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책 / 남진우

그 옛날 난 타오르는 책을 읽었네

펼치는 순간 불이 붙어 읽어나가는 동안

재가 되어버리는 책을

행간을 따라 번져가는 불이 먹어치우는 글자들

내 눈길 닿을 때마다 말들은 불길 속에서 곤두서고

갈기를 휘날리며 사라지곤 했네 검게 그을려

지워지는 문장 뒤로 다시 문장이 이어지고

다 읽고 나면 두 손엔

한 움큼의 재만 남을 뿐

놀라움으로 가득 찬 불놀이가 끝나고 나면

나는 불로 이글거리는 머리를 이고

세상 속으로 뛰어 들곤 했네

(중략)

- ‘타오르는’. 멋있는 표현입니다. 내 속에 타올라서 나를 변화시키고 나를 폭발시키는 책. 사실 그것은 책이 아니고 책 속에서 살아 움직였던 어떤 사람의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타오르게 하는 그대’고 해야 할까요?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으면서 그 책이 아이들에게 보물로 기억되기를, 그 책을 통해서 아이들의 마음과 영혼에 불이 지펴지기를 모든 엄마와 선생님들은 바랄 것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읽을 책을 고르면서 이 책은 과연 불꽃인가 질문해 봅니다. 이 책은 과연 무엇을 타오르게 할 것인가? 이 책의 저자는 과연 이글거리는 열정과 불꽃같은 생각으로 타오르고 있는가? 때로는 들불처럼, 때로는 부드러운 잔불처럼…

책은 독약이다. 아이들이 교훈적으로만 책을 읽는다면.

- 백설공주를 읽고 백인중심의 세계관과 순종적이고 주체적이지 못한 여성관을 가질 위험이 있다.

- 개미와 베짱이를 읽고 ‘성실과 근면’은 무조건 좋으며 노는 것은 무조건 좋지 않다는 생각을 갖는 데 영향을 받을 것이다.

- 신데렐라를 읽고 왕자에 의해 인생이 달라지는 여성관, 인생관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 여러가지 위인전을 읽고 위인은 특별하게 태어나며, 그 위인과 영웅이 존재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할 위험성이 있다.

- 수많은 옛이야기와 동화를 읽고 아이들은 왜 ‘마녀’는 나오는데 ‘마남’은 나오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으며, 남성중심 이데올로기·세계관에 영향받을 수 있다.

- 유럽중심의 고전과 동화를 읽고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왜 잘 살고 아프리카·남아메리카·아시아 사람들은 가난하고 못사는지 편견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

교훈적 독서와 주체적 독서를 구분하는 기준

- 혹시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데 그치는 독서는 아닌가?

- 혹시 읽기의 기능적인 능력만을 키우기 위한 독서는 아닌가?

- 추론과 상상력을 얼마나 발동시키는 독서인가?

- 아이들이 책을 읽고 과연 질문할 수 있는가?

- 아이들이 책을 읽고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것과 다른 주장을 할 수 있는가?

- 혼자 읽는 독서와 교사가 함께 읽으면서 토론하는 독서는 어떻게 다른가?

- 독서토론을 통해 관찰력/유비추론능력/관계파악능력/상징, 기호읽기능력/창의적 사고와 비판적 사고능력을 키울 수 있을까?

초등학교 때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책읽기가 누군가를 만나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만남·대화’이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들어야만 되는 ‘설교’나 재미없는 ‘강의’와 같은 교훈적 독서법으로 진행되는 게 문제입니다.

살아있는 독서와 죽은 독서, 노예적 독서와 주체적 독서의 차이는 책을 지은 사람과 책을 읽는 사람이 독서과정에서 얼마만큼 살아서 서로 대등하게 만나 대화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내가 없이 일방적으로 지은이의 의도대로 지은이의 생각만을 받아들이며 외우고 흡수하는 데만 급급한 독서, 책을 읽은 다음 그 책의 내용을 요약하고 이해하는 것만 생각해 마치 의무처럼 독후감 쓰기를 강요하는 독서는 책 읽는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삶과 생각을 모방하는 데 그치는 독서가 될 위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독서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는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주체적인 삶을 살기보다는 수용적이며, 타인들이 제시하는 규칙과 질서에 맞추어 자신을 규정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사고력을 키우는 독서지도를 위해 학부모가 생각해야 할 것들

- 혼자서 읽어도 되는 책과 함께 토론하면서 읽어야 할 책을 구분해야 한다.

- 책을 읽을 때는 상상력의 힘을 발동시켜야 한다. 자신이 이미 경험한 것과 연결한 상상력, 문자로 표현된 의미와 내용을 이미지로 그려내는 사고의 힘, 책 속에 제시된 사건, 장면을 그려내는 힘이다.

- 독서는 추론이다. 책 속에 제시된 암호 같은 문자 속에 무엇이 과연 들어 있는가? 만약 유추하고 추론하지 않는다면 결코 내용을 이해하거나 의미를 알 수 없다. 물론 이 의미 파악을 통해 저자와는 전혀 다른 판단을 할 수도 있다. 독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추론능력을 강화하는 과정이다. 추론은 두 가지로 진행된다. 저자나 책이 제시한다고 생각하는 의미나 주장·느낌이 이것이라고 판단하는 과정과 또 하나는 자기 중심적인 판단을 하는 과정이다.

- 책을 읽는 과정, 또는 책을 읽고 나서 반드시 질문이 있어야 한다. 이 때 질문은 내용 파악(이해)에 관한 질문이 아니라 책에서 제시하는 주장, 의견, 판단, 결정에 대한 의문 또는 다른 주장에 이를 수 있는 문제제기의 질문이다.

차오름 헵타드사고력교육연구(www.sapiens.co.kr 02-2057-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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