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떠난 세 여자, 에코 페미니스트를 만나다] 쓰레기 줍는 사람들은 환경운동가
[길 떠난 세 여자, 에코 페미니스트를 만나다] 쓰레기 줍는 사람들은 환경운동가
  • 최형미 여성학자
  • 승인 2019.04.09 09:16
  • 수정 2019-04-09 0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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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만들고
직업증명서 발급받는
쓰레기 피커들

[길 떠난 세 여자, 에코 페미니스트를 만나다] ④

직업증명서를 보여주는 쓰레기 피커 여성 ©최형미
직업증명서를 보여주는 쓰레기 피커 여성 ©최형미

우리나라의 거리노점상이나 폐지 할머니들은 고용주가 없기에 노동자로서 권리를 갖지 못한다. 그러나 인도여성운동은 1980년대부터 노점상 노동조합(SEWA)을 만들었고, 하시루 달라 대표 날리니 쉐카르(Nalini Shekar)는 쓰레기 피커(쓰레기 줍는 사람)들의 노동조합을 만들어 그들의 권리 찾기에 나서고 있다. 그는 쓰레기 피커들이 환경운동에 엄청난 기여를 한다는 것을 알렸고 중산층 환경운동가들이 쓰레기 피커의 노동문제에 관심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시루 달라 본부는 벵갈루루 시내의 명문 제인대학(Jane university)안에 위치해 있었다. 대리석으로 된 층계를 오르니 4층에 날리니 대표가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맞아주었다.
“이곳은 경영대학원이 사용하던 건물이에요. 대학 당국이 우리에게 무료로 대여해주었지요. 이곳으로 쓰레기를 줍는 가난한 사람들과 부유한 사람들이 함께 오고가지요.”
‘대학의 역할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순간 스쳐갔다. 그때 한쪽에서 개 한 마리가 날리니에게 다가왔다. 사람만이 아니라 거리를 헤맸던 개도 이곳의 주인이었다.


사람들은 환경운동을 중산층 운동이라 여긴다. 날리니는 이십대에 거리를 배회하는 아이들을 찾아 나선일로 사회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아시아 이주민 여성쉼터를 운영하며, 사람들을 돌봐왔다. 시민운동을 하며 만난 아이들이 그를 기쁘게 했기에, 굳이 자신의 아이를 낳을 필요가 없었다고 말한다. 2010년에 뱅갈루루로 돌아와 다시 주로 불가촉 천민으로 이뤄진 ‘쓰레기 피커’들과 함께 운동을 펼쳐나갔다. 거리로 나가 그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가까이 머물렀다. 그들과 함께 쓰레기 피커들의 연대를 조직했다.


“사람들은 그들을 거지나 도둑취급을 했어요. 그들을 시민으로 여기지도 않았지요. 그들이 도시를 치우지 않으면 도시가 얼마나 엉망이 될지 생각하지 않았어요. 쓰레기 피커들은 조용한 환경운동가들이지요.”

하시루 달라 대표인 날리니 쉐카르씨와 사무실에서 키우는 강아지. ©최형미
하시루 달라 대표인 날리니 쉐카르씨와 사무실에서 키우는 강아지. ©최형미

단체가 쓰레기 피커들을 시민들과 통합시키기 위해 가장먼저 한 것은 ’직업증명서‘를 만드는 일이었다. 고용주가 없는 이들에게 직업증명서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하시루 달라 단체는 쓰레기 피커들이 뱅갈루루시에 얼마나 경제적 이익을 주는가를 조사해 알렸다. “뱅갈루루의 1만5000명의 쓰레기 피커들은 하루에 1050톤의 쓰레기를 분리수거해서 8억4000만 루피(약 139억6000만)를 벌어준다. 시는 이들에게 경제적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결국 벵갈루루시는 쓰레기 피커들에게 직업증명서를 발급해 주었다.


거리의 남자와 여자들, 심지어 개들까지 그들을 물어뜯었지만 직업증명서를 발급받은 이후 쓰레기 피커들은 더 이상 거지나 도둑 취급을 당하지 않는다. 주정부는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단체는 화이트칼라에도 블루칼라에도 속하지 못했던 그들을 그린칼라라고 불렀다. 단체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사회적으로 그들을 통합하기 위해, 대학에 세바카페(SEVA)라는 식당을 열었다. 대부분 불가촉 천민으로 이뤄진 그들은 오랫동안 스스로를 더럽고, 천하다고 여겼으며 자신들이 만든 음식을 사람들이 거부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우리가 그곳을 방문했을 때, 식당은 학생들과 손님들이 넘쳐났다. 이것은 그들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직업증명서를 갖고 사회에 기여하는 이들은 도시 아파트 퇴비장을 관리하는 일을 하거나 재활용 쓰레기 수거장을 운영하며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기도 한다. 날리니는 쓰레기 피커들을 이제는 사업가 혹은 환경운동가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단체에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해야 그들과 가까워 질수 있나요?”라고 문의를 하기도 한다. “그들이 당신들의 문 앞에 왔을 때 집으로 초대하세요. 그리고 함께 먹고 차를 나누세요. 그것이 방법이에요.” 이제 적지 않은 중산층 여성들이 단체의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거리의 쓰레기 피커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날리니는 사회에 영향력을 가진 중산층은 쓰레기 피커들을 위해 법을 바꿀 수 있다고 이야기 했다. 그러나 사업을 진행하고 참여하며 서로를 돕는 것은 바로 쓰레기 피커 당사자들이라고 강조했다. 날리니는 중산층과 불가촉천민들의 연대를 이끌어내고 있었고, 환경운동과 노동운동은 연결되고 있었다.

가부장제 속의 남성들은 규율을 만들고 전쟁을 하는 백인노인남성을 신으로 상상했다. 여신은 사원에 갇혀 공물을 기다리는 신이 아니었다. 들풀처럼 자유롭게 거리로 나와, 아이들과 쓰레기 피커들의 곁에 머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먹고 마시는 여성들이다. 그들에게 명령하는 신이 아니라 그들의 어려움에 공감하며 함께 울고 싸우는 여성들이었다. 이렇게 세 여자는 경계를 부수며 낮은 곳에 머무는 여신들의 환대를 받으며 그들의 성지를 순례하고 있었다.

최형미
최형미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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