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
전주의 비혼여성공동체로 16년

함께 살지 않아도 지지 통해 결속

“부족한 부분 나누고 채우니
느슨하지만 정신적 안정감 커”

전주 비혼여성공동체 비비
전주 비혼여성공동체 ‘비비’ 회원들이 모임을 갖고 있다.

1인가구는 561만 가구, 전체 가구의 28.6%를 차지한다. 정책과 제도는 근대화 시대가 설정한 ‘정상가족’의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1인 가구 당사자들 사이에는 기존의 가족이 담당해오던 핵심기능인 돌봄과 친밀성을 공동체 속에서 확보하려는 시도가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전북 전주시의 비혼여성공동체인 ‘비비’는 13년 째 어엿한 공동체의 삶을 살고 있다. 비비는 책 ‘단독비행’에서 착안해 지은 ‘비혼들의 비행’의 줄임말이다. 결혼제도에서 벗어난 여성들의 수기를 바탕으로 가족치료사가 쓴 이 책을 포함해 페미니즘·공동체·대안 경제 등에 관한 책을 두루 읽으며 새로운 삶을 고민했던 30대 여성 6명은 어느덧 40대 중반, 50대 초반의 삶을 살고 있다.

비비는 한 집에 모여 함께 사는 공동체가 아니다. 어쩌면 혼자 사는 이들의 공동체를 하나의 주거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는 형태라고 생각하는 건 편견이다. 한지붕 아래 사는 ‘가족’에 대한 관습적 사고이거나, 주거공간이 비싸 공동생활을 택하는 서울 위주의 사고방식일 수 있다. 이들 공동체의 목적은 ‘돌봄과 공부’다. 이들은 비혼이라는 타이틀이 독신을 선언하는 커밍아웃의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하고, 하나의 삶이 아닌 운동성의 지향으로 획일되는 경향에 인터뷰에 응하는 것이 조심스럽다고 했다.

- 공동체는 어떻게 시작됐나.

“2003년 당시 비혼여성들의 모임 형태로 시작했다. 지역의 여성단체 내 소모임이었고 꾸준히 만나면서 스스로를 공동체로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2006년도에 본격적으로 탐색을 시작했고 우리의 성격을 생활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음을 확인한 뒤 이름을 만들고 공동체로 함께 하고 있다.”

이들은 각자의 집에서 각자 생활한다. 모두가 한 아파트의 이웃이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를 볼 수 있고 협력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매우 유연한 삶의 형태”라고 했다.

-함께 살지 않는데 어떤 점에서 공동체인가?

“공동체라는 게 어떤 건가 스스로도 궁금했다. 2006년도에 다양한 책을 찾아 읽었는데 어떤 상이 돼야 하나 생각했다. 같은 주거공간에서 개인의 자율적인 권한과 개성 등이 함몰되기도 한다. 우리는 연대·지지 네트워크라 할 수 있다. 함께 살지 않지만 어떤 점에서 목적 공동체 페미니즘과 공동체성 모두를 동의하는 이들이 공동체를 형성했다.”

M. 스캇 펙의 책 『평화만들기』를 읽고 ‘비비’가 정리한 공동체의 의미와 방향은 이렇다.

‘진정한 공동체로 서로 정직하게 의사소통하는 법을 배운 개인들, 태연자약한 가면의 이면을 뚫고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개인들, 그리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기’와 ‘서로 반기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기’로 약속한 개인이 모인 집단‘

전주 비혼여성공동체 비비
전주 비혼여성공동체 ‘비비’ 구성원들

-운영 규칙은 있나.

“많지는 않다. 월회비 5만원, 월 1~2회 정기모임 참석, 같이 책읽고 공부하기 정도이다. 개인도 소중하고 개인과 개인이 연결된 공동체도 중요하다. 어느 하나가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서로 메워주고 채워주고 나눠주면서 공동체와 개인이 함께 성장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결속시키는 힘은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인 의식주나 조직의 강제화된 규칙보다는 구성원들 간의 지지와 공감이 주는 정신적 안정감인 듯 했다. 일종의 정서적인 공동체로 보였다. 이들이 인용한 미국 여배우 길다 래드너의 “결혼을 했든지 안했든지 남자 친구가 있든지 없든지 간에 당신 자신이 내적으로 쌓아 올리는 것 외에는 진정한 안정감이란 없다”라는 말은 이들 개인과 공동체의 뿌리 중 하나다.

-10년 넘게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오랜 기간 싸우지 않고 지내는 비결이 뭔지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다. 지속의 힘은 친밀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조직을 운영하는 방법이 없진 않다. 최대한 만장일치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한명이라도 조금이라도 꺼리면 아무리 좋을 것 같은 취지라도 소용없다. 그렇다보니 ‘느리게 가자’는 게 하나의 운영방식이다.”

-구성원들은 모든 상황에서 생각이나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다“모두 똑같이 n분의 1로 해야 한다는 건 없다. 자기가 더 잘하는 분야를 더 아낌없이 하기도 하고, 내키지 않으면 안 해도 이해해주는 미덕이 있다. 가령 MT에 가면 같이 식사만 준비하는 게 아니다. 설거지, 방청소 등등 각자 잘하는 거 한다. 꼭 쉬고 싶은 사람은 쉬어도 된다. 왜 쟤는 안 해, 누워있어? 라고 하면 불만 갈등이 터져 나오기 마련인데 저희는 그걸 봐줄 수 있던 여유가 있는 것 같다.”

-인원 확대 논의는 없었나?

“함께 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우리는 이대로 좋은데 타인에게 들어오라는 게 우리가 원하는 바일까 고민을 많이 한 끝에 멤버를 늘리지 않기로 했다. 아무리 취지가 좋고 확산을 해야 한다고 해도 사람 모으고 하면 그 사람들을 사귀고 나누는 사이에 내 이야기를 터놓을 수도, 꺼낼 수없는 장벽이 생기면 또 다른 소외감 아닐까 한다.”

이들 공동체의 분명한 원칙은 ‘최대한 안전하게 자신의 얘기를 터놓을 수 있고 지지받을 수 있는 공간이라는 믿음이 토대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멤버를 더 이상 늘리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만족도와 행복감이 가장 높은 적정한 인원수여서 공동체가 유지된다고 판단했다.

-비비의 미래를 내다본다면?

“어느덧 다들 40대 후반 50대 초반이 됐다. 비혼이라는 이슈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노인의 정체성이 더 중요해졌다. 여성노인공동체로서 좋은 모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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