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금 교수의 책 읽기] "너 꼭 페미니스트 같아"는 칭찬?
[장윤금 교수의 책 읽기] "너 꼭 페미니스트 같아"는 칭찬?
  • 장윤금 숙명여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 승인 2019.04.07 11:05
  • 수정 2019-04-07 1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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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는 때로는
우리가 ‘정상’으로 여기는
문화와 관습에 도전해야 한다”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 지음, 창비 펴냄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 지음, 창비 펴냄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페미니스트’는 우리 사회에서 편안하게 다가오는 단어가 아니다. 아니. 진지한 고민을 하기 위해서는 편안하면 안 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스포츠, 연예계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성차별과 관련된 대립과 갈등, 크고 작은 사건들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나는 딸 다섯에 아들이 하나인 다분히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막내딸로 태어났다. 당시에는 중학교부터 입시가 있던 시절이라 위로 줄줄이 중학교와 고등학교 진학을 앞 둔 언니들과 오빠 덕분에 막내인 나는 어머니의 주요 관심사로부터 무한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내 유년시절 기억 속에는 핑크색 드레스를 입은 모습보다는 한 손에 막대기를 들고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친구들을 몰고 다니는 심한 허스키 목소리의 여자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까지도 또렷한 장면은 골목을 뛰어다니다 수시로 넘어지면 마음 좋은 이웃 아주머니들이 빨간약을 들고 나와 발라주며 “윤금이 또 넘어졌네. 여자아이가 이를 어째. 남자였으면 좋았을 것을...“하며 걱정하던 모습이다. 그리고 또 다른 기억으로는, 고등학교 1학년 ‘가정’ 교과목 시험문제가 있다. 우리 반 학생 대부분이 틀렸던 “여자는 직장의 꽃이다”가 맞는가하는 질문이었다. 우리는 대부분 맞다고 답했는데 문제를 낸 여선생님이 우리 답을 보고 당황하며 화냈던 모습이 지금까지 기억에 생생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얼마 전 스웨덴에서 현재 모든 고등학교 2학년 성평등 교육 교재로 사용하고 있다는 책,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를 읽었다. 나이지리아 출신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Chimamanda Ngozi Adichie)의 2012년 TED 강연 (현재까지 530만 조회 수 기록, 비욘세의 노래 ‘흠 없는 (Flawless)'에도 삽입됨) 내용을 정리한 책으로 페미니스트에 대한 간결하면서도 강력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글의 시작은 치마만다가 14살이었을 때 친구인 오콜로마와 논쟁하는 내용이다. “논쟁의 주제가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중략) 오콜로마가 내게 이렇게 말했던 것은 똑똑히 기억납니다. ‘있잖아, 너 꼭 페미니스트 같아’ 그것은 칭찬이 아니었습니다. 말투에서 알 수 있었던 것은, ‘너 꼭 테러 지지자 같아’라고 말하는 듯한 어조였거든요. 그때 나는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의 뜻을 정확히 몰랐습니다.” 이후 그녀가 주위 사람들에게 듣게 된 페미니스트의 의미는 ‘남편을 얻지 못해서 불행한 여자’, ‘비(非) 아프리카적인 것’, ‘남자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 ‘화장을 하지 않고 늘 화가 나 있는 사람’ 등 이었다고 한다.

치마만다는 “나는 이제 스스로를 ‘남자를 미워하지 않는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했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우리가 어떤 일을 거듭 반복하고 목격하면서, 결국 그 일을 ‘정상’으로, ‘자연스럽게’ 생각해버리는 태도에 대해 반박한다. 그녀가 어린 시절 친구, 오콜로마와의 논쟁한 후 사전에서 찾은 페미니스트의 정의는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치마만다는 이 정의에 덧붙여, 페미니스트는 때로는 우리가 ‘정상’으로 여기는 문화와 관습에 대해 도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화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문화를 만듭니다. 만일 여자도 온전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정말 우리 문화에 없던 일이라면 우리는 그것이 우리 문화가 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유엔여성기구(UN Women)는 2019년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평등하게 생각하고, 스마트하게 만들어 가며, 변화를 위해 혁신하라’는 슬로건 아래 3월 8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나는 그 자리에 참석하여 양성평등 교육에 대한 또 다른 노력을 볼 수 있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Antonio Guterres) 유엔사무총장은 ‘여성의 권리를 축소하는 정책과 불평등 해소’에 더욱 노력할 것을 약속하면서, 지난해 유엔 고위 관리 그룹과 전 세계 유엔 지도부에서 처음으로 양성평등을 달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행사에서는 특히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전 세계의 양성평등 관련 이야기를 아마존의 인공지능(AI) 알렉사 (Alexa, 우리나라 ‘빅스비’, ‘씽큐’ 등과 유사함)를 통해 일반인들이 접할 수 있게 한 사례가 소개되었다. 또한 유엔여성기구와 구글이 협약하여 만든 네 개의 'virtual reality'(VR, 가상현실) 필름 ’질문할 용기(Courage to Question)’라는 시리즈를 선보였다.

즉 이러한 VR 필름이 VR 해드셋으로 360도 VR 영상체험을 가능하게 하여 사용자들에게 실제로 현장을 체험하는 듯한 생동감을 줄 수 있었다. 시리즈 가운데 첫 번째는 말라위 최초의 여성 부족장 테레사 카친다모토(Theresa Kachindamoto)의 아동 결혼에 대한 투쟁이야기로서, 2017년 2월 소녀들의 법적 결혼연령을 15세에서 18세로 연장시킨 성공 스토리이다. 이 법 개정으로 3,500여 명에 이르는 소녀들이 강제 결혼에서 보호되었으며 정규적인 교육을 받고 새로운 꿈과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이외에도 인도의 카스트 최하위 천민계층 달리티(Daliti) 여성들의 인권 회복을 위해 활동하는 아샤 카우탈 (Asha Kowtal), 21년간 누명을 쓰고 수감 되었다 석방된 후 여성 수감자들의 환경개선과 재활을 위해 활동하는 앨리스 마리 존슨(Alice Marie Johnson), 인신매매 여성의 구출과 재활을 위해 일하는 리디아 카쵸(Lydia Cacho) 등의 이야기가 VR 해드셋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졌다.

‘페미니즘’과 ‘양성평등’에 대한 올바른 사회적 인식을 위해서는 앞으로도 다양한 교육과 접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치마만다는 “오늘날 젠더의 문제는 우리가 각자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도록 돕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람이어야만 하는지를 규정한다는 점”이라 말한다.

이제는 ‘페미니스트’에 대한 부정적 뉘앙스가 없어지고, ‘페미니즘’이란 단어가 더 이상 부담이 되지 않는 그런 세상이 오길 기대해 본다.

 

장윤금 숙명여자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장윤금 숙명여자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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