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낙태죄 위헌 판결과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집회 ‘낙태죄, 여기서 끝내자’가 열려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낙태죄 위헌 판결과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집회 ‘낙태죄, 여기서 끝내자’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폐지에 대해 심리 중인 가운데 국가인권위원회가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의견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인권위가 낙태죄 관련 공식 입장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헌재의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는 최근 헌법재판소에서 심리중인 ‘형법’ 제269조 제1항 및 제270조 제1항에 대한 위헌소원과 관련해 낙태한 여성을 형법에 따라 처벌하는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 건강권, 생명권, 재생산권 등을 침해한다는 의견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인권위는 “출산은 여성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안임에도 여성 스스로 임신 중단 여부를 결정할 자유를 박탈하는 낙태죄는 공권력으로부터 간섭받지 않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이어 “민주 국가에서 임신을 국가가 강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임신의 중단인 낙태 역시 스스로 판단에 따라 결정할 권리가 있고 국가는 이를 보장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형법’은 예외 사유를 두지 않고 낙태를 전면 금지하고 있고, ‘모자보건법’상 낙태 허용 사유도 매우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이로 인해 여성이 낙태를 선택할 경우, 불법 수술을 감수할 수 밖에 없고, 수술을 받더라도 불법이기 때문에 안전성을 보장받을 수 없으며, 부작용이 발생해도 책임을 물을 수 없어 여성의 건강권, 나아가 생명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판단했다.

2018년 제49차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대한 최종 권고문에서 안전하지 않은 여성의 임신중절이 모성 사망과 질병의 주요 원인이라는 관점에서 낙태를 합법화·비범죄화·처벌조항을 삭제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또 세계보건기구 역시 “안전한 임신중절을 시기적절하게 받는 것을 방해하는 절차적·제도적 장벽들은 철폐돼야 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인권위는 “국가는 이러한 권고의 충실한 이행을 통해 실질적인 여성의 건강권과 생명권 보장책임을 완수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인권위는 또 낙태죄는 모든 커플과 개인이 자신들의 자녀 수, 출산간격과 시기를 자유롭게 결정하고, 이를 위한 정보와 수단을 얻을 수 있는 재생산권을 침해한다고 분석했다. 우리 정부가 비준한 ‘여성차별철폐협약’은 당사국에게 자녀의 수 및 출산간격을 자유롭고 책임감 있게 결정할 권리를 보장하도록 해 우리 정부는 ‘헌법’ 제6조에 따라 이 권고를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권위는 이와 함께 낙태죄는 일본의용형법에서 유래한 것으로, 국가의 인구정책적 필요에 따라 작동 여부가 변화해왔고, ‘모자보건법’상 우생학적 허용조건을 활용해 생명을 선별했다는 문제 제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측면이 있다고 인권위는 지적했다.

또 낙태죄를 통해 낙태의 예방 및 억제의 효과가 있는지도 의심스럽다고 덧붙였다. 복지부가 최근 발표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2018년)’에서 임신을 경험한 여성의 19.9%가 학업이나 직장 등 이유로 낙태한 것으로 조사됐고, 이전 조사에서도 연간 17만 건의 낙태수술이 이뤄지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어 낙태죄로 인해 낙태율이 줄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권위는 “낙태를 형사 처벌하지 않는 것이 ‘낙태의 합법화’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부동의 낙태 등 문제는 의료법 개정 등 다른 방식으로 해결 가능해 조화로운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음에도 낙태죄 조항은 생산적인 논의를 가로막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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