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최영미 ‘포럼 본’ 특강
고대 그리스 시인 사포부터
빈센트 말레이·최승자 등
남성 중심의 문학사에서
목소리 낸 여성시인들 소개
고은 시인 손배소 결과에 대해
“마땅하고 당연하게 이겼다”

최영미 시인이 그리스 시인 사포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최영미 시인이 그리스 시인 사포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마땅하고 당연하게 저는 이겼습니다.”

최영미 시인은 미국의 시인 마야 안젤루(1928~2014)의 시 「그래도 나는 일어서리라」(Still I Rise)를 소개하며 시의 마지막 구절을 변주해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은 고은 시인이 본인의 성추행 의혹을 제기한 최 시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결과에 대한 소감이었다. 최 시인은 ‘마땅하고 당연하게’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

최 시인은 지난 1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포럼 본’ 강연자로 나섰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주최로 열린 이날 특강에서 최 시인은 ‘잊혀진 목소리, 여성시인들’을 주제로 남성 중심 사회의 관습에 도전하고 자기 목소리를 낸 여성 시인들의 삶과 시를 재조명했다.

고대 그리스의 여성 시인 사포(Sappho)는 최 시인이 고등학생 시절 시인이라는 꿈을 품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기원전 630년경 레스보스 섬에서 태어난 사포는 “자신의 목소리를 역사에 남긴 최초의 여성”이자 “언어의 힘으로 당대를 지배한 시인”이라고 최 시인은 평가했다. “고대 그리스는 왕이나 영웅을 찬양하는 목적으로 지어진 서사시가 대부분이었어요. 사포는 처음으로 ‘나’의 감정을 노래하는 서정시를 쓴 시인이었어요. 외과의사가 해부를 하듯 구체적으로 감정을 묘사했어요. 감성적이면서 동시에 논리적이지요. 사포의 서정시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고대 그리스인들도 나를 노래하기 시작하죠. 사포는 개인주의에 바탕을 둔 서양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줬다고 생각해요.”

폼페이에서 발견된 이 벽화를 두로 그리스 시인 사포로 추정하는 의견이 많다. 현재 이탈리아 나폴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폼페이에서 발견된 이 벽화를 두로 그리스 시인 사포로 추정하는 의견이 많다. 현재 이탈리아 나폴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시인을 경멸했던 플라톤도 사포를 ‘열 번째 뮤즈’라 칭송했고, 후대에 이르러 남성 시인들에게 찬미의 대상이었다. 그의 시에서 드러난 여성에 대한 갈망은 사포가 동성애자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레즈비언’(lesbian)이란 말은 사포의 고향인 레스보스에서 유래한 말로, 여성 동성애자를 일컫는 말로 굳어졌다.

‘그는 생명을 가진 인간이지만 내겐 신과도 같은 존재/ 그와 네가 마주 앉아 달콤한 목소리에 홀리고 너의 매혹적인 웃음이 흩어질 때면/ 내 심장은 가슴속에서 용기를 잃고 작아지네/ 너를 훔쳐보는 내 목소린 힘을 잃고 혀는 굳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네/ 내 연약한 피부 아래 끓어오르는 피는 귀에 들리는 듯 맥박 치며 흐르네/ 내 눈엔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네.’ -사포의 「질투의 시」 중

약 2000년의 시간을 넘어 최 시인이 주목한 시인은 1920년 미국에서 활약한 시인이자 극작가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Edna St. Vincent Millay)다. 사포 이후 가장 뛰어난 여성 시인으로 꼽히는 밀레이에 대해 최 시인은 “시대를 대변한 시인”이라고 평했다. 밀레이의 대표 시 「첫 번째 무화과(First fig)」는 미국의 황금기인 1920년대 이른바 ‘재즈시대’를 풍자했다고 소개했다.

‘내 양초는 양쪽에서 타들어가지/ 하룻밤도 지속하지 못하겠지만/ 하지만 아, 나의 적들이여 그리고 오, 나의 친구들이여/ 얼마나 사랑스런 불빛인지!’ -에드가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 「첫 번째 무화과」

최 시인은 미투 운동의 중요한 마중물이 된 시 「괴물」에 대해 “원고 마감 전까지 본문의 ‘En’을 ‘N’으로 쓸지를 놓고 고민했다”며 “결국 ‘En’을 ‘N’으로 고치지 않은 게 제게는 가장 큰 용기였다”고 말했다. 두려움이 컸다고도 했다. ‘En’이 고은 시인으로 해석되면서 ‘거장’으로 불리던 문단 권력의 성폭력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날 수 있었다.

최 시인은 198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최승자 시인을 “전투적이고 파괴적인 동시에 여린 감수성을 가졌다”고 평했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일찌기 나는」)라고 노래했던 최승자 시인은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서른 살은 온다’(‘삼십 세’에서),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온다/매독 같은 가을’(‘개 같은 가을이’에서) 같은 시구들로 독자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최 시인은 사포와 함께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준 여성 시인으로 최승자 시인을 꼽으며 “최승자 시인의 시를 읽으며 남성 지배 사회 속에 에쁜 인형으로 예쁜 말만 쏟아내지 않겠다는 반발심이 있었다”고 했다.

최 시인이 주목한 여성 시인들은 글을 통해 시대를 대변했고, 여성들에게 위로를 건냈으며 세상에 희망을 전했다. 시인의 삶은 그들 언어의 밑천이었다.

마야 안젤루 ©mayaangelou 유튜브
마야 안젤루 ©mayaangelou 유튜브

 

미국 흑인 시인이자 인권운동가인 마야 안젤루의 삶도 드라마틱하다. 1928년 태어난 그는 세 살 때 부모가 이혼하면서 남부 아칸소 주 할머니 집에 맡겨졌고 극심한 인종차별에 시달려야 했다. 7세 때 어머니와 재회했지만, 어머니의 남자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해야 했다. 그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자 가족들은 가해자를 살해한다. 이후 6년 가까이 실어증을 앓게 됐지만 이 시기 많은 시와 소설을 읽으며 침묵 속에서 자신의 언어를 찾아간다. 16세에 미혼모가 된 그는 식당 종업원부터 자동차 정비, 스트립댄서까지 온갖 일을 다했다, 그러나 그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배우와 가수, 기자와 작가로 꾸준히 활동했다. 특히 1969년 발표한 자전적 소설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I Know Why the Caged Bird Sings)로 첫 흑인 여성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최 시인은 소설 속 한 문장을 “미투 국면에서 제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There is no greater agony than bearing an untold story inside you.”(마음 속에 말할 수 없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은 없다.)

*최영미 시인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나와 홍익대 미술사학과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2년 『창작과 비평』에 「속초에서」 외 시 8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4년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이후 『꿈의 페달을 밟고』, 『돼지들에게』, 『도착하지 않은 삶』 등을 펴냈다. 시집 『돼지들에게』로 20016년 이수문학상을 수상했다. 특히 최근에는 '괴물'이라는 시를 발표해 한국 문단 내 남성 권력 문제를 드러내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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