 뽑는 현행 소선거구제 아래선 위헌소지가 있을 수 있다”며 “대선거구제를 해야 실효성이나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전용구제는 지난해 6·13지방선거에서 이미 시행된 바 있다. 당시 민주당 광주 서구지구당과 한나라당 안양 동안구지구당이 광역의회 후보를 모두 여성으로만 뽑아 선거를 치러 모두 당선시켰다. 신설 지역구에 여성 후보를 낸 것. 이 때 위헌 논란은 전혀 없었다.

대만과 인도도 여성 정치참여를 늘리기 위해 여성전용구제를 활용하고 있다. 특정구엔 모든 정당이 여성만 공천해 경쟁하는 식이다. 남성들이 위헌이라며 시비를 건 적은 한 번도 없다.

쟁점④

여성 후보는 본선 경쟁력 없나

여성의 정치 진출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본선 경쟁력’이다. “지역에서 인맥도 돈도 없이 당신이 당선할 보장이 있냐”는 으름장에 자신있게 대꾸할 여성 후보가 없다는 얘기다. 이는 역설적으로 여성 후보가 구태의연한 정치판과 거리가 있음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지구당과 사조직 유지, 천문학적 선거비용, 음성적인 정치자금 조달, 파벌과 인맥. 남성 정치판에서 ‘전가의 보도’격인 본선 경쟁력을 신율 교수는 이렇게 풀이했다. 전문가들이 “노 대통령이 언제 본선 경쟁력이 있었냐”고 되묻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민주당 서영교 부국장은 “참여정부 출범은 더 이상 구태의연한 정치풍토가 유지될 수 없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며 “국민들도 기존 정치판의 악습에 때묻지 않은 여성들을 원하는 시대가 된 만큼,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단체 한 관계자는 “여성 정치 지망생들은 자신을 알릴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고, 기회가 있어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며 “곧 범여성계 후보군을 뽑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선전할 계획이며, 여성언론의 적극 협조를 바란다”고 지적했다.

배영환 기자ddarijoa@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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