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간호사들의 독립운동

김효순·박덕혜 등
세브란스병원 간호사 중
노순경 지사는 노백린 장군 딸
유관순 열사와 함께
서대문형무소 ‘8호 감방’ 수감
스코필드 박사가
가혹한 고문 폭로-항의

‘스코필드 박사와 유관순’에 관한 글이 전시되어 있는 서울 현저동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내 유관순 열사가 수감됐던 8호 감방 내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스코필드 박사와 유관순’에 관한 글이 전시되어 있는 서울 현저동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내 유관순 열사가 수감됐던 8호 감방 내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은 신분과 종교, 직업, 남녀노소 구분없이 수많은 국민이 참여해 대한민국 독립의 열망을 세계에 알렸다. 이중에서 간호사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서양의 의학교육을 받으면서 근대화의식에 눈뜬 여성들은 만세시위를 하면서 부상을 입은 이들의 치료를 돕는 것부터 독립만세운동, 군자금모금, 여성단체 활동 등 다방면으로 활약했다. 간호사 중에서 독립운동유공자는 김효순, 박덕혜, 이도신, 이정숙, 박자혜, 김온순 지사 등 24명이 알려져 있다.

노순경 지사(1902~1979)는 독립운동을 한 간호사 중에서도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노 지사의 아버지는 노백린 장군(1875~1926)으로 항일무장투쟁에 앞장서면서 신민회에서 활약했고 미국에서 항일비행사 학교를 설립했다. 대한민국 공군 창건의 주역으로 평가되고 있다.

노 지사는 1919년 12월 2일 서울 종묘 앞에서 만세시위를 하다 일경에게 붙잡혔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1919년 12월 20일자에는 노순경 지사를 포함한 간호사 4명의 이름과 판결문을 보도했다.

“지난 12월 1일 저녁 7시 무렵 대표 앞에서 흰색 옷감에 붉은 글씨로 ‘대한독립만세’를 쓴 깃발과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른 세브란스병원 간호부 4명 노순경(18), 김효순(18), 박덕혜(20)에게 경성지방법원에서는 각 징역 6개월의 판결을 내렸다.”

그중에서도 스코필드 박사가 서대문형무소에 찾아가 노 지사를 면회했던 사실은 여러 기록에 남아있다. 1916년부터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의 교수로 재직 중이던 스코필드 박사는 1919년 제암리학살사건을 최초로 알렸으며, 서대문형무소 8호 여자 감방을 방문해 수감자의 고문 여부를 확인한 후 영자신문 ‘Seoul Press’에 일본의 비인도적 만행의 중지를 호소하는 등 독립운동과 한반도의 실상을 알리는 일에 적극 나섰다.

스코필드 박사와 함께 서울대 수의학과에 근무했던 이장락 전 교수가 쓴 『민족대표 34인 석호필』에 따르면 스코필드 박사는 노 지사와의 면회를 마친 후 규정을 어기고 감방까지 따라갔다. 노 지사는 박사에게 8호방에 있던 유관순 열사를 포함한 독립운동가들을 한명씩 소개했다.

서울 현저동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내 유관순이 수감됐던 8호 감방 내부의 ‘스코필드 박사와 유관순’에 관한 설명문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서울 현저동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내 유관순 열사가 수감됐던 8호 감방 내부에는‘스코필드 박사와 유관순’에 안내문이 있다. 그러나 사진은 스코필드 박사와 노순경 지사가 소개돼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노지사는 석방된 1921년 세브란스병원 의사인 박정식과 결혼식을 올렸고 곧바로 노백린 장군의 요청에 따라 중국 하얼빈으로 건너갔다. 상해임시정부에 독립자금 재정 마련을 지원하고 중국 하얼빈 고려병원에서 독립군과 지역주민을 치료하기 위해서다. 또 중국교포 한민회 회장과 하얼빈감리교회에서 선교활동을 했다.

1924년에 한국으로 돌아왔고, 인천 등지에서 병원을 운영했다. 1950년에는 대한애국부인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다가 북한군에게 끌려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후 농촌지역에서 주민들을 상대로 무료의료사업을 펼쳤다.

독립운동가 노순경
독립운동가 노순경의 서대문형무소 수형기록카드 사진

한편 노순경 지사의 외손자 김영준 씨는 서대문형무소에 노순경 지사에 관한 안내문이 잘못됐다고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8호 감방 안 전시 안내문에는 스코필드 박사와 노순경 지사의 사진이 크게 박혀있는데, 정작 제목에는 ‘스코필드박사와 유관순’이라고 쓰여 있다는 점이다. 또 본문에는 ‘스코필드 박사는 이화학당 출신의 유관순과 여러 3·1운동 지도자들이 이곳에 수감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면회를 요구하였다’고 기록돼있다.

노 지사는 2013년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해 안내문을 발견한 후 형무소기념관 관리소 측에 항의했으나 보훈처에 권한이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 2015년 4월 국가보훈처에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전시물 내용 수정요청서’를 보냈으나 2019년 현재까지 수정은 물론 답장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김씨는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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