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여성 교육에 희망의 싹 틔워 열매 맺은 교육자 최옥자 선생
[기고] 여성 교육에 희망의 싹 틔워 열매 맺은 교육자 최옥자 선생
  • 역사학자 박용옥
  • 승인 2019.03.14 10:00
  • 수정 2019-03-13 2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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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 설립자 최옥자 애지헌교회 목사가 2월 20일 10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여성 교육 기회 확대에 힘쓴 그의 삶을 역사학자 박용옥 박사가 조명했다.
1954년 8월 최옥자 박사와 주영하 박사가 6·25 때 전소된 충무로 교사 복구공사 기공식에서 첫 삽을 뜬 후 기념으로 흙을 봉투에 담는 모습. 충무로 교사는 이후 수도여자사범대학으로 개편됐다. ©세종대
1954년 8월 최옥자 박사와 주영하 박사가 6·25 때 전소된 충무로 교사 복구공사 기공식에서 첫 삽을 뜬 후 기념으로 흙을 봉투에 담는 모습. 충무로 교사는 이후 수도여자사범대학으로 개편됐다. ©세종대

최옥자 선생은 1919년 10월 21일 함경북도 회령에서 아버지 최원식과 어머니 김원 사이의 2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나 세 살 때 서울로 이사했다. 아버지가 사업으로 경제력이 있었고 자녀 교육열이 높았다. 선생은 갑자유치원, 덕수초등학교와 숙명여학교를 다녔으며, 예술적 재능이 뛰어나 미술 공부를 원했으나 아버지가 “나라 없는 백성이 무슨 그림 공부냐 의학을 공부하는 것이 나라에 보탬이 된다”고 해 일본 동방대학 의학부에 유학해 1942년에 졸업하고, 이어 서울의 경성제국대학 의학부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동경 유학시절 선생은 이은공과 이방자 여사가 조선 여자유학생을 위해 설립한 기숙사 ‘홍희료’에서 생활했는데 이곳에서 나라사랑 정신이 투철한 평생지기들을 벗 삼게 되었다.

선생은 경성인문중등학원을 창립, 교장이었던 주영하 선생과 1944년 4월 8일 결혼했고 그해 여름 신당동에 성동의원을 개원했다. 1946년 5월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는 국민의 절반이 되는 여성교육이 절실하다고 여겨 부부가 공동으로 출자해 지금의 세종대학교 학교법인을 공동 창립하고 선생은 초대 이사에 취임했다. 선생은 여성 교육자 배출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친정아버지는 평소 꿈꾸었던 대학 설립과 교육 발전을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희사하여 세종대학교 재단설립에 큰 도움을 주었다.

지금의 충무로 세종호텔 자리에 수도여자사범대학을 열었으나 캠퍼스가 협소해 1957년 지금의 광진구 군자동 대지를 구입하여 대학교육을 위한 새 캠퍼스의 시대를 열었다. 선생 부부는 초창기에 여성고등교육의 발전을 도모하면서 대학의 규모를 확장하여 1961년에 4년제 대학으로 승격하였고 중등교원을 양성하여 전국에 배출하였다. 1966년, 대학원을 설치하고 선생이 초대 대학원장에 취임했으며 1979년, 남녀공학 체제로 개편하면서 교명을 세종대학교로 바꾸었다.

2007년 2월 세종대 학위수여식. ©세종대
2007년 2월 세종대 학위수여식. ©세종대

선생은 대학을 확대 경영하는 분주한 생활 속에서 학생시절부터 꿈꾸었던 예능적 재질을 곳곳에서 꽃피웠다. 궁중의상 및 전통의상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선생은 서화 도자기 수집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1973년 5월, 웅장한 세종박물관을 건립하였고 이 박물관은 지금도 우리나라 고전 의상뿐 아니라 문화예술연구의 중심이 되어 있다. 또한 복식의 체계적 학문 연구를 위해 1975년 한국복식학회를 창립, 초대 회장에 취임하였다. 자유중국, 미국의 주요도시와 캐나다 등지에서 궁중의상을 비롯하여 무용극, 음악, 미술(도자기) 등 다양한 예술 분야의 공연과 전시를 주도해 한국의 전통문화와 역사를 널리 알리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선생은 1990년부터 4년간 뉴욕의 파슨스(Parsons) 디자인학교에서 회화와 산업디자인 학위를 받은 후 귀국전시회 등 활발한 창작활동을 했다.

선생은 선구자적인 교육자이며 탁월한 학교 경영인이었다. 국내 대학으로는 최초로 호텔경영학과와 관광개발학과를 설치하여 우리나라 호텔 및 관광 사업을 이끈 개척자였고 그 공로로 철탑산업훈장(1973)을 받았다. 2남 2녀의 어머니인 선생이 활발한 교육 및 사회 문화예술과 목회 활동을 한평생 활발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사랑과 이해의 동반자인 부군 주영하 선생의 협력으로 가능했다.

선생은 일본 강점기, 한국동란, 4.19혁명, 5.16군사정변 등 격랑의 한 세기를 헤치면서 희망이 성취된 후의 환희와 보람이 있었으나 한편, 인간적으로는 감내하기 어려운 고난들도 고비 고비마다 있었다. 이를 그의 강한 의지와 지성 그리고  믿음으로 이겨내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부군 주영하선생으로 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기도로 극복하였다. 그의 신앙활동은 하나님의 세계를 넓히는 데 있었다. 선생이 1966년에 창립한 한국여성크리스천클럽(C.W.C.)은 50여년의 전통을 갖는 신앙공동체로서의 기능을 지금도 면면히 이어가고 있다. 믿음의 의지가 강한 선생은 60세에 신학공부를 시작하여 미국의 퓰러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과 목회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1983년 미국 연합감리교회 연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목사 안수 후, 하나님의 쓰임을 받자 세종대학교에 애지헌교회를 세우고 열정적으로 목회활동을 했다.

‘대 숙명인상’ 수상과 ‘신사임당’ 추대 등은 선생의 사회적 공적으로 수여된 상이다. 선생은 나라 위한 다양한 사회활동을 함으로써  많은 수상을 하였으나 지면의 제한으로 일일이 나열치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선생의 100년의 삶은 우리나라 교육계, 여성계, 문화예술계와 한국 교계의 가장 빛나는 큰 별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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