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jpg

◀어린이들이 부모와 함께 즐겁게 한지 만들기를 하고 있다. <사진·민원기 기자>

우리 나라는 GNP 대비 세계 최고의 교육비 지출국이다. 2001년 우리나라 각 가정에서 지출한 개인과외와 학원비 등 사교육비는 26조6736억 원으로 추계되는데, 여기에 등록금과 교재구입비 등 공교육 부대비용으로 들어간 돈 13조677억 원을 합하면 학부모 부담은 모두 39조7413억 원에 이른다. 그리고 2000년 중 우리나라 가계 소비지출에서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4.9%로, 선진국 최고수준인 미국(2.4%)과 일본(2.1%)의 두 배 이상이고 영국(1.4%)과 독일(0.7%), 프랑스(0.6%)보다는 3.5∼8.2배나 높았는데 이것은 공식통계에 포함되지 않는 비밀과외 등의 비용을 제외한 비율이다.

이와 같은 사교육의 비대화에는 사교육을 하지 않을 수 없거나 부추기는 사회적 여건들과 그 속에서 과잉으로 부풀려진 부모들의 불안이 있다. 이제는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의 논쟁처럼 사회적 요인과 부모들의 불안은 선후를 가릴 수 없이 얽혀진 사교육 팽창의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교육 팽배의 가장 큰 요인으로 교과과정을 들고 싶다.

수학은… 영어는… 집에서

예를 들면, 국어와 수학과 같은 학교 교과서와 교과과정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게 비교육적으로 구성돼 있다. 성장기 아이들에게 지식보다 더 필수 교과인 예체능의 비중은 한 세대 전에 비해 퇴보했다. 영어는 듣기를 중시하는 데 중점이 두어지는 것과는 달리, 국어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의태어, 의성어 학습과 같은 문법적 접근을 보이고 시험조차도 문법적 접근을 하고 있다. 수학 교과는 외국의 진도보다 2, 3년, 3, 4년은 빠르다. 아이들의 소화력을 감안하지 못한 과잉의 지식 학습을 요구하는 교과와 달리 요즘 아이들은 이러한 주입식 교육에 적응하기 어려운 몸이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10여 명이나 많아야 20명 약간 넘는 외국의 교실과 달리 보통 35명이 교실 정원이고 지역에 따라서는 40명을 넘기도 한다. 어려운 교과과정, 교사가 뒤쳐지는 아이들을 살펴볼 수 없는 교실 상황 등은 교실 내 아이들의 산만함만 높일 뿐이고 다시 이것은 교실 내에서의 지식 습득의 효율성을 낮춘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교사는 노골적으로 사교육을 부추기기도 한다. “수학은 집에서 하세요. 2학년 때 하면 되겠지 하다 늦어요”, “영어는 원어민 교사에게서 배워야 해요”라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교사가 있는가 하면 예습이 돼있지 않은 아이가 따라가기 힘든 공개수업을 부모들 앞에서 진행함으로써 ‘당신 아이 기죽이지 않으려면 준비시켜 보내!’라는 무언의 협박 아닌 협박을 하는 교사도 있다.

이와 같이 아이들에게 골고루 기초 실력을 길러주기에 역부족인 교실 상황에서 교사들은 숙제라는 전략을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되고 아이들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받아쓰기 열 번 연습해오기, 구구단을 단기간에 외우기와 같은 숙제에 시달리게 된다. 아이가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 것을 버겁게 느끼는 것이 눈에 들어오고 부모 자신이 스스로 아이의 보충학습을 도울 수 없다고 판단하거나 그럴 수 없는 여건일 때 학습지나 보습학원은 자연스러운 선택이 된다.

예체능 학습을 위시한 체험학습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의 예체능 수업은 우선 수업 시간으로 볼 때 충분한 예체능 체험을 하기에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집에서 밑그림을 그려가거나 학교에서 못 그린 그림을 집에 가져와 그려가고 이 그림으로 상을 받거나 못 받게 된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자식을 기죽이지 않고 싶은 부모 마음은 그림 숙제를 해주는 미술학원을 찾게 한다.

학기말 경시대회가 사교육 부채질

또한 서예 교사가 미술 교사가 되는 것과 같이 학교 실기교육은 신뢰할 수준이 못되는데, 중학교의 수행 평가는 어느 정도 실기 능력이 받쳐줘야 한다. 학교의 방과후 프로그램이 이런 실기 능력을 쌓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영어학원이나 보습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은 학원 시간과 학교 방과 후 시간 둘 다 맞출 수 없고 그래서 예체능도 학교 방과후 프로그램보다는 사교육에 의존하게 된다. 그러나 이 방문형이나 학원에서의 예체능 교육은 대개의 경우, 체험이 결여된 기술 위주의 기형화된 체험 사교육이다.

마지막으로 평소 시험이 없어진 대신 새로 생긴 학기말에 보는 경시대회는 결정적으로 부모들과 아이가 사교육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계기가 된다. 교과서보다 훨씬 더 어렵기 십상인 시험에서 자기 아이들은 60, 70점을 받는데 다른 아이는 한두 개를 틀려 금·은·동상을 받을 때, 이것은 부모들의 불안에 불을 지피는 꼴이다. 이쯤 되면 웬만한 교육적 대안이나 소신이 없는 한 사교육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지금 현실에서는 대안학교를 감행하는 용감한 부모가 되지 않고는 어느 정도 사교육을 외면하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인 듯 싶다.

그러나 어떤 사교육을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는 천양지차일 수 있다. 이 주제는 사교육 풍속도를 좀 더 들여다 본 후에, 지금 고1이 된 큰 아이를 기르면서 겪은 시행착오와 주변 어머니들의 경험에 비춰 다뤄 보기로 하겠다.

김정희/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소 연구교수

abortion pill abortion pill abortion pill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