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갑희/〈여성이론〉 편집위원, 한신대 교수

사람들은 말한다. 20세기는 폭력의 세기였다고. 전쟁으로 1억에 달하는 사람이 죽었다고. 그러나 여성의 시선으로 보면 폭력적이지 않은 세기가 있었을까? 21세기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말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국민 70%가 전쟁을 찬성하는 미국을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해 왔다. 나는 민주주의라는 말도, 국가라는 말도, 평화라는 말도 오염된 말들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강자 중심의 논리가 팽배한 지구촌에서 국가는 민주주의적일 수 없고, 일상도 평화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전쟁의 반대말로 평화를 사용하는 것은 너무 안이하다. 일상이 전혀 평화롭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일상은 전쟁을 실험하고 준비하는 일상이다. 미국은 그 많은 무기들을 전쟁 중에 만들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는 전자오락실, 컴퓨터의 전자오락게임, 장난감 총, 장난감 탱크들이 즐비하다. 오늘도 심미선과 신효순의 목숨을 앗아간 장갑차들이 남한의 땅을 지나다닌다. 전쟁을 실시간으로 보도한다는 텔레비전은 가상전자오락게임과 닮아 있다. 사람들은 무감각해져 있다. 폭력감지기가 작동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상이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아들, 남편, 아버지, 오빠들이 군대를 다녀온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성들은 전쟁을 반대해 왔다.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1914년 여성의 날에도 각국의 여성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제국주의 전쟁에 항의했다. 1974년 여성의 날에는 수천 명에 이르는 베트콩 여성들이 미국의 침략에 반대하는 행동을 벌였다. 현재 지구촌의 많은 여성들은 여성의 이름으로 이라크전에 반대한다. 그리고 남한의 많은 여성들은 ‘참여정부’의 이라크전 참여(파병)에 반대한다.

여성의 이름으로 전쟁을 반대하는 것은 여성이 어머니이고, 생명을 담지하는 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여자이기 때문에 평화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은 이제 이 지구촌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정치적 주체가 되고자 하기 때문이다. 남성중심의 역사가 만들어 온 숱한 전쟁과 일상의 폭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자 전쟁에 반대한다. 지금까지 성폭력과 전쟁폭력의 피해자로 살아온 여성의 위치를 바꾸기 위해 전쟁에 반대한다.

여성의 이름으로 전쟁을 반대하는 것은 지구촌의 군사주의와 군산복합체의 폭력을 감지하고 그 폭력을 중단시키기 위함이다. 나는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반대한다. 여성의 이름으로 우리는 다른 문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 한국사회, 지구촌, 우주의 모든 존재를 존중하는 그런 사상을 만들고 실현하는 일이 여자들의 몫이다. 인간과 자연의 생명을 파괴하는데 사용되는 군사비용을 여남차별을 방지하는 교육에 사용하고, 70%가 비정규직인 여성노동에 사용하고, 가사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불하는 데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 여자들이 전쟁에 반대한다고 나는 믿는다.

모든 장난감 무기 회사와 실제무기 제조회사를 찾아내어 시위하고 북한의 핵도 미국의 핵도 반대해야 한다. 군대라는 남성학교를 이제 없애고 남성의 성기를 닮은 탄두, 총, 대포, 탱크의 총구에 콘돔을 씌워야 한다. 가상전쟁게임들을 바꿔야 하고 언론의 보도방식을 바꿔야 한다. 전쟁의 반대가 평화라는 생각도 바꿔야 한다. 국가안보도 여성·인간·자연 안보로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현재 여성들은 미국이 시작한 전쟁을 반대하는 일 외에 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불가능하다고 주저앉으면 우리는 계속 모든 폭력을 감내해야 한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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