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 714호에 실린 본인의 ‘여성사 전시관 유감’이라는 글에 관심을 표해 주신 두 분 선생님(오혜주, 이미원)의 글에 감사한다. 이 글이 끼친 영향은 기대 이상으로 커서 중앙지인 한겨레신문에는 여성사 전시관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3월 17일자, 28면). 여성사 전시관에 대한 관심을 끌고자 본인의 기고를 실어주었던 여성신문사의 편집 의도가 주효했다. 아쉬운 것은 한 나라의 중앙지가 여성신문에 실린 기사를 재편집해 기사를 재수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본 기획의 의도인 ‘다양한 논의’의 장을 닫아버리고 졸고에 답한 두 선생님의 글도 여성사 전시관의 변명 기사로 변해버렸다.

그 기사에는 논의의 장을 마련한 여성신문사에 대한 이야기는 언급되지 않았다. 페어플레이의 원칙에 어긋난다. 여성주의란 본시 탈권위, 페어 플레이 원칙의 기반이 없으면 사상누각인 것이다. 이러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면을 통해서 같은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게 돼 기쁘다. 우선 경북대 인문과학 연구소 이미원 선생님이 제안한 “여성사 연구의 네트워크를 담당하는 센터로” 전시관을 자리매김하는 것은 좋은 대안이다.

그러나 아직도 미비한 몇 가지 문제가 있어 이를 간략하게 언급해 보고자 한다.

여성사 전시관, 현재 여성과 대화 통로

여성사 전시관이 지닌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사료 부족 이외에 ‘여성사를 기술하는 사적 관점’의 부재이다. ‘사적 관점’은 여성사 전시관의 전시물을 결정하고 배열하는 밑그림이 되는 것이므로 중요하다. 여성사는 무엇인가. 여성의 삶에 중요한 변화를 준 객관적 사건의 나열이 여성사인가? 혹은 여성사에 족적을 남긴 인물사인가? 여성들의 일상사를 말하는가? 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여성사의 의미를 뚜렷이 할 것이다. 이런 질문도 할 수 있다.

여성사는 인류사와는 무엇이 다른가. 여성사가 인류사에 소속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분리해서 생각해 봐야 할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 내 생각에 여성사는 그것의 기술을 통해 역사에서 타자화 됐던 여성 삶의 족적을 돌아보고 그 자취를 통해 여성의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할 수 있도록 하는 정신적 작업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현재를 사는 여성과 대화할 수 있어야 하고 여성의 삶에 자부심이 돼야 한다.

그러나 여성사 전시관은 이러한 고민이 좀 적지 않았나 싶다. 전 5부로 나누어진 주제를 통해 여성사의 구성 방향을 알 수는 있다. 그러나 주제에 걸맞게 전시물이 선별되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여성사 전시관이 자랑하는 대표적 소장물이 박하분이다. 우리 현대무용사의 주인공, 최승희도 화장품 광고 모델로 등장한 내용이 전시돼 있다. 그렇다면 여성사에서 화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렇게 큰 것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자료 선별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관람자는 전시물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지만 그것이 여성에게 차지하는 의미를 알기는 어렵다.

지엽적인 문제이기는 하지만 한겨레신문에서 이를 기사화하고 있기에 다시 한번 스쿨 걸 아바타의 문제도 집고 넘어가야겠다. 일제가 여성들을 전시체제에 동원하기 위해 억지로 입힌 옷인 몸뻬는 그래서 역사적으로 예민할 수밖에 없다. 문헌에서 숙명여고는 몸뻬 입기에 최후까지 저항했던 학교라는 것이 증명됐고 아바타에 나온 몸뻬는 숙명여고의 교복도 아니다. (나와 함께 본 연구에 동참하고 있는 김은정 박사가 정확한 자료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이를 숙명여고의 유일한 교복이라 해놓고 이를 옹호하는 태도는 시정돼야 한다. 자료의 근접성이 이러한 오류를 낳는 근본이유라면 연구주체의 다양화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연구 주체의 다양화는 컨텐츠의 객관화와 다양화, 체계적이고 광범위한 자료 수집의 차원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러한 문제가 있다고 해서 전시관의 성과에 대해 무조건 폄하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여성사에 이토록 관심을 기울인 여성부와 기획자들에게 힘을 더 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여성사 연구에 있어 빠른 성과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준비기간에도 투자할 수 있는 여유가 지금 필요할 때이다. 여유의 시간을 가져야만 여성사에 대한 깊은 이해가 생길 수 있다.

본인은 오랜 기간 준비해 제대로 된 여성사 박물관에 가보는 것이 꿈이다. 여성들이 인류사에 기여한 업적을 보고 싶다. 노동의 역사를 알고 싶다. 당대를 살아오며 남긴 문화적 자취의 실체를 보고 싶다. 나혜석의 사진이 아니라 그녀의 그림이 보고 싶고, 그녀 이외에 존재했던 많은 여성화가들의 그림을 보고 싶다. 그곳에서 내 딸이 여성으로 산다는 일이 그리 녹녹치 않았음을, 그리하여 실로 당당한 삶을 살 수 있는 힘찬 에너지를 얻었으면 한다.

변신원/ 문학박사, 아시아여성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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