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스웨덴 린네대학 최연혁 교수
지난해 징병제 부활하면서 남녀 모두 적용
“여성 85%가 군입대 당연하게 여겨”
권리-의무 모두 평등하게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정치학과 교수 ⓒ박선이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정치학과 교수

 

세계적으로 남녀 성차에 따른 불평등이 가장 작은 나라 중 하나가 스웨덴이다. 2018년 세계경제포럼(WEF) 세계젠더격차보고서(Global Gender Gap Report 2018)에 따르면 세계에서 성차별이 가장 낮은 나라 1위가 아이슬란드, 2위가 노르웨이, 3위가 스웨덴이다. 조사 기준은 여성들의 정치참여 기회, 교육성과, 보건, 정치 권한 등 4개 부문으로, 정치 부문이 압도적으로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국회 여성의원 비율이 17%에 머물고 있는 한국은 지난해 세계 149개국 가운데 꼴찌에 가까운 115위로 나타났다.

스웨덴 린네대학 최연혁교수(정치학)가 최근 한국에 왔다. 31년째 스웨덴에서 정치학을 연구하고 있는 최교수는 지난해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는 일상의 정치 현장을 담은 책『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를 펴내 주목받았다. 최교수는 최근 스웨덴의 이슈와 현상은 기존의 ‘양성평등’ ‘성평등’을 넘어 ‘성 없는(gender free)’ 사회로 가고 있다고 전했다. “성 중립(gender neutral)을 넘어서는 개념입니다. 사회적으로 남성인지 여성인지를 묻지 않는, 성이 없는 무성, 중립적 개념으로 가는 것이 진정한 성평등 국가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성 없는’이란, 성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최교수는 설명했다.

“남녀의 생물학적 구분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고, 어떤 일을 하는데 남성인지 여성인지가 의미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스웨덴에서 공공화장실 남성용-여성용 구별이 없어진 것이 10년이 넘었습니다.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남녀 구분을 안 한다는 점에서 잘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성차별이 여전히 뚜렷한 한국 현실에서는 ‘성 없는 사회’로 가기 전 우선 성평등 사회로 가기 위한 정치적, 제도적 변화가 절실하다. 최교수는 ‘성 없는’ 스웨덴 사회의 성평등은 남녀 모두 의무와 권리를 동등하게 지니는 데서 출발한다며 지난해 부활된 스웨덴의 병역의무제와 여성 징집을 예로 들었다.

“18세가 되면 남녀 모두 병역통지서를 받습니다. 건강이나 학업 등의 사유로 징집을 연기할 수 있지만, 어떤 형태로든 병역의 의무를 수행해야하는 징병제입니다. 이 제도를 시작하면서 여론조사를 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한 여성의 85%가 이를 당연한 의무로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스웨덴의 징병제 부활은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을 고려한 변화다. “냉전 체제가 붕괴된 뒤 평화체제가 왔다고 오판해 남성의 병역의무도 없앴습니다. 그러나 현실을 그렇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징병제로 다시 돌아오면서 여성도 같이 적용한 겁니다. 아직 2년 밖에 안됐고 사회적 논의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별다른 문제없이 정착을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성들은 전투 병과를 포함해 컴퓨터, 병참 등 다양한 병과에 배치된다. 군복무기간은 1년이다.

최교수는 남녀병역의무제가 받아들여지는 성평등 수준으로 가기 위해서는 가정에서부터 성평등 문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스웨덴에서는 아들에겐 장군감, 딸은 우리 공주님, 이렇게 부르는 일이 없습니다. 아가야(sweetie)라고 부르는 정도이지요. 집 안에서부터 남녀 젠더 구분 없이 자란 아이들이 학교와 사회에서 남녀가 의무와 권리를 공유하는 성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겁니다.” 그는 남녀 모두 고등교육 이수율이 높고 한 자녀 가정에서 자란 경우가 많은 한국 사회에서 이제 진정한 ‘젠더 프리’ 문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교수는 올해로 10년째 해마다 6월 말 열리는 스웨덴의 정치 축제 알메달렌주간(ALMEDALSVECKAN)에 참여하고 있다. 발트해상의 작은 섬 고틀란드에서 열리는 이 축제는 정치인과 기업인, 시민활동가, 언론인 등이 5000여 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정치박람회, 1주일동안 시민들은 연금 문제나 교육, 환경, 사회통합, 성평등 등 다양한 주제로 토론을 벌인다. 총리, 장관이 참석하고, 정당마다 자기 당 정책을 적극적으로 알린다. 시민들은 각 당의 정책 차이를 알게 되는 정치 학교가 된다.

“우리 사회에도 이처럼 일상의 정치 교육, 정치 참여가 시급합니다. 정치를 이성에 기초해 논의할 수 있어야 성평등 사회를 만들 수준이 됩니다.” 그는 특히 여성들의 정당-의회 참여가 여전히 낮은 수준인 한국에서 일상의 정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