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커밍』 (미셸 오바마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고정관념 깨는 삶의 여정
여전히 현재진행 중

『비커밍』 (미셸 오바마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비커밍』 (미셸 오바마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나는 사람들에게 크면 소아과 의사가 될 거라고 말하곤 했다. 왜? 아이들과 노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 어른들이 그 대답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중략) 이제 와서 돌아보면 어른이 아이에게 “크면 뭐가 되고 싶니?” 만큼 쓸데없는 질문이 없는 것 같다. 이 질문은 성장을 유한한 과정으로 여긴다. 우리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 무언가가 되면 그것으로 끝인 것처럼 여긴다. (본문 중에서)

전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부인 미셸 오바마가 쓴 자서전 『비커밍(Becoming)』은 2018년 11월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14주간 연속 1위 등의 기록을 세우고 있다. CNN은 그동안 어떤 정치인의 자서전도 이런 베스트셀러 기록을 지속적으로 유지한 사례가 없다고 했으며(2019년 1월), BBC도 『비커밍』을 2018년 출간된 가장 가치 있는 책이라고 평가했다(2019년 1월).

『비커밍』은 1960년대 시카고 남쪽의 흑인 빈민가에서 태어난 한 흑인 여자아이가 명문 프린스턴 대학과 하버드 법대를 거쳐 시카고 법률사무소의 변호사가 되고 이후에는 버락 오바마와 결혼해 퍼스트레이디가 되는 아메리칸 드림 스토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정치인 자서전에 으레히 등장하는 왜곡된 정치 공방이나 히로이즘(heroism·영웅주의)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미셸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게는 아무것도 없었고, 혹은 모든게 다 있었던” 그녀 자신과 가족 그리고 조국의 이야기이다. 노예였던 증조할아버지, 목수였던 외할아버지, 장애가 있었으나 근면하고 정직하게 살았던 노동자 아버지,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던 어머니, 그리고 지금의 그녀가 되기까지 서로가 서로를 떠받들어 주었던 작은 지지자들과 친구들의 이야기다.

미셸 오바마가 젊은 시절부터 남다른 애정을 갖고 시도한 여러가지 프로젝트의 공통점은 교육에 있다. 우선 미래가 보장되는 변호사 일을 그만두고 시카고에서 처음 시작한 비영리단체 ‘퍼블릭 앨이스(Public Allies)’는 재능 있는 젊은이들을 교육시켜 지역사회 단체에 공공 기관을 서포트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녀는 이 일을 회상하며 “평생 처음으로 내가 직접적으로 유의미한 일을 한다고 느꼈다. 타인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면서도 내 도시와 문화에 연관된 일을 한다고 느꼈다”라고 언급한다. 이후 백악관으로 들어가 퍼스트레이디로 살면서 여성들, 그중에서도 소녀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일에 총력을 기울인다. 특히 남아공을 방문하여 여성지도자 포럼에 참석한 일을 이렇게 기록했다. “당시 아프리카는 총 인구 중 무려 60퍼센트가 25세 미만이었다. 포럼에 모인 여성들도 전부 30세 미만이었고 16세 밖에 안된 이들도 있었다. 그런 여성들이 비영리단체를 조직하거나, 다른 여성들을 훈련시켜서 사업가가 되게 만들거나, 투옥의 위험을 무릅쓰고 정부의 부패를 고발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한자리에 모여서 하나로 연결되었고, 훈련과 격려를 받았다.”

2017년 1월, 미셸은 8년 간의 백악관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간다. 『비커밍』은 새로 이사해 들어간 붉은 벽돌집에서의 저녁 이야기로 시작된다. “배가 고팠다. 침실을 나서서, 발치를 따르는 개들을 거느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냉장고를 열었다. 빵 두 조각을 꺼내 토스터에 집어 넣었다. 찬장을 열고 접시를 꺼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 대신 해주겠다고 고집하는 사람 없이 손수 찬장에서 접시를 꺼내고 토스터에서 빵이 노릇노릇 구워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예전 삶으로 얼추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면 새 삶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미셸 오바마. 그녀의 삶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평가하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진실을 세상에 내놓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유색인종 여성으로, 아니 유일한 여성으로 그녀가 회의 석상, 이사회, VIP 모임 등에서 남겼던 최초라는 종적들이 나중까지 그녀만의 자리로 남아 있지 않기를 바랬다. “내 눈앞에 문이 하나 열릴 때마다 나도 남들에게 문을 열어주려고 애썼다. 그리고 내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우리 모두 서로를 초대하여 받아들이자는 것, 그러면 아마 우리는 덜 두려워할 수 있을 테고, 덜 속단할 수 있을 테고, 쓸데없이 우리를 갈라놓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월 열린 제61회 그래미상 시상식은 인종과 여성을 차별한다는 그동안의 비판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시도를 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동안 줄곧 백인 남성이 맡았던 사회를 흑인 여성 뮤지션 얼리샤 키스가 진행했으며 오프닝에는 깜짝 게스트로 미셸 오바마가 레이디 가가, 제니퍼 로페즈, 제이다 핀켓 스미스와 함께 등장했다. 청중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들은 미셸 오바마의 스피치 내내 기립해 박수를 보내며 환영했다. 그날도 미셸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모타운 음악(흑인 음악의 산실)을 비롯한 모든 음악 덕분에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음악은 우리의 존엄성, 아픔이나 희망, 믿음, 다른 사람들의 생각까지 쉽게 받아들이도록 해줍니다. 모든 사람이 전하는 모든 이야기가 중요합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는 미투 운동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일어났다. 그동안 우리사회가 침묵하고 방조해온 성차별, 성폭력 문제가 여성 연대의 힘이 모아지며 대대적인 사회변혁의 물결로 발전할 수 있었다. 한 여성 검사가 검찰 내 성폭력 비리를 용기 있게 고발하며 시작한 미투운동은 문화·예술, 정치, 스포츠, 교육 분야 등으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하지만 일반여성들이 일상에서 겪고 있는 불평등에까지 이러한 미투 운동 정신을 침투시키기 위해서는 아직도 제도·법·사회적으로 변화시켜야 할 문제가 우리 앞에 산재해있다. 이제는 우리사회가 긴 호흡으로 ‘변화’를 바라보며 지치지 않고 “진실을 세상에 내놓는 일”에 함께 참여할 때다. 미셸 오바마는 그녀의 책 ‘비커밍’을 가리켜 이러한 “마땅히 와야 할 세상”을 위한 흔적이었다 말한다. 우리도 변화를 위한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시작할 때이다. 오늘도 변화는 현재진행형이다.

장윤금 숙명여자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장윤금 숙명여자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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