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수장학생 여성 추천 배제
인권위 지적에 뒤늦게 '허용'
한량무 등 여성 활약 높아

천년가무악 최영희 단장이 한량무를 추고 있다. 한량무는 남자춤으로 여겨지지만 성별 구분 없이 누구나 출 수 있다. ⓒ뉴시스
천년가무악 최영희 단장이 한량무를 추고 있다. 한량무는 남자춤으로 여겨지지만 성별 구분 없이 누구나 출 수 있다. ⓒ뉴시스

 

A씨는 2012년부터 동래한량춤 전수교육을 받았다. 기량이 뛰어났던 A씨는 2018년 동래한량춤 전수장학생으로 추천됐으나,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추천자 선정에서 배제됐다. 무형문화재의 전승 체계는 전수장학생을 시작으로 이수자, 전수교육조교로 이어지는데, 무형문화재로 가는 첫 단계인 만큼 전수장학생 선정은 매우 중요하다.

이 같은 부당함에 A씨는 지난해 8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고, 인권위는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인권위는 “동래한량춤의 전형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남성 무용가의 계보로만 전승돼야 한다는 주장은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원칙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봤다.

동래한량춤은 부산의 동래 지역 한량들이 추었던 춤으로, 2005년 부산의 무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됐다. 그러나 시는 남성 춤인 동래한량춤의 원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전수장학생 선정 과정에서 여성 추천자를 받지 않았다.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특징과 생물학적 차이로 인해 여성은 남성이 표현할 수 있는 춤동작을 구사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다. 또한 원형의 변형과 훼손 및 문화재적 가치 저하가 우려된다는 것이 부산시 무형문화재위원회의 판단 기준이었다. 위원회 측은 성차별이 아닌 무형문화재의 원형 유지 때문이라고 주장했지만, 시대착오적 규정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한 문화재위원은 인권위에 “여성 특유의 아름다운 곡선이 춤에 배어있기 때문에 동작이 크고 활달하며 발 디딤이 편안하고 안정감 있는 남성적인 춤사위를 구사하기 어렵다”며 “동래한량춤마저 여성이 전수하게 되면, 여성 일색인 민속무용판에서 남성춤의 정체성이 사라질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인권위의 지적에 시는 뒤늦게 여성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016년 3월 시행된 무형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무형문화재의 보전 및 진흥의 기본 원칙은 기존의 ‘원형’에서 ‘전형’ 유지로 변경됐다. 원형은 원 상태 그대로의 모습 및 불변성을 의미한다면, 전형은 본질적인 특성은 유지하되 부수적인 요인들의 변화와 가변성을 인정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본질은 유지하지만 자연스러운 변화의 가능성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동래한량춤과 유사한 무형문화재인 한량무의 경우에는 여성이 전수교육조교와 보유자 후보로 지정된 바 있고, 무당춤을 기생들이 발전시킨 살풀이춤은 본디 여성춤으로 여겨졌지만, 한국 전통춤의 거목 이매방은 남성임에도 대표적인 전승자로 꼽힌다.

또한 여성인 강선영은 남성인 한성준으로부터 태평무를 사사해 전승 발전시켰고, 처용무도 남녀 구분 없이 전승계보가 이어지고 있다. 한 무형문화재 전문위원은 “과거 무형문화재 시각에서는 생물학적·사회적 성이 일치했으나 점차 변화했다”며 “유교식 제사인 종묘제례에서 연행되는 춤인 일무도 현재는 여성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권위의 권고에 위원회는 뒤늦게 전수장학생으로 여성 두 명을 선발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남성 백조가 등장하는 메튜본의 ‘백조의 호수’나 흑인이 줄리엣 역을 맡는 ‘로미오와 줄리엣’ 등 인종과 성별을 뛰어넘는 작품이 화두였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미투’ 운동이 공연계에 큰 변화를 몰고 오며, 성의 경계를 없앤 ‘젠더 프리 캐스팅’을 내세운 작품이 공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통문화계에 있어서는 아직도 곳곳에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인식이 남아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문화재청이 2018년 12월 공개한 국가무형문화재는 총 142개 종목으로, 명예보유자 17명을 포함 총 185명의 보유자가 있다. 남녀 비율은 남성 69.2%, 여성 30.8%로, 두 배 이상의 차이를 보여 남녀 성비의 불균형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한 민속무용 관계자는 “요즘 시대가 변하고 있는데 역사를 기록하는 춤에 있어서 남성과 여성을 나누는 것은 의미적으로도 맞지 않는 것 같다”며 시대적 변화에 발맞추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임수정 경상대 민속무용학과 교수는 “아직도 몇몇 춤에 있어서는 성별의 제약을 받는 문화가 남아 있다”며 “민속무용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많은 추세이긴 하나, 근본적으로 성별로 제약을 두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성별을 떠나 춤 자체로 평가받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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