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지적 예산, 정책담당자 인식 전환부터

최근 여성부 지은희 장관의 “성 인지적 예산 분류를 지침으로 만들자”는 발언을 두고 과연 예산에도 성(性)이 있는가 하는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에 마련된 ‘제 2차 여성정책기본계획’에는 ‘성 인지적 예산 도입을 위한 여건 조성’이 10대 핵심정책과제의 1순위에 올라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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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성인지적 예산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 한국여성민우회를 기점으로 한국여성단체연합의 국회 청원이 이어지면서 지난해 11월 8일 국회에서 ‘성인지적 예산 분석 및 자료 제출 촉구 결의문’이 채택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성인지적 예산을 어떤 방식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가를 이야기할 때다.

예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반예산. 여성과 남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기란 쉽지 않다. 외형만 봤을 때 일반 예산과 중복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여성부 기획예산담당관실 이상희 사무관은 “정부부처가 기능 위주로 나뉘어 있기에 중복될 부분을 어떻게 소화할지가 중요하다”며 “그러나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기 어려워 보이는 정보통신부도 남성과 여성의 정보화 수준을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따라 예산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국 시범사례 지침서로 활용

여성부 산하의 ‘성인지적 예산 분과위(가칭)’가 당분간 총대를 맬 전망이다.

정부·학계·국회·시민단체 인력을 고루 갖춘 이 분과위는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세 차례 모임을 가졌으며 앞으로 조직적으로 기본 틀 마련에 힘쓸 계획이다. 중요한 것은 성인지적 예산에 대해 정해진 틀이 없다는 사실. 윤정숙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는 “모범 답안이 없기 때문에 각 나라에 맞는 방식으로 성인지적 예산 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희 사무관은 “외국 사례와 부처별 주요 사업을 선정해 시범 사례를 만들어 방법을 이끌어낼 방침”이라고 전망했다.

다른 나라의 성인지적 예산 분석의 틀을 활용해보면 어떨까. 한국여성개발원 김영옥 노동·통계 연구부장은 “여성·남성 등 특정 성을 대상으로 하는 ‘성 특정 예산’, 보육예산처럼 양성간 형평성을 높이기 위한 ‘성 형평성 예산’과 일반예산으로 분류해 각각의 비중과 내용을 자세하게 분석하는 방법”을 내밀었다.

성 인지적 예산에 대한 개념을 정책의 집행자들에게 이해시키는 일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부처간 합의가 중요한데 지금으로선 여성정책담당관이 있는 6개 부처(교육·노동·농림·법무·보건복지·행정자치부)부터 출발하는 게 적절하다고 전문가들은 공통으로 지적한다. 6개 부처의 여성관련 예산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파악한 후 그 사례를 통해 성인지적 예산 지침서를 만들자는 얘기다.

분과위 자문위원들은 한결같이 “성인지적 예산에 대한 기초 통계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중앙정부 공무원들이 그에 대한 인식조차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그들에 대한 교육이 있은 후에 여성정책담당관이 있는 부처에 대한 성인지적 통계를 모범 사례로 구축한다면 이후에 전 부처에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혜경 교수는 “자료 수집과정에서 우리는 여성예산 관련 업무도 안 하는데 자료를 요구하느냐는 반발을 겪었다”고 밝혔다.

성인지적 예산에 대한 정책을 세우고 각 부처간 협의를 이끌어낼 여지는 여성부만이 갖고 있는 게 현실이다. 여성부는 이 작업을 위해 분과위 활동을 기반으로 통계 구축을 위한 연구용역도 생각하고 있다. 문제는 방대하고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성 평등한 ‘예산’을 만드는 일에 ‘예산’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 올해 여성부의 일반회계 세출예산은 435억 정도로 지난해보다 1.9% 늘어난 데 불과하며 올해 정부 일반회계 세출예산 총액의 0.04%가 채 안 된다.

성인지적 예산 위한 예산 필요

이상희 사무관은 “특히 이 돈은 처음에 여성부가 요구한 예산액보다 61.0% 가량 삭제된 것이기 때문에 ‘성 인지적 예산’ 구축 작업을 위한 추가경정 예산이 나올지는 미지수”라고 평가했다. 상황이 이런 만큼 재경부·기획예산처 등 굵직한 곳에서 합류하는 방안이 합리적이라는 지적이다. 예산을 위한 예산이 마련되지 않고서야 정책이 추진되기 어렵다는 사실은 두 말하면 잔소리.

성을 고려한 예산의 첫 테이프는 1980년대 중반에 호주가 끊었으며 지금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필리핀·영국 등 전세계 40여 개 나라에서 부분적으로 성인지적 예산 틀을 갖추고 있다. 이 조치는 1995년 베이징 여성대회 이후 국제연합개발계획(UNDP)·국제연합여성개발기금(UNIFEM) 등의 노력으로 각 나라에 확산되고 있다.

성평등 사회로 가는 지름길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을 수도 있다. 예산이 그렇다. 예산은 정책의 구체적인 표현이자 정책의 우선 순위를 결정하는 의사 결정이다.

그래서 정책과 예산을 동전의 양면에 비유하기도 한다.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김경희 교수는 “중립적으로 보이는 예산 정책은 그 사회의 권력 관계를 반영하고, 성불평등·빈곤 문제를 지속시킬 여지를 생각하지 않고 만들어지는 경향이 있다”며 “세입·지출은 성 개념은 아니지만 사회·경제구조에 따른 성별 차이가 있기 때문에 예산을 성별에 따라 분석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정숙 공동대표의 경우 “특히 여성 정책에 배정된 예산도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여성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은 채 사업 위주로 꾸려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중앙정부의 2002년 여성관련 예산은 총 3082억원으로 같은 해 일반회계 예산의 0.29%를 차지, 2001년의 0.28%와 다를 바 없다. 다시 여성 관련 예산을 담당 부처별로 나누면 복지·여성·노동부 등 세 부처의 예산이 전체의 95% 수준. 각 부처의 여성 예산과 정책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잘 말해준다.

조혜원 기자nancal@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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