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평화코스 3km 도전, 준비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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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연옥씨 가족이 브이(V)자를 그리며 마라톤에서의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사진 좌로부터 채연옥, 박동성, 박소영, 박정길씨.

“회사 게시판에서 여성마라톤대회 소식을 봤어요. 3km 걷기 종목을 보는 순간 이거다! 싶더군요.”

본지가 주최하는 제 3회 여성마라톤대회 첫 가족 참가자가 나왔다. 인터넷에서 대회 소식을 본 순간 바로 신청했다는 채연옥(39)씨 가족이 그 주인공.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마라톤대회로 이들을 이끈 건 바로 3km로 준비된 ‘가족 평화코스’.

“다른 마라톤대회는 거리가 부담스러워 가족이 함께 뛸 엄두를 못내죠. 애들이 어리니까 더 그렇구요. 가족 평화코스라면 함께 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채씨의 남편 박정길(42)씨가 가족의 의견을 접수(?)하지 않은 채 참가 신청란에 얼른 마우스를 갖다 댄 동기다.

단지 그것뿐일까? 알고 보니 채씨 부부는 평소에도 마라톤에 끈적끈적한 애정을 갖고 있는 달리기 애호가다. “남편이 일본 지부에서 3년 정도 일한 적이 있어요. 그 때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주재원 부인들이 많았죠. 두 명이 시작했는데 하나 둘 모여 20명 정도가 1년 가까이 함께 뛰었어요. 매일 한 시간 이상을 비가 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죠.” 채씨의 회상이다. 그에 질세라 박씨도 얼른 이야기를 꺼낸다. “퇴근한 뒤에 아파트 주변 공원을 달려요. 일주일에 두세 번은 꼭 하죠. 퇴근이 아무리 늦어도 말이죠.”

지난해 강남구 마라톤대회에 참가한데 이어 지난 1일에는 3·1절 기념 마라톤대회에서도 마음껏 기량을 발휘했다는 박씨다. “마라톤은 자기자신과의 싸움이에요. 그게 좋아요. 건강은 오히려 보너스죠.” 그래도 그 당시에는 가족과 함께 달릴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며 아쉬워한다.

부부가 각자의 이야기에 빠져들 즈음. 채씨의 딸인 소영(13)이 표정이 시무룩해진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 이야기에는 아이들과 같이 달렸다는 내용이 빠져있다. “체육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달리기는 더 그렇죠. 몇 분 안에 몇 바퀴를 돌라고 정해놓는 달리기는 싫어요.”

자기 차례가 온 걸 예감한 듯 소영(13)이의 입이 자연스럽게 열렸다. 특히 최근에는 운동장 8바퀴를 6분 안에 들어오라는데 10분을 넘기고서 간신히 들어갔다면서 체육 수업의 경직된 방식을 은근히 꼬집기도 했다. 사실 채씨의 두 아이인 소영이와 동성(11)이는 아빠가 마라톤대회에 신청한 사건을 조금 전에 알았다.

“5월 11일이면 어린이날 근처라 그 전날 말해서 아이들을 놀라게 해주려고 했죠.” 그러나 첫 가족참가자로 지목되면서 박씨의 꿈은 무너졌다. 가족 인터뷰를 당해야 했기에 아이들에게 알리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소영이가 어릴 때부터 체육을 안 좋아했어요. 이번 대회가 소영이에게 운동이 즐겁다는 걸 알게 하는, 그래서 운동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요.” 채씨가 말을 이어받는다. “그리고 요즘 애들은 메달 받는 걸 좋아하잖아요. 달리기도 하고 메달도 받으면 즐겁지 않겠어요?” 흑심(?)이 조금씩 드러난다.

그래도 본심은 아이들의 건강. 채씨는 안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운동을 시작할 생각이었으니 일석이조의 기회를 잡은 것뿐이다. 동성이는 소영이와 조금 다르다. “어릴 때부터 산에도 많이 올라갔고 뛰어 놀기를 좋아해요. 빨리 달릴 수 있어요”하며 자신감에 넘친다.

동성이는 좋아하니 됐고. 그럼 소영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박씨는 어르기 작전에 들어갔다. “뛰지 않고 그냥 걸으면 돼. 걷는 건 할 수 있잖아. 온 가족이 함께 나들이하는 거라고 생각해.” 성적이 좋은 사람에게는 여성장학금도 준다고 조금 부추겨도 봤다. 그 말이 먹혔을까. 소영이가 돌변했다. “그럼 아빠 오늘부터 같이 달리기 연습해요. 이왕 하는 거 잘 해야죠. 꼭 하는 거예요.” 아빠 팔에 매달린 소영이는 어느새 애원 조가 됐다.

“그래 오늘부터 연습하는 거다. 걷기 대회도 하고 힘이 남으면 마라톤도 하자꾸나. 파이팅!”

조혜원 기자nancal@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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