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만남] 김은희 "성폭력 피해자를 방관하지 않겠습니다"
[여성신문-만남] 김은희 "성폭력 피해자를 방관하지 않겠습니다"
  • 이하나 기자
  • 승인 2019.03.14 08:25
  • 수정 2019-03-13 2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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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체육계 미투 외친 김은희씨
10세 때 테니스 코치가 성폭행
16년 뒤 성인 돼 소송 시작
대법서 가해자 10년형 확정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피해 배상 민사 소송 시작
피해접수조차 어려운 체육계
폐쇄 구조 바뀌어야
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5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성평등 디딤돌 미투 특별상을 수상한 김은희 테니스 코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5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성평등 디딤돌 미투 특별상을 수상한 김은희 테니스 코치는 체육계 미투에 대해 “신고 접수조차 어려운 체육계의 폐쇄적인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은희(29)씨는 미소가 예쁜 사람이다. 보는 사람까지 기분좋게 하는 반달눈웃음을 가졌다. 그가 이렇게 마음놓고 환하게 미소짓기까지 꼭 1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2016년 김은희씨는 자신의 성폭력 피해를 세상에 알렸다. 사람들은 김은희씨를 가리켜 성폭력 피해 생존자라 불렀다. 열살 때부터 1년 간 겪어야 했던 ‘그 일’을 16년이 지난 뒤에야 꺼내놓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해자를 강간치상 혐의로 법정에 세웠고, 결국 승리했다. 지난해 7월 26일 대법원이 항고를 기각하면서 2심에서 가해자에게 선고된 징역 10년형이 확정됐다. 그러나 김은희씨는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가 시작한 또 다른 싸움은 모두를 위한 투쟁에 가까웠다.

나를 살린 건 방관하지 않은 사람

지난 3월 8일 저녁 세계 여성의 날 행사로 북적이던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김은희씨를 만났다. 이날 그는 한국여성단체연합으로부터 ‘성평등 디딤돌-미투 특별상’을 받았다. 체육계 내 성폭력 문제를 세상에 드러내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그에게 감사의 의미를 담은 상이다.

지난해 사회 전반에서 #미투(Metoo)가 쏟아졌으나 유독 체육계는 조용했다.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체육계 구조 탓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테니스 선수로 활약했고 지금도 아이들에게 테니스를 가르치는 김은희씨도 가해자 고발까지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2001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1년을 꼬박 성폭력 피해를 입었던 그는 폭력을 휘두르는 가해 코치가 두려워서, 자신이 겪는 일이 무슨 일인지 조차 몰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말하면 보복하겠다”는 가해 코치의 말에 어린 소녀는 아파도, 무서워도 참아야만 했다. 테니스장에 있는 합숙장 락커룸, 지도자 관사, 전지훈련장에서도 피해는 이어졌다. 김은희씨는 “비 오는 날이 너무 싫었다”고 했다. 훈련이 없어 하루종일 코치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일’이 끝이 난 건 2002년 한 학부모의 신고 덕분이었다. 가해 코치가 아이들을 성추행한다는 민원에 교육청이 조사에 나섰다. 그는 “코치가 성추행을 했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고, 그 뒤에는 더이상 가해자를 마주하지 않아도 됐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지나칠 수 있었는데 신고를 해준 그 학부모가 제 삶을 살려 준 은인이에요.”

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5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성평등 디딤돌 미투 특별상을 수상한 김은희 테니스 코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5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성평등 디딤돌 미투 특별상을 수상한 김은희 테니스 코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가해자는 아무 일 없이 살고 있었다

10년이 흐른 2012년 어느 새벽녘. 대학교 3학년이던 그는 ‘조두순 사건’을 접하고 처음 용기를 냈다.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가 성인이 될 때까지 공소시효를 중지하는 법이 새로 시행된다는 소식에 김씨는 곧바로 ‘여성긴급전화 1366’에 전화를 걸었다. 가해자를 법정에 세울 수 있을거란 기대는 곧 무너졌다. “너무 오래된 일이고 증거가 부족하다”는 경찰의 말 때문이었다. 매일 밤 그는 꿈 속에서 10살 소녀로 돌아가 똑같은 고통을 마주해야 했다. 그리고 4년이 흘렀다. 2016년 5월 어느 토요일. 한 테니스 코트에서 ‘그’를 맞닥 뜨렸다.

“가해자를 만나면 어떻게 할 지 수백 번 상상했어요. 그때마다 그 자리에서 ‘저 사람이 가해자’라고 외쳐야 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막상 만나니 도망을 치는 건 저 더라고요.”

‘가해자’는 아무 일 없이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는 코치로 살고 있었다. 그때 다시 고소를 해야겠다고 결심이 섰다고 했다. “제가 고소를 하지 않아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온다면 제 책임일 것 같았어요.”

가해자를 강간치상 혐의로 고소하고 법정 투쟁을 시작한 그는 외로운 싸움을 시작해야 했다. 그에게 손을 내민 곳은 광주여성의전화와 국선 변호사 뿐이었다. ‘조두순 사건’부터 ‘도가니 사건’ ‘섬마을 사건’ ‘나주 아동 성폭행’ ‘도봉구 집단 성폭행’을 모니터링해 홀로 재판 전략을 짰고 피해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와 증언도 찾아 헤맸다. 덕분에 재판부는 1심에서 9차례 재판 끝에 가해자에게 10년형을 선고했다. 2심에서 7회 재판 끝에 가해자 측 항소가 기각됐고, 대한테니스협회는 가해자를 영구 제명했다.

피해 생존자 넘어 조력자로

이제 김은희씨는 조력자다. 1심에서 가해자에게 징역 10년형 판결이 나온 직후 블로그를 열었다. 그의 블로그는 비슷한 경험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나침반과도 같다. 성범죄 재판을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상세히 적었다. 이메일 주소도 공개해 피해자에게 상담을 해주기도 한다. 언론에서 나온 답답한 사연에는 피해자를 수소문해 직접 연락도 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재판에서 유리할 수 있는지 보이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오지랖을 부리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올초부터 이어진 체육계 미투에 대해 “신고 접수조차 어려운 체육계의 폐쇄적인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2년 전부터 줄곧 외친 얘기지만,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다. 김은희씨는 “대한체육회 산하 스포츠인권센터,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스포츠비리신고센터에 신고했지만, 그 어느 곳도 피해자의 편에 서지 않았다”고 했다. 성적우선주의, 지도자의 열악한 처우도 구조를 공고히 하는 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지금 또 다른 법적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테니스 코치를 상대로 성폭력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형사소송에서 피해 사실을 인정받고 가해자는 형을 살고 있지만, 결과는 비관적이다. 민법 766조를 보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소멸시효는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이 지나거나 손해가 발생한 날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완성된다. 이 기준에서 김은희씨는 손해배상 소송에선 소가 각하 또는 기각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성폭력 피해자들이 범죄 피해 배상을 위해 당당히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사법정의 실현을 촉구하는 서명이 진행되고 있다.  https://goo.gl/forms/8ThjWZT800Fmiybb2)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하면 분명히 피해를 입었는데도 ‘꽃뱀’으로 보는 분위기가 많아요. 가해자가 죗값을 받고 성범죄로 인해 피해 받고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피해자가 실질적인 배상을 받는 것이 왜 욕 먹을 일인가요? 피해자의 정당한 권리죠.”

김은희씨는 방관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16년 전 절 살려주신 학부모님처럼 불의를 보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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