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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독립을 위해 마포자활지원센터에서 열심히 기술을 배우는 비혼엄마들이다. <사진·민원기 기자>

그래, 나 비혼모다. 아무리 내가 비혼이지만 우리 아기를 남에게 맡길 수 없어 내가 키운다. 말 그대로 핏줄이 땡겨서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그게 그렇게 큰 죄인가. 물론 비혼인 내가 아기를 낳았다는 것이 그리 큰 자랑거리는 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눈치보고 욕먹을 만큼 남에게 해를 끼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그를 사랑해 함께 잤다. 그러나 너무도 멍청해 피임이란 걸 제대로 몰랐고, 더구나 한 번 잤다고 임신까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는 내게 병원에 가자고 했다. 수술하면 된다고. 그러면 아무 일 없던 거라고. 그렇게 한순간의 일이라고 지워버리면 모든 게 끝나는 걸까. 생명 존중을 운운하던 그 놈 뺨을 후려쳤다. 그리고 결심했다. 키우자. 저런 놈들의 세상이 되지 않게 누구보다 당당하게 키우리라. 차라리 나의 성적인 무지와 사회에 대한 무모한 용맹을 욕한다면 당당히 받아들이겠다. 그러나 더 이상 나와 우리 아기의 인격까지 무시하지 마라. 내 삶과 사회적인 온갖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아기를 지키는 내가 ‘비혼모’라는 이름 하나로 더 이상 멸시받고 싶지 않다. 이제 나도 나와 아기의 권리를 찾을 것이다. ‘비혼모’가 아닌 ‘엄마’의 이름으로. <본지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글>

비혼부에게도 양육권을 묻자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위치한 비혼엄마와 아기를 위한 공동육아방 ‘둥지’를 찾아간 것은 지난 18일이다. 공동육아방이라고 해서 어느 건물에 위치했거나 뭐 특별한 시설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아늑한 집이었다. 한창 공사중인 집 문을 열고 들어서니 ‘큰엄마회’ 김소양 회장, 여러 명의 비혼엄마, 이제 8개월 된 귀염둥이 딸과 강아지 두 마리가 반가이 인사를 했다. 비혼엄마들의 자활을 돕는 ‘큰엄마회’ 회장 김소양(47)씨는 공동육아방에 대해 “입양은 싫고 아기와 함께 살고 싶은데 여건이 허락지 않아 고민하던 비혼엄마들과 터를 꾸몄다”며 “특히 경제활동을 하는 동안 아기를 맡길 데가 없어 고민하던 차에 서로의 아픔을 보듬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아늑한 방에서 차 한잔을 마시며 비혼엄마들은 뭐라 할 것 없이 먼저 입을 열었다. 22일 돌잔치를 앞둔 아이의 엄마 최영미(가명·23)씨는 “이런 얘기하면 안 믿겠지만 임신 7개월이 돼서야 임신인 줄 알았다”고 밝혔다. 그녀의 말에 너무 놀랐다. 정말? “워낙 생리가 불규칙했다. 서너 달 건너뛰는 것이 다반사여서 그냥 살이 찐다고 생각했지 임신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듯한 표정의 기자를 쳐다보던 김씨는 “영미말고도 그런 경우 많다. 친구끼리 성이나 임신과 관련된 얘기를 하면서도 설마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며 “비혼엄마들과 만나면서 피부로 느꼈던 것은 성지식이 아닌 제대로 된, 구체적인 성교육이 절실하다는 거였다”고 말한다.

남녀가 서로 사랑해 잠을 자면서 불확실한 미래를 예방하기 위해 “내가 피임할까? 아니면 네가 피임할래?”라고 물어볼 만큼 당당한 여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아직까지는 헤픈(?) 여자만이 말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한국사회에서 ‘사랑’이라는 이름 앞에 감히 피임을 운운하기엔 너무 죄스러운 것이다.

김씨의 말을 듣던 최씨는 계속 말을 이었다. “산부인과에서 임신이란 말을 듣고 너무 당황했는데 더 황당했던 것은 의사가 ‘떼실 거예요?’라고 질문한 것이다. 내가 어려 보이니까 당연히 수술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이런저런 말도 없이 ‘어차피 혼자인데 애를 낳을 거냐’고 다시 물어봤다. 너무 화가 나 다시는 이 병원에 안 온다고 외치고 그냥 나와 버렸다.”

비혼모 아이 2만여 명 어디서 클까

최씨의 임신에 대한 남자의 반응이 궁금했다. 주부, 이혼녀, 비혼엄마의 다양한(?) 경험을 한 정은희(가명·35)씨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해줬다. “남자들의 반응은 거의 비슷하다. 처음에 임신했다고 말하면 대부분 낙태를 하자고 한다. 낙태는 안 된다고 하면 머뭇거린다. 머뭇거리는 동안 여자는 임신 7개월 정도 되는데 이쯤 되면 거의 대부분은 도망간다. 그나마 도망가지 않은 남자들은 다른 곳으로 입양 보내자고 끈질기게 설득한다. 그것도 싫다고 하면 결론은 네가 낳겠다고 했으니까 알아서 하라고 모든 책임을 여자에게 떠넘긴다.”

비혼엄마는 있지만 비혼아빠가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결국 네가 낳겠다고 결정했으니 알아서 하라는 아주 합리적인 사람인 척, 자신은 나름대로 끝까지 최선을 다했는데 여자가 ‘고집’을 부려 결국 이렇게 됐다는 어이없는 이유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씨는 외국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독일은 비혼부의 양육권을 확실히 묻는다고 한다. 아이의 아빠가 죽지 않고 살아있는 한, 비혼부가 누구인지 밝혀지면 지나간 양육비까지 청구할 정도다. 김씨는 “우리나라도 비혼부에게 책임을 확실히 묻는다면 피임을 더욱 철저히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비혼부의 책임감을 얘기하다 보니 자연스레 정부에서 지원하는 비혼모 시설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비혼엄마들은 이구동성으로 현재 비혼모 시설을 정확하게 표현하면 ‘비혼 임산부 시설’이라고 말한다. ‘둥지’에 함께 있는 비혼엄마 중에서 시설에 있다가 아기를 낳고 3일만에 ‘둥지’에 온 경우가 있다. 김씨는 “시설에서는 입양을 적극 권유한다”며 “함께 있는 비혼엄마 중에서 한참 고민하다가 아기를 직접 키우겠다고 하니까 당장 시설에서 나가라고 해, 한겨울에 산후조리는커녕 그 몸을 이끌고 지방에서 여기까지 왔다”며 분노를 삼키지 못했다.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있던 박지영(가명·27)씨는 “시설에 있었다”며 “입양을 하지 않고 키우겠다고 하니까 무척 화를 냈다. 능력이 있으니까 저런 소리를 한다며 애도 낳기 전에 나가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밝혔다. 박씨는 “처음엔 입양하려다가 막상 아이를 낳으면 도저히 떨어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며 “그런 사람들에게 산후조리도 하지 못하게 하고 수술비와 입원비 등을 요구해 너무 화가 났었다”고 토로했다.

이런 문제가 계속 누적되면서 정부는 올 3월부터 ‘둥지’와 비슷한 형태로 비혼엄마가 아기를 키울 수 있도록 ‘중간의 집’을 개원한다고 한다.

서로의 어려움과 실태를 얘기하던 중 불쑥 연예인 얘기가 나왔다. “탤런트 윤다훈이 비혼아빠임을 선언할 때 많은 언론에서 따뜻한 시선을 보냈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이까지 키우다니 하면서.” “그건 탤런트이기 때문이야. 일반인들이라면 그런 반응이 있겠어?” “아냐. 남자라서 그래. 예전에 개그우먼 이성미가 비혼모임을 선언할 때 생각 안나? 완전히 묵사발 만들었잖아.” “마저마저. 상대방 남자는 아니라고 끝까지 우기다가 결국 들통나고.”

한참 얘기를 하다 우린 모두 씁쓸했다. 여전히 이 사회는 남자가 하면 로맨스요, 여자가 하면 불륜이니 말이다.

김씨는 “솔직히 비혼엄마라는 것이 큰 자랑은 아니다. 실패는 실패로 인정해야 한다. 특히 아이에게 있어 아빠와 엄마의 균형 있는 역할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결혼했다고 모두 아빠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사회적으로 질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르웨이에 입양된 한국 아이를 만났는데 한국인에 대해 많은 적개심을 갖고 있었다며 입양이 최선은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아이에겐 엄마가 중요한데 비혼엄마들이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사회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비혼엄마들이 낳은 아이가 2만여 명이며 이중 해외입양이 된 경우가 2천 명이다. 그 나머지 아이들은 어디서 자라겠는가. 보나마나 시설에서 자랄텐데 시설보다는 그래도 엄마 품이 좋다. 정부가 그리고 사회가 비혼엄마들이 아기를 키우며 자립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현재 ‘둥지’에 있는 비혼엄마들은 씩씩하게 살고 있다. 낙태나 입양의 죄책감도 없이 아이들의 미래,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자활센터에서 열심히 배우고 일하며 자립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생명존중은 비혼모 존중에서부터

하지만 ‘둥지’에 있는 비혼엄마들은 불과 네 명. 신생아를 낳아 아직 자립하기 힘든 산후조리중인 비혼엄마들이 생활하는 구기동의 ‘깃터’에도 네 명. 턱없는 정도가 아니라 새발의 피도 안 되는 숫자다. 대부분은 친정부모 밑에서 죄스런 마음으로 의지하며 살거나, 혼자서 힘겹게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다.

올해 다섯 살인 아들을 키우는 임수연(31)씨는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했다. 친정엄마와 여동생에게 너무 미안해 기저귀 빨래도 직접 했다”며 “지금은 독립했지만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었다”고 밝혔다. 임씨는 “부모님 밑에 있어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항상 경제적인 문제로 힘들었다”며 “특히 아이가 애착 형성이 안 돼 놀이치료를 받을 때는 정말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현재 초등학교 3학년인 딸과 사는 김미연(가명·34)씨는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힘든 것을 얘기하라면 며칠 밤을 새도 모자란다”며 “그러나 ‘스스로 선택해놓고 왜 그렇게 힘들어 하냐’며 툭툭 던지는 말과 편견이 삶의 의지를 꺾는다”는 뼈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짧은 기간이지만 다양한 비혼엄마들을 만났다. 그들은 정말 건강했다. ‘비혼모’라는 막연한 선입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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