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금봉’. 그 이름은 무엇을 연상시키고 어떻게 기억될까? 사람마다, 연령과 세대에 따라서 그 내용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때로는 아스라한 기억 저편에서 그녀를 불러낼 수도 있고 때로는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 있던 공포와 혐오감을 수반한 채로 그녀가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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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무대와 악극단 등에서 활동하다가 1957년에 조긍하 감독의 <황진이>로 영화에 데뷔한 이래 약 500여 편의 출연작을 갖고 있는 그녀는 ‘세기의 요우(妖優)’, ‘모던 글래머’, ‘동(動)과 관능의 페르조나’와 같은 수식어가 증명하듯이, 독특하면서도 강렬한 악녀의 이미지로 스크린을 누볐던 배우이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다른 여배우들과 비교해 볼 때, 그녀가 갖는 위치는 모호하고 양가적인 측면이 강하다.

그녀의 이미지는 한편으로는 ‘서민물의 올드퀸’으로 불리던 황정순이나 ‘가장 한국적 여인상’으로 평가받던 최은희와는 거의 반대되는 위치에 놓여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보다 조금 늦게 데뷔한 좀 더 모던하고 서구화된 ‘아름다운 악녀’ 또는 ‘글래머 스타’였던 김혜정이나 최지희의 이미지와도 차별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처럼 양가적인 면모와 모호한 위치성은 출연작의 목록을 통해서도 읽혀지는데, 그녀는 성과 권력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힌 ‘진성여왕’이나 ‘천하일색 양귀비’이기도 했지만, 민족이나 가족에 대해서 자기 희생적이고 영웅적인 면모를 지닌 ‘유관순’이나 ‘또순이’일 수도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녀는 하녀나 후처와 같은 주변적인 인물들에서부터 흡혈귀나 간부(奸婦)와 같은 비천하고 사악한 성격까지 개성 있게 소화해냈다.

이처럼 도금봉은 대체로 당시의 하층계급 여성들이 선망하거나 동일시할 수 있는 캐릭터들을 통해서 금기시되던 욕망을 노골적으로 추구하기도 하고 보기 드문 자율성과 힘을 강력하게 표출해냄으로써 남성 관객들에는 위협적인 반면에 여성 관객들에게는 해방감과 대리만족의 쾌감을 가져다주는 여배우였다. 그런 만큼 그녀의 스타 이미지는 경탄과 혐오, 비판과 찬사 사이를 극적으로 오가는 것이자, 고유한 전복성을 일관되게 갖는 것이었다.

따라서 <또순이>(1963)와 <백골령의 마검>(1969)을 포함하여 그녀의 대표작 네 편을 선보이게 될 ‘도금봉 회고전’은 작가 영화와 B급 영화를 아우르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통해서, 한국 영화 속에 재현되어온 여성 이미지에 또 하나의 ‘계보’를 추가하게 될 것이다.

주유신/ 서울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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