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논단] 누가 발언하는가?
[여성논단] 누가 발언하는가?
  • 신지영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승인 2019.03.22 08:50
  • 수정 2019-03-20 2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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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발언자로 나서길
주저하는 여학생들
강의실은 일상의 축소판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12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문과대 앞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방학 동안 고요하고 여유롭던 교정에는 학생들이 가득하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싱그러움에 새내기들의 활기가 더해져 3월의 대학은 활력이 넘친다.

그 활력이 고스란히 강의실로 이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불행히도 학기 초 강의실 안의 풍경은 강의실 밖과 사뭇 다르다. 활력보다는 긴장감이 가득하다. 학생들의 긴장감은 강의실의 공기를 부자연스럽고 딱딱하게 만든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강의 중에 자신이 궁금해하는 것을 묻거나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학기 초에는 자연스러운 강의실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학생들의 반응을 유도하는 다양한 방법을 활용한다. 강의 중에 작은 설문을 하자고 제안하며 손을 들어보라고 하기도 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 다양한 행동을 요구해 보기도 한다. 또, 질문을 던져서 학생들의 답변을 들어보려고도 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학기 초에 외면을 당하기 일쑤다. 심지어 몇몇 학생들의 표정에서는 절대로 반응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읽히기도 한다. 긴장감이 없어지고 강의실의 분위기가 자연스러워지는 데는 보통 몇 주가 필요하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몇 주가 지나면 강의실의 공기는 훨씬 부드러워진다.

이렇게 공기가 부드러워지면 학생들은 강의 중에 발언을 하기 시작한다. 손을 들고 질문을 하기도 하고, 그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발언권을 요청하기도 한다. 강의 중에 생각해 볼 문제를 던지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등 적극적으로 강의에 임한다. 물론, 모든 학생이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적극적인 학생 몇 명이 주도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가능한 한 많은 학생들이 강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 교수자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또, 학생들마다 성향이 있으니 그 성향을 무시하고 적극성을 강요하는 것도 폭력일 수 있으니 조심스럽게 격려하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강의 중에 발언을 하는 학생들의 성별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체로 남학생이 여학생에 비해 발언의 빈도가 높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특히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경우 첫 번째 발언자로 손을 드는 학생의 성별은 남성인 경우가 많았다. 첫 번째 발언자가 되기를 주저하는 것은 일반적인 경향이지만 특히 여학생들의 경우는 첫 번째 발언자가 되기를 더욱 주저하는 것 같았다.

발언하는 학생들의 성별을 관찰하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작년 1학기 조별 발표를 시켰을 때였다. 앉아 있는 자리를 기준으로 학생들을 다섯 조로 나눈 후, 조별로 자료를 주고 탐구하게 했다. 주어진 시간 동안 탐구한 내용을 각 조의 대표자 한 사람이 나와서 발표를 하는 형식이었다. 그런데 다섯 조 중에서 여학생이 대표로 나와 발표를 한 조는 단 한 조에 불과했다. 나머지 네 조는 대표 발표자가 모두 남학생이었다. 수강생 중에서 남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이 30% 정도라는 점을 고려할 때 발표자 중에서 남학생이 차지한 80%라는 비율은 생각해 봐야 할 수치였다.

이러한 경향은 필자의 강의실에서만, 혹은 강의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만 관찰되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일상이 강의실로 옮겨온 결과로 보는 것이 맞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발언권을 가진 사람의 성별이 균형을 이루고 있지 않다. 텔레비전을 켜도 라디오를 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남성들이다. 특히 토론 프로그램을 보면 더욱 그렇다. 패널 구성부터 성비의 균형은 맞지 않는다. 모든 패널이 남성으로 구성되는 것은 너무나도 자주 목격되는 일이지만, 모든 패널이 여성으로 구성된 경우는 떠오르지 않는다. 또, 남성의 발언과 여성의 발언에 대한 수용자의 온도도 매우 다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번거로움을 피하고 싶어서, 주목받는 것이 불편해서, 다른 생각을 수용하지 못할 것이 뻔한 상대와의 충돌을 피하고 싶어서, 혹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발언하지 않는 여학생들이 문제가 아니라 발언하는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 주지 못한, 필자를 포함한 기성세대 여성들이 문제가 아닐까 반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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