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세에 런웨이 선 모델 “늦은 때란 없어요, 지금 해야지”
77세에 런웨이 선 모델 “늦은 때란 없어요, 지금 해야지”
  • 김수지 인턴기자(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 승인 2019.03.21 15:41
  • 수정 2019-03-21 1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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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시니어 모델 최순화씨
결혼·육아에 접었던 꿈
60년 만에 인생 2막 열어
발품 팔아 찾은 모델 학원서
5년 간 워킹·포즈 배워
늙어보일까 감췄던 은발은
트레이트 마크
“할머니 최고” 응원에
세계 무대도 꿈 꿔
시니어 모델 활동 모습이
다른 이에게 용기 주길
시니어 모델 최순화씨가 지난 2월 28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더쇼프로젝트 사무실에서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시니어 모델 최순화씨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더쇼프로젝트 사무실에서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소녀적 꿈이 칠십 대에 와서 이렇게 이뤄지나. 다 지나간 줄 알았는데. 굉장히 기뻤고, 어깨에 힘도 들어갔어요.”

77세 최순화씨는 데뷔 2년 차 시니어 모델이다. 늙어보일까 감추고 싶었던 은발은 이제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지난해 ‘헤라 서울패션위크 가을·겨울 시즌’ 디자이너 ‘키미제이’의 무대를 통해 시니어 모델 최초로 메인 모델이 됐다. 최씨는 즐거운 표정으로 당시를 회상했다. 큰 설렘과 긴장을 느낀 순간이었다. “올라가기 전에는 실수하면 어쩌나 싶어 가슴이 많이 두근거렸어요. 내려오고 나선 ‘이때 잘 못 했네’ 하는 아쉬움도 들었고요. 나를 돋보이게 하려 고민했어요.”

최씨의 어린 시절 꿈은 모델이었다. 아버지가 사 오신 잡지에 등장하는 모델들을 동경했고 옷에 관심이 많아 어깨너머로 재봉질로 옷을 만드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170cm의 늘씬한 키에 주변에서도 모델을 권했지만 ‘모델 하고 싶다’는 말 한 마디 입 밖에 내보지 못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꿈 꾸는 일조차 자연스레 접었다. 60년이 흐른 어느 날, ‘모델 해보라’는 지인의 권유는 다시 그를 흔들었다.

“지인이 실버 모델이라는 게 있는데 한번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처음 알았어요. 나이든 사람도 모델을 할 수 있다는 걸요.”

처음에는 웃어 넘겼지만 곧 금세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칠순 넘은 할머니가 무슨 모델이냐’는 생각도 잠시,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겠느냐는 마음이 불쑥 솟아 올랐다. “내가 하고 싶던 거, 할 수 있으면 지금 해야지’ 싶었죠.”

아버지가 사 오신 잡지에서 예쁜 옷을 입고 사진 찍은 모델을 동경했지요. 집에 붉은 벨벳 천이 있었는데, 어머니 어깨너머로 배운 재봉질로 옷을 만들어 입고, 장갑도 만들어 친구들에게 자랑하곤 했어요. 하지만 그땐 부모님께 말 한마디 꺼내보지 못했습니다.”

시니어 모델 최순화씨가 지난 2월 28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더쇼프로젝트 사무실에서 워킹을 연습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시니어 모델 최순화씨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더쇼프로젝트 사무실에서 워킹을 연습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모델 일이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놔

그러나 육십 대 후반의 최씨가 모델 학원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스마트폰도 사용할 줄 모르고, 모델 학원 찾는다고 말하긴 부끄러워서 한동안 찾아보질 못했어요. 우연히 TV에서 모델 활동하는 두 노인을 보고 결심이 섰죠. 해보자. 수소문해서 모델 학원을 찾아갔어요.”

올해로 5년 차, 일주일에 한 번씩 듣는 모델 수업은 최씨 삶의 큰 원동력이다.

“나이가 들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한다는 건 굉장히 즐거워요. 다음번에는 어떤 옷을 입고, 머리를 어떻게 할까. 쇼할 때는 어떤 포즈를 취할까. 집에서도, 전철을 타도 온종일 이런 생각으로 꽉 차 있어요.”

동료들과 함께 시장에 가서 옷과 액세서리를 걸쳐보는 일도 최씨에게 소소한 재미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일상사진과 글을 올리는 새로운 취미도 생겼다.

“‘인스타’(@soonhwa01) 너무 재밌어요. 직접 하는 거예요. 제가 올리면 학원 ‘쌤’들이 글을 써주기도 하고, 멋지다는 메시지도 자주 와요”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지금은 ‘하트’, ‘웃음’, ‘장미’ 등 자주 쓰는 이모티콘도 활용하며 원활히 소통한다.

최씨는 원래도 자세가 바른 편이었지만 더 좋아지고, 건강해졌다고 했다.

“제 별명이 ‘깁스’예요. 너무 똑발라서. 그런데 학원에 와서 보니까 어깨가 약간 굽은 거예요. 수업 들으면서 일자로 바로잡았죠. 전철 타면 사람들이 한 번씩 쳐다보고 어찌 그렇게 꼿꼿한지 물어봐요.”

가족들도 최씨의 활동을 ‘멋지다’며 응원한다.

“딸이 ‘엄마는 모델 했으면 잘했을 텐데, 시대를 잘못 타고 났다’고 했거든요. 지금은 너무 좋아하고 응원해줘요. 손자들도 ‘우리 할머니 최고예요’ 하죠.”

시니어 모델 최순화씨가 지난 2월 28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더쇼프로젝트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시니어 모델 최순화씨가 지난 2월 28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더쇼프로젝트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더 많은 무대에 설 수 있길

하지만 최씨는 지금까지의 활동으로 수입을 얻지는 못했다. “지금은 시니어 모델이 많은데 설 자리가 없어요. 선다 해도 수입은 거의 없고요. 디자이너 선생님들이 아직 거기까지는 다 못 하나 봐요.”

시니어 모델의 활동이 아직은 주로 자아실현의 개념으로 여겨지는 것도 한 이유다. “그래도 저랑 칠두씨가 서울패션위크에 섰으니 앞으로는 좀 더 열리겠죠. 요즘엔 시니어의 모델·연기 활동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에이전시도 생기고 있어요. 그런 곳에선 런웨이에 나갈 때 급여를 주죠.”

최씨와 함께 런웨이에 오른 남성 시니어 모델 김칠두씨도 최근 주목받고 있다. 최씨는 다른 시니어들도 자신을 보고 희망을 얻길 바란다고 말했다. “각자의 재능을 살렸으면 좋겠어요. 한 번은 학원에 60대로 보이는 사람이 와서 머리 하얗게 센 저를 보더니 ‘이 분 보니까 용기가 나네. 해 봐야겠다’고 갔는데 어찌 됐는지 몰라요. 용기가 안 나서 못 하는 사람은 나 봐요. 나 보면 얼마든지 용기가 나지.”

최씨는 앞으로도 모델 활동을 계속할 예정이다. 연기에도 도전해보고, 세계무대에 한국 시니어 최초로 나가고 싶다는 새로운 꿈도 생겼다.

“잠깐 드라마에 두 컷 정도 지나가는 것도 해보고 싶고, 외국에 갈 기회가 있으면 한국 시니어 처음으로 나가보고 싶어요. 한국에도 나 같은 사람이 있다. 당신네만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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