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료원 간호사 4명
선천성 심장질환 가진 아이 출산
보호장비 없이 유해 약품 다뤄
행정법원은 업무상 재해 인정,
서울고법이 뒤집어 대법원 계류 중

의료진이 응급의료센터에서 환자를 응급처치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의료진이 응급의료센터에서 환자를 응급처치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임신 중 여성노동자가 하던 업무가 태아에게 악영향을 미쳐 태아가 선천적인 장애를 가지고 태어날 경우, 이를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2009년 제주의료원 근무 간호사들에게 발생한 사건으로,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과 의료연대본부는 1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 제주의료원 노동자 자녀에 대한 선천적 심장장애에 대한 산업 재해 인정을 빠른 시간 내에 판결할 것을 촉구했다.

제주의료원 근무 간호사들 중에서 2009년 임신한 15명 중 4명이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진 아이를 출산했으며, 5명은 태아를 유산했다.

임산부들이 병동에서 항암제 등 유해한 약품을 보호 장비도 없이 절구에 갈아 포장했으며, 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해 과중한 업무에도 시달렸다.

심장질환아를 출산한 간호사 4명은 2012년 근로복지공단 제주지사에 요양급여를 청구했지만, ‘산재보험은 근로자 본인의 부상·질병·장애·사망만을 의미하며, 원고들의 자녀는 산재보험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해 불승인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2014년 서울행정법원은 이 사안에 대해 “태아의 건강손상은 모체의 건강손상에 해당하므로, 여성근로자의 임신 중 업무에 기인해 태아에게 건강손상이 발생했다면 근로자에게 발생한 업무상 재해로 보아야 한다”며 승인했다. 하지만 2016년 서울고등법원은 “여성근로자의 업무상 사유로 생긴 건강손상으로 비롯된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은 근로자 본인의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며 이전 판결을 뒤집고 불승인 처분을 내렸다. 이 사안은 2016년 대법원에 상고됐으나 아직도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이날 공공운수노조와 의료연대본부 등 참석자들은 “업무상 재해에 어머니인 여성근로자의 업무에 기인한 태아의 건강손상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이는 임신한 여성근로자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평등원칙에 위배되는 부진정입법부작위(법을 규정했으나 불완전하거나 불충분한 경우)로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조성애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국장은 “태아가 업무로 인해 장애를 가졌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산업재해 인정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법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엄마로부터 발생한 아이의 장애가 아니라 사회가 책임져야 할 ‘사회적 장애’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많은 부모가 자신의 책임인 양 죄스럽게 살아가는 사회를 바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공공운수노조측은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유해위험물질에 노출된 상태로 임신과 출산과정에 노출돼 있다”며 “이번 사안에서 산업재해를 인정받아야 향후에도 여성의 모성보호를 강화할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조이현주 법무법인 여는 변호사는 “태아는 법적으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모체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된다”며 “어머니의 업무로 태아에게 생긴 건강손상도 재해로 인정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1월 이 사안에 대해 “태아의 건강 손상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는 것은 태아의 권리 및 보호 측면에서 바람직하다”며 “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단이 여성근로자의 모성이 보호되고 기본권이 신장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며 담당 재판부에 의견을 제출, 대법원이 판결에 이를 반영할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에 앞서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우송대 산학협력단에 발주한 ‘자녀 건강 손상에 대한 산재보상 방안’ 연구 조사에서도 “생식독성 취급군은 비취급군보다 선천성 질환아를 낳을 확률이 33% 더 높았다”는 결과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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