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견, 방해…

현직 여성정책담당관들은 다른 부서에 비친 자신들의 업무를 이렇게 표현했다. 성 인지적 관점에서 부처 내 업무를 조정하는 담당관들은 다른 부서 직원들에게 귀찮은 존재로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도입 다섯 해를 넘겼지만 ‘전투를 준비하듯’ 시작하는 이들의 하루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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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부처의 여성정책담당관

법무부 김진숙, 행정자치부 김혜순, 교육부 신현옥, 농림부 박성자, 보건복지부 김혜선/font>

“다른 과 업무에 참견이잖아요. 통계를 성별로 분리하라, 홍보자료에 왜 의사는 꼭 남성인가 등 이것저것 지적하고 일을 만드니까 귀찮아했죠. 제도를 도입한 초기여서 여성정책담당관이 통폐합될 거다, 없어진다 말들도 많아 조직에 대한 불안감도 컸고요. 해야 한다는 사명감만 있었어요.”

보건복지부 여성정책담당관을 지낸 서명선 여성부 대외협력국장의 회고다. 담당관제 도입 이후 5년 동안 담당관 업무를 맡아 온 농림부 박성자 과장의 “존재하기 위해서 일했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을 포함해 이른바 1기라 불리는 법무부, 행자부, 교육부 등 6개 부처 담당관들의 노력으로 여성정책담당관 제도는 여성정책의 효율성 측면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인정받았다. 부처에 따라 2기, 3기 여성정책담당관들이 그 성과를 잇고 있지만 부처 내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전 부처 확대 필요

성과를 바탕으로 제도의 존재나 필요성에 대한 논란은 줄고 확대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여성정책담당관 제도를 모든 부처와 지자체로 확대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요구 속에 지난해 11월 여성발전기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에 따라 올해부터 46개 모든 중앙부처에 여성정책책임관 지정이 의무화됐다.

책임관은 그간 담당관들이 직급상 부처 내 정책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힘든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제도다. 여성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6개 부처로 한정됐던 여성정책담당관(4급)이 전 부처 여성정책책임관(1급)으로 업그레이드 됐다”고 표현했다. 반면 이화여대 김선욱 법학과 교수는 “책임관은 기존 1급 중 한 명을 지정, 겸임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업무 수행에 문제가 있다”며 “현재 담당관처럼 독립된 업무를 볼 수 있는 여성정책부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성단체연합 김기선미 사무국장도 “기획예산처 등 주요 부처에 담당관 확대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여성정책담당관들 역시 실무를 볼 수 있는 담당관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 담당관은 “여성계 인사들이 담당관이 없는 부처에 여성 관련 부서를 요구하고 일부 부처에서는 실제 이를 위한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진입 유연! 퇴출 용이?

제도 확대와 함께 담당관의 실질적인 권한 강화도 시급하다. 여성정책 전문성 확보를 위해 개방형(별정직)으로 유입된 담당관들은 부처 안에 홀로 떠도는 섬이 된다. 상급자는 물론 담당관실 직원들 역시 이들의 업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교육부 담당관을 지낸 남승희 명지대 교수는 “법으로 규정된 권한이 있지만 주변 동료들과 호흡, 부하직원의 수, 예산의 규모로 알게 모르게 서열이 매겨진다”며 담당관들은 “부처 내 같은 4급 과장의 권위를 주변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남 교수는 “힘이 실리지 않으니까 추진력이나 설득력이 없게 된다”고 강조했다. “외롭다”는 한 담당관의 말이 그저 심정적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다. 법무부 김진숙 담당관 역시 “뒤늦게 생긴 부서인 탓에 조정 기능밖에 없다”며 “여성정책을 강제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교육부, 농림부, 복지부의 개방형 직위 담당관들은 공무원 별정직의 특성상 근무 기간과 승진을 보장받지 못한다. 남승희 교수는 “진입이 유연한 만큼 퇴출도 용이하다”고 표현했다.

담당관들은 일반적으로 직위를 맡아 예산을 따내고 업무를 추진해 결과를 얻기까지는 ‘최소 3년’이란 기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장관 임기를 일정기간 보장해야 한다는 새 정부 인사시스템과도 통한다. 별정직의 경우 계약기간이 따로 없고 일반직 검사들이 맡고 있는 법무부 담당관 역시 2년 기준으로 순환하고 있어 조정이 필요한 부분이다.

보통 3년 이상 부처 내 여성정책의 전문성을 쌓은 담당관들이 이후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직위가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여성 이외에도 부처와 관련된 전문성을 갖고 있고 성 주류화를 위해 부처에 자리 잡기를 여성계 일각에선 기대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힘들다. 여성 정책의 전문성과 행정 실무를 바탕으로 1기 별정직 담당관 가운데 2명이 여성부로 자리를 옮겨 그 경험을 살리고 있을 뿐이다.

가능성이 전무한 것은 아니다. 별정직에서 일반직으로 진입하기 위한 전환고시가 있고 새 정부가 고위직을 능력 위주 성과계약을 통해 임용하고 개방형 직위를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장관 등 조직 운영자의 여성정책 의지와 담당관들의 부처 전문성 확보라는 문제가 남아 있다.

책임관 성과 속에 6개 부처에 불과한 여성정책담당관 확대는 내년 정부 조직개편으로 살며시 미뤄졌다. 담당관 확대가 필요하지만 다른 부처 권한이고 공무원 정원 등 문제가 걸려 있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다는 게 여성부 관계자의 말이다.

여성부 창구 역할 절실

행정자치부 김혜순 여성정책담당관의 기대는 다르다. “여성부가 앞장서 요구할 필요가 있어요. 여성관련 부서를 만들려는 부처에 여성부가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해요.”

남승희 교수 역시 “여성부 장관이 성인지적 관점을 말했는데 우선 부처 내 여성정책담당관들 지위가 높아져야 한다”며 “여성부가 중심이 되고 여성계가 협력해 담당관의 실질적인 권한 강화를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무상 활발한 교류가 있지만 각 부처에서 홀로 투쟁(?)해야 하는 담당관들의 현실에 심정적으로 더 가까운 여성부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여성부가 다른 부처 업무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참견하기 힘들어진 만큼 여성정책담당관들은 여성부의 손발이라 할 수 있다. “여성정책담당관들의 요구를 받아줄 창구가 없다”는 한 담당관의 말을 여성부가 쉽사리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김선희 기자sonagi@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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