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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향미>

어느 토요일 아침, 지하철 안에서 내가 다니던 직장에서 은퇴하신 분을 만난 적이 있다. 그분은 내가 살던 아파트의 바로 옆 단지에 사셨기 때문에 전에도 가끔 동네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멋있는 점퍼 차림에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날도 역시 세련된 옷차림에 베레모까지 쓰고 외출하는 중이었다.

마침 한가한 지하철 안이어서, 나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그분께 여쭤보았다. “김 선생님은 살아오시면서 어느 때가 가장 좋았던 것 같으세요? 30대, 40대, 아니면 50대나 60대 중에서요.”

나는 속으로 ‘30대나 40대라고 대답하시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날아왔다.

“지금이 제일 행복한 걸.”

그리고는 놀랍다는 눈으로 쳐다보는 나에게 익살스럽게 한마디를 더 덧붙이셨다. “이렇게 좋을 줄 알았으면, 더 빨리 은퇴하고 노인이 되는 건데…”

그분의 행복한 표정은 그것이 진정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당시 나는 한창 늙는다는 것을 고통스럽게 받아들여야 했던 40대 초반이었다. 쉰 살이 다 된 지금 생각해 보면 반짝이는 젊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거울을 볼 때마다 ‘어느 새 마흔이라니. 어렸을 때 마흔이 넘은 사람은 무슨 재미로 살까? 하고 한심하게 생각했었는데’ 하며 한숨지었다. 정상에 있으려고 필사적으로 버티지만 벌써 언덕을 넘어 내리막길에 들어선 기분이랄까? 그런데 은퇴한 60대의 노인이 행복할 수 있다니.

나는 새삼 깨달았다. 노인이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현대사회에 만연된 또 하나의 신화라는 점을.

우리는 노인을 그저 쇠락해 가는 인간일 뿐이라고 믿기 쉽다. 각종 질병과 기능의 저하로 괴로워하면서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 정도로 말이다. 특히 사회가 발달할수록 노인의 위치는 더욱 더 열악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현대사회에서 노인이란 수입이 줄고, 소외감과 고립감이 커지고 의존성이 높아지며, 사기가 저하된 사람으로 인식된다. 특히 직업 역할에 모든 것을 걸어온 사람일수록 정년퇴직 후에 역할의 단절과 사회적 손실을 더욱 절실하게 경험한다고 믿는다. 커길과 홈즈(Cowgill & Holmes)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현대화의 정도와 노인의 지위는 반비례한다는 현대화 이론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위의 설명은 현대사회의 노인들이 처한 상황을 일반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 번 뿐인 나의 삶을 그러한 일반화에 내맡길 필요가 있을까. 중요한 것은 늙는다는 사실이 아니라 늙는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일지 모른다. 김 선생님처럼 행복한 노인을 우리는 도처에서 만날 수 있다.

어찌 노인뿐일까. IMF 이후에 정해진 퇴직연령을 미처 채우지 못하고 퇴직할 수밖에 없었던, 50대 후반의 조기퇴직자들에 관한 연구를 할 때에도 나는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물론 대부분의 조기퇴직자들이 처한 힘든 상황을 과소평가할 생각은 없다. 조기퇴직자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개인적으로도 아무 준비가 없었던 퇴직자들이 겪는 경제적, 심리적 고통, 그리고 가족 내에서의 어려움은 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이들은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늙었고, 포기하기에는 너무 젊은 어중간한 상태에서 많이 절망하고 있었다. 이들을 위한 사회적, 제도적 장치는 매우 시급해 보였다.

하지만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김 선생님과 같은 사람들은 이들 중에도 있었다. 아니, 있는 정도가 아니라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명예퇴직한 57살의 임 선생님은 자유로움이 주는 행복감을 실감나게 설명하였다.

“매일 아침 여섯 시에 맞춰놓았던 알람시계를 치워버렸을 때의 그 기분이란… 한 마디로 날아갈 것 같은 자유로움이지요. 아침마다 바지를 입을까, 치마를 입을까 고민하지 않는 것도 행복하구요.”

물론 내가 만난 여성 퇴직자의 수가 적기도 했지만, 임 선생님을 비롯하여 여성들은 한 명의 예외도 없이 퇴직 후의 생활에 잘 적응하고 매우 만족해했다. 직업적인 역할에 대한 미련도 없이 각자 개성대로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여자처럼 퇴직하라’는 구호라도 외치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남성 퇴직자들의 행복론 또한 만만치 않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람은 59세의 이진규(가명)님이었다.

“직업에 대한 미련은 사실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퇴직 초기에는 많이 힘들었지요. 사회를 원망하기도 했구요. 하지만 정확히 원망해야 할 대상도 분명치 않은 채 마냥 원망만 하고 있기에는 내게 남은 삶이 너무도 소중하다는 느낌 때문에 다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는 새로 생기는 복지기관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고 나서 성동구에 새로 생긴 노인복지관 하나를 선택하였다. 그리고는 매일 출근(?)하여 노인복지관의 행정적인 업무를 도맡았다. 물론 자원봉사자로서. 요즘엔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다고 판단되어 1주일에 세 번만 일하며, 나머지 날은 인터넷 검색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며 바쁘게 지낸다고 했다. 그는 행복한 표정을 구태여 숨기려 하지 않았다.

김 선생님이나 임 선생님, 그리고 이진규님 같은 사람들의 행복한 삶을 과대포장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들이 현대사회의 보통 노인들, 그리고 보통의 조기퇴직자들과 다르다고 해서 이들의 행복이 잘못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획일화된 평균적인 삶에 익숙해 있는 우리이지만, 다른 사람이 불행하다고 해서 나까지 불행해지란 법은 없다. 평균인이 되기 위해 나의 행복까지 포기할 수야 없지 않은가.

따라서 우리 모두는 행복한 노인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즐겁게 늙어갈 수 있다. 퇴직 후에도, 노인이 되어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 즉 패러다임을 바꿀 수만 한다면. 행복에 정년(停年)은 물론 정년(定年)도 없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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