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기반의 친밀한 공동체
새로운 가족 형태로 떠올라
‘각자에게 각자의 가족을 인정’
하는 방향으로 법 변화 필요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가족에 관한 기본법인 민법은 가족을 정의하고 있지 않다. 대신 제779조에서 가족의 범위를‘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와 생계를 같이하는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로 정하고 있을 뿐이다. 가족정책의 기본법인 건강가정기본법에서는 가족을 정의하고 있는데, 이 법은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로 정의하고 있다(제3조 제1호).

이처럼 민법과 건강가정기본법은 가족과 가족의 범위를 정하고 있지만, 이 법 어디에도 우리가 생각하는 일상의 생활공동체로서의 가족 모델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회보장을 비롯한 다양한 제도는 일정한 “가족”을 제시하고, 그 운용에 의해 사회 내에 “가족 규범”을 구축함으로써 “가족”인 것을 실체화시켜 왔다. 이렇게 해서 실체화된 “가족”, 이른바 “정상 가족”은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을 사회적‧법적으로 배제해 왔다.

저출산, 고령화라는 우리 사회의 인구학적 변화와 친밀성의 구조가 변화하면서 가족은 다양화되고, 가족이란 무엇이고 나의 가족은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과 논의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이른바 ‘생활동반자법’ 제정에 대한 요구가 수차례 제기되기도 했다. 이 청원의 공통점은 친밀한 관계여도 법적 관계로 인정받지 못하면 사회복지, 주거, 의료, 세제 등에서 배제되기 때문에 생활동반자법을 제정해서 법률혼 이외의 다양한 (비)성애적 관계를 가족과 동일한 지위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법적으로 승인해 달라는 것이다).

가족은 정치와는 전혀 무관하게 보이고 자연발생적인 공동체로 보이지만 사실은 사회정치적인 역학(?)이 작동하는 장소이다. 부양자와 피부양자, 이성애주의는 가족관계에 있어서 성별위계, 다양한 힘의 차이가 존재하게 한다. 현재의 가족 규범은 남성 지배, 남성 생계부양자를 기반으로 하는 비대칭적이고 불균등한 가족관계를 유지하고 재생산하는데 기여한다.

가족의 혈연중심성과 가족구성원 간의 위계를 배제하면서, 가족이라는 개념과 범위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는 어렵지만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가야 할 과제이다.

시민권에 기반하여 가족이 아닌 개인을 정책 대상으로 접근한다면 현재와 같은 모습의 가족의 의미나 역할, 기능 등은 다른 양상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책의 실질적 수혜대상을 가족이 아닌 개인을 기본 단위로 설정하더라도 현재의 법과 제도 속에서 차별받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적 결합이 배제되는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법의 역할은 ‘각자에게 각자의 가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법이 변화해 나아가야 한다. 기존의 가족 개념을 넘어서는 가족이라는 실체 또는 추상적 공동체에 대한 재구조화를 위해서는 법이 특정한 가족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돌봄을 기반으로 한 친밀한 공동체로서 가족을 이해하고 접근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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