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성별임금격차 압도적 1위
EPIC 회원국다운
범정부적 노력있어야

[CSW Report] 제63차 유엔 여성지위위원회(CSW)가 지난 3월 11일부터 22일까지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렸다. CSW는 매년 세계 각국 대표와 여성단체 활동가, 전문가 등이 모여 성평등과 여성이슈를 논의하는 가장 큰 규모의 국제회의로 '유엔 여성 총회'라 불린다. 올해 참가자들의 참관기를 릴레이 연재한다.

뉴욕 유엔본부 앞에 세워진 조형물 ‘매듭진 권총(knotted gun)’. 스웨덴의 조각가 '칼 프레드릭 로이터스워드의 작품으로 비폭력을 상징한다. ©임윤옥
뉴욕 유엔본부 앞에 세워진 조형물 ‘매듭진 권총(knotted gun)’. 스웨덴의 조각가 '칼 프레드릭 로이터스워드의 작품으로 비폭력을 상징한다. ©임윤옥

“국제회의 참여하러 가요.” 그러면 단박에 나오는 질문. “영어 잘하시나 봐요.” “오 노, 저 영어 못해요.” 그러니 이 ‘CSW 리포트’는 전문적인 참가기라기보다 참여 소감이나 인상기 정도여서 명쾌한 지식과 정보를 원하시면 유엔 여성(UN WOMEN) 홈페이지 방문을 추천하고 싶다.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부대 행사인 ‘CLOSING THE GENDER PAY GAP Waiting 217 years or Acting now?’(성별임금격차를 끝내기 위해 217년을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지금 당장 행동할 것인가?)에 참여하게 되었다. 100대 64, 우리나라 성별임금격차 36%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3.9%의 2.5배로 2002년 OECD 조사 이래 단 한 번도 압도적 1위라는 불명예를 놓친 적이 없다. 그러니 ‘성별임금격차를 끝장내기 위해 217년을 기다릴 것이냐, 아니면 지금 당장 행동할 것이냐’라는 도발적인 제목은 정말 훅 치고 들어오는 주제였다. ‘217년’은 2017년 세계경제포럼의 ‘젠더갭 리포트’에서 성별임금격차를 좁히는데 217년이 걸릴 것이란 연구결과에서 나온 것이다. 이 부대 행사 홍보물에는 세계와 모든 국가에서의 불평등한 임금은 여성의 성공에 가장 장애가 되는 장애물 중의 하나이며 UN 지속가능개발목표(SDGs)의 8번, 5번 목표 달성과 연계된 매우 중요한 과제임을 적시하고 있다.

회의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자리가 없어서 바닥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뜨거운 참여 열기가 느껴졌다. EPIC(EQUAL PAY INTERNATIONAL COALITION, 동등보수 국제연대) 의장국인 스위스 주최로 열리는 이 부대 행사는 8명의 패널이 발표자로 참여하고 있는데 홍보물을 보니 아이슬랜드 총리, 스위스 내무부 장관, 영국 국제개발부 및 여성&평등부 장관, 뉴질랜드 여성장관 등이 참여한다고 소개되어 있다. 순간 ‘부럽다!’는 감정이 먼저 올라왔다. 이들은 15% 성별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해 장관들이 발표자로 나서서 부대 행사를 열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 성별임금격차해소를 실효성 있게 추진할 주무부처가 어디인지도 모르겠고 실행로드맵조차도 없다. 이렇게 문재인 대통령 후보 시절의 ‘성별임금격차를 OECD 평균으로 줄이겠다’는 공약은 실종되고 있다.

성별임금격차 해소 관련 부대 행사 홍보물과 필자의 CSW 출입증. ©임윤옥
성별임금격차 해소 관련 부대 행사 홍보물과 필자의 CSW 출입증. ©임윤옥

그런데 EPIC 소개 자료를 보니 EPIC에는 국제노동기구(ILO)와 유엔 여성, OECD와 함께 핵심적인 이해당사자국가로 오스트리아, 캐나다, 독일, 아이슬랜드, 스위스, 뉴질랜드만이 아니라 대한민국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고 나와 있다. ‘어? 우리나라가 EPIC 회원국이라는 건 금시초문인데? 회원국이면 회원국답게 성별임금격차 해소 문제에 범정부적 차원의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당연한 생각이 들었다. 이 외에도 ‘유럽의회의 성차별주의·직장내성희롱’ 등 몇 개의 부대 행사에 참여했는데 가는 곳마다 조금만 늦으면 자리가 없을 만큼 참여 열기는 뜨거웠다. 너무나 다양한 인종, 국가, 세대가 다양한 젠더 이슈(듣기로는 400여개의 사이드 이벤트가 열렸다고 한다)에 폭넓게 참여하여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모습 자체에서 우먼 파워(WOMAN POWER)를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UN 회의 참여와 관광으로 바쁘게 뉴욕 거리를 걷다보니 뒤늦게 머리를 탁! 치는 생각, ‘뉴욕 하늘 아래에서는 외모서열주의 따위는 있을 수 없구나’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피부색, 머리색, 눈, 코, 입, 귀, 키, 몸무게가 너무나 달라 외모 기준이랄까 이상적인 외모상 자체가 있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외모가 남에게 어떻게 비칠지 항상 외모 스트레스, 외모강박에 시달리는데 ‘이렇게 사람의 모습이 다양하구나’, ‘나는 그냥 나구나’ 라고 느끼면 자신의 삶에 집중하여 삶의 행복도가 높아지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또 하나 느낀 점은 함께한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사실 여행은 어디로 가느냐보다 ‘누구와’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경험을 한번쯤은 하게 된다. 그런데 출발 전까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일행과도 ‘이 멤버 리멤버’를 외치며 10년 후 다시 뉴욕을 방문하자고 약속했다. 차이와 다양성, 배려가 기본값인 페미니즘 인식론과 여성운동 동지들과 함께 하는 기쁨으로 충만한 여행이었다. 내년이면 베이징+25로 대규모 국제행사가 열린다는데 한국의 미투(#MeToo) 운동도 알릴 겸 더 많은 여성 활동가들에게 참여기회가 활짝 열렸으면 좋겠다. 참여경비와 언어가 장벽이 되지 않기 위해 다각적인 지원이 꼭 이뤄지면 좋겠다.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자문위원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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