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떠난 세 여자, 에코 페미니스트를 만나다] 세 여자를 맞아준 인도 여신들
[길 떠난 세 여자, 에코 페미니스트를 만나다] 세 여자를 맞아준 인도 여신들
  • 최형미 여성학자
  • 승인 2019.03.16 12:38
  • 수정 2019-03-19 1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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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떠난 세 여자, 에코 페미니스트를 만나다] ②
인도 여신 칼리,
하시루 달라 활동가 인하
에코페미니스트, 날리니 쉐카르

"Good girls go to heaven, bad girls go everywhere."(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지 간다.) 여자들에게 여행은 독립을 선언하는 행위이며, 경계를 넘는 반란이다. 다큐 감독 유혜민, 환경운동가 고금숙 그리고 여성학연구자 최형미는 (재)숲과 나눔 지원을 받아 인도, 케냐 그리고 태국으로 함께 여행을 떠났다. 긴 여행에서 길러진 통찰과 의지의 근육은 우리를 더 먼 곳으로 이끌 것이다. 우리가 함께 만났던 여성운동가, 환경운동가들의 이야기는 순간순간의 힘이 되었다. 나이도 살아온 환경도 다른 세 여자가 여행에서 만난 에코 페미니즘과 지역 여성운동가들의 이야기를 격주로 전한다.

칼리여신 앞에서 누워서 그림과 몸으로 소통하는 미류. ©최형미
칼리여신 앞에서 누워서 그림과 몸으로 소통하는 미류. ©최형미

 

칼리 여신을 만나며

춤꾼이며 소마틱 연구가 그리고 영문학자인 미류가 가볍고 경쾌한 말투로 “멈춤도 춤이다. 역동적 움직임은 멈춤 이후에 온다”라고 말 했을 때, 습관적 성실함으로 앞으로만 달려온 나를 발견했다. 나의 삶은 속도계가 고장 난 것이 아닐까. 라르고와 쉼표를 잃은 삶은 미학적이지 않다. 인간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은 삶 속에 기쁨을 누리는 것이 아닌가? 여행을 떠난 이유다. 여행 전 미류에게 연락이 왔었다. ‘인도로 떠나기 전 당신을 만나고 싶다’.

우리가 함께 간 곳은 금빛나 무용수의 ‘인도 여신 춤’ 공연장이었다. 미류는 전시되어 있는 칼리 여신 그림 앞에서 몸을 움직여 그림과 대화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움츠려 속삭였고, 편안하게 누워 나를 바라봤다. ‘먼저 몸을 움직여 풀어요. 그림의 소리를 듣고 몸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 가세요’ 미류는 세 여자의 여행 예식을 춤으로 열어주었다. 칼리는 해골 목걸이를 하고, 수염이 난 죽은 남자들의 머리를 허리춤에 찬 여신이다. 열 개의 팔에는 삼지창, 방패, 활과 화살을 들고 있으며 심지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잔을 들고 있다. 눈을 희번덕거리며 혀를 쑥 내민 모습은 괴기하다. 그의 모습은 여성을 ‘순종’과 ‘유혹’ ‘수줍음’ ‘우아함’으로 묘사하려는 가부장적 기대를 단방에 깨뜨려 버린다.

무용가 금빛나씨가 칼리 여신으로 등장하는 공연 ‘나는 살아있다’ 포스터 이미지.
무용가 금빛나씨가 칼리 여신으로 등장하는 공연 ‘나는 살아있다’ 포스터 이미지.

필자는 누군가를 죽여 버리는 칼리 여신이 언제나 불편했다. 원색의 칼리의 모습은 낯설고 야만적으로 보였다. 인도무용가 금빛나는 빠르게 돌아가는 눈동자로, 아치를 그리는 손으로, 숨가쁜 뒷걸음질과 당당한 행진으로 칼리를 해석했다. 잔인한 여신으로만 알았던 칼리는 자식을 품에 안고 기뻐하는 여성이며, 공동체를 지키려 애쓰는 어머니며, 용기를 내어 무서운 싸움을 펼쳐 우주를 구하는 여신이었다. 칼리는 이 세상의 전쟁, 악, 폭력을 뿌리 채 뽑아버리기 위해서 들쩍지근한 악인의 피까지 들이켰다. ‘이 세상에서 죽어야 할 것은 죽어야 해요, 사라져야 할 것은 사라져야 해요. 여행길에 많은 여신들을 만나길 바래요’라고 축복하며 미류는 나를 안아주었다.

인도를 여행하면서 세 여자는 오래된 사원도 여신의 성지도 심지어 박물관 조차 방문하지 못했다. 쓰레기 분리 작업장, 퇴비 만드는 곳, 그리고 북적 거리는 시장거리를 돌아다녔을 뿐이다. 인도 남부의 카르나타카주의 수도 벵갈루루를 향해 떠난 이유는 그곳 주정부가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했다는 기사를 봤기 때문이다. 여신은 어디 있을까?

재활용품 수거장 상황을 설명하는 인하와 금숙 그리고 이를 촬영하는 필름 고모리 유혜민 감독. ©최형미
재활용품 수거장 상황을 설명하는 인하와 금숙 그리고 이를 촬영하는 필름 고모리 유혜민 감독. ©최형미

하시루 달라 활동가 인하

미류가 그러했듯이, 환경운동단체이며 쓰레기 피커 지원단체인 하시루 달라(Green force, 녹색단체 라는 뜻)의 활동가 인하(Indha)는 ‘플라스틱 운동을 하는 한국 페미니스트’들이 왔다는 소식에 우리에게 달려와 맞아주었다. 그와 함께 나온 자원봉사자의 커다란 밴 뒤에는 수건처럼 펼쳐지는 면 생리대, 크기 조절이 가능한 성인용 면 기저귀 그리고 플라스틱 교육 시트 등이 가득 실려 있었다. 만나자 마자 우리는 오랜 친구라도 되는 듯, 궁금한 것 들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주차장은 생생한 교육장이며 토론장이 되었다. 인하는 이런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 많다며 서둘러 빌라 식 공동주택으로 이뤄진 작은 마을로 데려갔다. 그곳은 분리수거를 하고, 퇴비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창가 화분에서 화초들이 아래로 늘어져 있고, 벽으로 넝쿨이 타고 오르고, 흙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꽃과 나무가 심겨져 있었다. 마을 전체가 그야말로 초록으로 가꾸어진 곳이었다. 부자든 가난하든 정원을 가꾸는 모든 사람들은 땅의 여신, 가이아를 돌보는 사람들이라 했던가?

주정부는 동네에 분리수거를 꼼꼼하게 관리하는 사람을 보냈고, 그의 지도 아래서 마을 사람들은 재생 가능한 쓰레기, 퇴비용 쓰레기 그리고 버려지는 쓰레기를 엄격하게 구분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마을 입구에 놓인 퇴비장이었다. 필자는 음식물 썩는 냄새를 맡는 것이 겁이 났지만 막상 퇴비장 안을 살펴보니 지독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 냄새를 잡기위한 만들어낸 특별한 퇴비 파우더를 섞었다고 했다. 인도는 적정기술의 천국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마을 공원의 한쪽에는 나뭇잎 퇴비장이 있었는데, 마을의 낙엽, 자연 쓰레기가 모두 이곳으로 모여져 완전 순환을 실현하고 있었다.

인하는 우리를 벵갈루루시에서 운영하는 재활용 테마파크로 안내했다. 음식물 쓰레기를 활용해 퇴비와 전기도 만들고 물을 데우는 등 온갖 종류의 환경 아이디어가 넓은 파크 곳곳에서 실행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재활용은 가난의 상징이 아니며, 힙하고 아름다우며, 가장 첨단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라는 그들의 메시지와 의지가 느껴졌다. 감탄을 하는 나에게 인하는 말했다. ‘우리 보스를 만난다면 당신은 정말 반할 거예요’ 이 세상에 능력 있는 보스는 있어도, 능력 있으면서 사랑받는 보스는 흔치않다. 인하의 보스는 어떤 분일까?

하시루 달라 대표인 날리니 쉐카르씨와 사무실에서 키우는 강아지. ©최형미
하시루 달라 대표인 날리니 쉐카르씨와 사무실에서 키우는 강아지. ©최형미

에코페미니스트, 날리니 쉐카르

우리나라의 거리노점상이나 폐지 할머니들은 고용주가 없기에 노동자로서 권리를 갖지 못한다. 그러나 인도여성운동은 1980년대부터 노점상 노동조합(SEWA)을 만들었고, 하시루 달라 대표 날리니 쉐카르(Nalini Shekar)는 쓰레기 피커들의 노동조합을 만들어 그들의 권리 찾기에 나서고 있다. 그는 쓰레기 피커들이 환경운동에 엄청난 기여를 한다는 것을 알렸고 중산층 환경운동가들이 쓰레기 피커의 노동문제에 관심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시루 달라 본부는 벵갈루루 시내의 명문 제인대학(Jane university)안에 위치해 있었다. 대리석으로 된 층계를 오르니 4층에 날리니 대표가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맞아주었다.

“이곳은 경영대학원이 사용하던 건물이에요. 대학 당국이 우리에게 무료로 대여해주었지요. 이곳으로 쓰레기를 줍는 가난한 사람들과 부유한 사람들이 함께 오고가지요.”

‘대학의 역할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순간 스쳐갔다. 그때 한쪽에서 개 한 마리가 날리니에게 다가왔다. 사람만이 아니라 거리를 헤맸던 개도 이곳의 주인이었다.

재활용 테마 파크에서 퇴비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여성 지도자들. ©최형미
재활용 테마 파크에서 퇴비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여성 지도자들. ©최형미

쓰레기 줍는 사람들은 거지가 아니다. 환경운동가다

사람들은 환경운동을 중산층 운동이라 여긴다. 날리니는 이십대에 거리를 배회하는 아이들을 찾아 나선일로 사회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아시아 이주민 여성쉼터를 운영하며, 사람들을 돌봐왔다. 시민운동을 하며 만난 아이들이 그를 기쁘게 했기에, 굳이 자신의 아이를 낳을 필요가 없었다고 말한다. 2010년에 뱅갈루루로 돌아와 다시 주로 불가촉 천민으로 이뤄진 ‘쓰레기 피커’들과 함께 운동을 펼쳐나갔다. 거리로 나가 그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가까이 머물렀다. 그들과 함께 쓰레기 피커들의 연대를 조직했다.

“사람들은 그들을 거지나 도둑취급을 했어요. 그들을 시민으로 여기지도 않았지요. 그들이 도시를 치우지 않으면 도시가 얼마나 엉망이 될지 생각하지 않았어요. 쓰레기 피커들은 조용한 환경운동가들이지요.”

단체가 쓰레기 피커들을 시민들과 통합시키기 위해 가장먼저 한 것은 ’직업증명서‘를 만드는 일이었다. 고용주가 없는 이들에게 직업증명서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하시루 달라 단체는 쓰레기 피커들이 뱅갈루루시에 얼마나 경제적 이익을 주는가를 조사해 알렸다. “뱅갈루루의 1만5000명의 쓰레기 피커들은 하루에 1050톤의 쓰레기를 분리수거해서 8억4000만 루피(약 139억6000만)를 벌어준다. 시는 이들에게 경제적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결국 벵갈루루시는 쓰레기 피커들에게 직업증명서를 발급해 주었다.

직업증명서를 보여주는 쓰레기 피커 여성 ©최형미
직업증명서를 보여주는 쓰레기 피커 여성 ©최형미

 

거리의 남자와 여자들, 심지어 개들까지 그들을 물어뜯었지만 직업증명서를 발급받은 이후 쓰레기 피커들은 더 이상 거지나 도둑 취급을 당하지 않는다. 주정부는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단체는 화이트칼라에도 블루칼라에도 속하지 못했던 그들을 그린칼라라고 불렀다. 단체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사회적으로 그들을 통합하기 위해, 대학에 세바카페(SEVA)라는 식당을 열었다. 대부분 불가촉 천민으로 이뤄진 그들은 오랫동안 스스로를 더럽고, 천하다고 여겼으며 자신들이 만든 음식을 사람들이 거부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우리가 그곳을 방문했을 때, 식당은 학생들과 손님들이 넘쳐났다. 이것은 그들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직업증명서를 갖고 사회에 기여하는 이들은 도시 아파트 퇴비장을 관리하는 일을 하거나 재활용 쓰레기 수거장을 운영하며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기도 한다. 날리니는 쓰레기 피커들을 이제는 사업가 혹은 환경운동가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단체에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해야 그들과 가까워 질수 있나요?”라고 문의를 하기도 한다. “그들이 당신들의 문 앞에 왔을 때 집으로 초대하세요. 그리고 함께 먹고 차를 나누세요. 그것이 방법이에요.” 이제 적지 않은 중산층 여성들이 단체의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거리의 쓰레기 피커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날리니는 사회에 영향력을 가진 중산층은 쓰레기 피커들을 위해 법을 바꿀 수 있다고 이야기 했다. 그러나 사업을 진행하고 참여하며 서로를 돕는 것은 바로 쓰레기 피커 당사자들이라고 강조했다. 날리니는 중산층과 불가촉천민들의 연대를 이끌어내고 있었고, 환경운동과 노동운동은 연결되고 있었다.

가부장제 속의 남성들은 규율을 만들고 전쟁을 하는 백인노인남성을 신으로 상상했다. 여신은 사원에 갇혀 공물을 기다리는 신이 아니었다. 들풀처럼 자유롭게 거리로 나와, 아이들과 쓰레기 피커들의 곁에 머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먹고 마시는 여성들이다. 그들에게 명령하는 신이 아니라 그들의 어려움에 공감하며 함께 울고 싸우는 여성들이었다. 이렇게 세 여자는 경계를 부수며 낮은 곳에 머무는 여신들의 환대를 받으며 그들의 성지를 순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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