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성착취 범죄’다] ② 한국은 ‘성매매’, 해외에선 ‘성착취’
유엔 “미성년자 성매매는 성착취”
한국정부도 국제협약 비준했지만
30년째 국제사회규범 외면

네덜란드 아동인권단체 ‘인간의 대지(Terre des Hommes)’는 2013년 아동 대상 음란 화상채팅을 막기 위해 컴퓨터 그래픽 기술로 ‘스위티(sweetie)’라는 가상 인물을 만들어냈다. 10세 필리핀 소녀로 설정된 스위티가 화상채팅을 한 10주 간 70여개 국가에서 2만명이 넘는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Terre des Hommes 유튜브 영상 캡쳐
네덜란드 아동인권단체 ‘인간의 대지(Terre des Hommes)’는 2013년 아동 대상 음란 화상채팅을 막기 위해 컴퓨터 그래픽 기술로 ‘스위티(sweetie)’라는 가상 인물을 만들어냈다. 10세 필리핀 소녀로 설정된 스위티가 화상채팅을 한 10주 간 70여개 국가에서 2만명이 넘는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Terre des Hommes 유튜브 영상 캡쳐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이른바 ‘아청법’은 아이들을 성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2010년 제정됐다. 그러나 정작 성매매에 유입된 아동·청소년들은 이 법으로 처벌 대상이 되고 있다. 성매수 범죄에 연루된 아동·청소년은 피해자로 봐야한다고 국제사회는 권고하지만, 한국정부는 수십년 째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현행 법은 아동·청소년이 성매매에 유입되면 ‘대상 아동·청소년’ 혹은 ‘피해 아동·청소년’으로 분류한다. 기준은 ‘자발성’이다. 아이들이 성매매에 자발적으로 가담했다고 판단하면 대상 아동·청소년 수사기관은 이들을 대상 아동·청소년으로 규정하고 ‘보호처분’을 부과한다. 행동을 교정하라는 취지의 보호처분은 실질적인 처벌로 인식돼 아동·청소년이 성매매 피해사실을 외부에 알리는데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성매수 남성의 폭력과 협박으로 성착취 피해를 입어도 스스로 채팅 애플리케이션(앱)에 접속해 ‘조건만남’에 나섰다는 이유로 10대 여성은 ‘대상 아동·청소년’으로 분류된다.

급하게 돈이 필요했던 B(16)는 채팅 애플리케이션으로 조건만남을 하기로 했다. 실수로 친구의 휴대전화를 망가뜨려 수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조건만남은 한번의 성행위로 큰 돈을 만질 수 있어 ‘쉽게’ 돈 버는 방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성매매 과정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채팅 앱 상에서 성매매가 성사되려면 성매매 장소, 구체적 행위와 시간, 콘돔 착용 여부, 비용 지불 방식 등이 모두 합의돼야 한다. 그 과정에서 성매수남의 성병 여부나 범죄 경력은 알 길이 없다. 10대 여성의 성을 사기 원하는 대기자는 넘치고, 이들은 돈이 필요한 아이들을 성매매로 유인한다. 이 과정에서 아동·청소년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겪게 될 위험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B도 마찬가지였다. 성매수남에게 콘돔을 착용하라고 요구했으나 남성은 “정관 수술을 했다”며 무시했고, 성행위 댓가로 남성에게 받은 돈은 위조 수표였다. ‘서비스’라며 남성이 건넨 또 다른 지폐 역시 위조된 것이었다. 물리적 폭력과 사기 피해까지 당한 B는 상담소에 연락해 지원을 요청했다. B는 ‘대상 아동·청소년’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나와 같은 또 다른 청소년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에 경찰에 신고하기로 결심했다. 현재 사건은 경찰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익명으로 가입하고, ‘은어’로 성매매가 이뤄지는 채팅 앱 특성상 성매수남의 단서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이 성매매에 이용된 아동·청소년을 분류해 보호처분을 하는 반면, 해외에선 성매매 대상이 된 아동·청소년을 모두 ‘피해자’로 규정한다. 아이의 자발이나 동의 여부는 판단 기준이 되지 못한다.

30년 전인 1989년 11월 20일 유엔(UN)이 채택한 아동권리협약(Conventions on the Rights of the Child) 34조는 ‘당사국은 모든 형태의 성적착취와 성적 학대로부터 아동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1991년 이 국제협약을 비준했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불법적이거나 심리적으로 유해한 성적 행위를 하라고 아동을 설득하거나 강요하는 것’을 ‘성적 학대와 착취’라고 명확하게 정의하고 있다.

유엔총회는 2000년 ‘아동의 매매·성매매 및 아동 음란물에 관한 아동권리협약 선택의정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그 내용을 보면, 아동·청소년 성매매는 ‘아동·청소년의 합의가 있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보상이나 대가를 위해 성적 행위를 수행하도록 아동을 찾아내거나 알선 및 제공하는 행위’다.

이미 미국, 영국, 스웨덴 등 많은 국가에서 일정 연령 이하의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매매는 동의와 상관없이 성구매자 또는 알선자를 처벌하고 있다. 반면, 해당 아동·청소년을 처벌하지 않는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발간한 ‘해외의 성매매 청소년에 대한 보호·지원체계 현황과 향후 과제’를 보면, 미국은 2011년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지원법(Domestic Sex Trafficking Deterrence and Victims Support Act)‘을 통해 18세 미만 성매매 청소년을 성착취 피해자로 간주하고, 성매매 아동·청소년에 대해 보호처분이나 경미한 수준의 형사처분도 전혀 고려하지 않도록 했다.

실제로 미국 텍사스에서 13세 아동이 운전하고 있는 경찰관을 불러 구강성교를 제안하고 20달러를 받은 사건에서 법원은 ‘아동은 돈을 받고 성적 행위를 하는 것에 동의해도 성인인 가해자에게 이용되고 통제되는 것’이라고 판결했다.

영국은 2003년 ‘성범죄법(Sexual Offence Act)’을 만들어 16세 미만의 아동·청소년을 성매매에 이용하거나 성적인 행동을 하게 하는 경우 등을 학대로 규정하고 강력한 처벌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2015년 중범죄법(Serious Crime Act) 개정으로 공식적으로 모든 법에서 ‘아동 성매매(child prostitution)’를 ‘아동 성착취(child exploitation)’로 용어를 변경했다.

한국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3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국제사회의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국제인권규범을 근거로 2017년 국회의장에 성매매에 유입된 아동·청소년을 처벌대상이 아닌 성매매 범죄의 피해자로 봐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인권위 권고에도 불구하고 권고 대상 개정안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묶여 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