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법] 권력형 성폭력, 악의 고리를 끊으려면
[모두의 법] 권력형 성폭력, 악의 고리를 끊으려면
  •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상담센터 자문위원
  • 승인 2019.03.15 09:00
  • 수정 2019-03-13 2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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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성 변호사
박찬성 변호사

‘권력형 성폭력’이라는 말이 널리 회자되고 있다. 모든 성폭력이란 비대칭적인 힘의 관계, 위계적 성차에 기한 문제이므로 본질상 ‘권력형’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 논리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더라도, 한 국가대표 선수의 용기 있는 폭로를 계기로 드러나게 된 사건이야말로 권력형 성폭력의 극악한 전형이라는 점에 이론의 여지는 없을 것이다.

필자는 수년 간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의 처리에 관여해 왔는데, 대학 교원에 의해 지도학생에게 가해지는 성폭력 문제와 체육계에서 코치 등 지도자에 의해 선수에게 가해지는 성폭력 문제는 ‘권력형’이라는 점에서 쌍둥이처럼 닮았다.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존재하는 도제 형태의 구조 그리고 위계적 차등관계도 비슷하다. 그러나 사실, 권력형 성폭력의 진정한 요체는 단순히 상하 위계의 불평등성 그 자체에만 놓여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문제의 진짜 초점은 무엇일까? 교원 또는 지도자의 대체(代替)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거나 혹은, 적어도 용이하지 않다는 것. 설령 실제로 불가능한 것이 아닐지언정,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완전히 불가능할 것처럼 막막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음험한 가해행위가 침묵 속에서 반복되어 온 근본 원인이자, 학계 또는 체육계 권력형 성폭력의 진정한 요체 가운데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가해자는 안다. 마땅한 다른 선택지를 피해자가 갖기 어렵다는 것을. 이러한 상황이 가해자에게 무소불위의 추악한 권력을 부여하는 조건이 된다. 가해자 이외에는 해당 분야의 지도자를 쉽게 찾기 어렵다고 생각될 때 피해자도 폭력적 가해행위를 문제 삼기 어려워진다.

그리고 주변인들. 함께 지도받고 있는 동료들이 있다면 문제는 더더욱 복잡해진다. 피해자의 문제제기로 가해자가 교원이나 코치의 자리를 잃게 된다면, 피해자뿐만 아니라 그 동료들까지도 학업‧수련을 계속하는 데에 난감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다른 동료들은 피해자의 문제제기를 옆에서 봉쇄해 버릴 만한 유인을 가지게 된다. 자칫, 함께 하면서 힘이 되어주는 동료가 아니라 상반된 이해관계자가 되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동료들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가로막지는 않더라도 피해자 스스로 먼저 포기해 버릴 여지가 생길 수도 있다.

여기서 대체 불가능성을 대체 가능성이라는 새로운 조건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우선, 중대한 성폭력이 발생했다면 가해자를 대체하기에 적당한 교원이나 지도자를 지체 없이 선별해 임용해야 할 상세하고 구체적인 법적 의무를 그 소속기관에 부과할 것을 제안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위배했을 때 기관에 그 책임을 엄정하게 물을 수 있어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우리 법은 아직 보편적인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채택하고 있지는 않지만 ‘제조물 책임법’ 등에서는 일종의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볼 수 있는 특별한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대체교원 등의 신규 임용에 소모되는 비용 상당액을 기준으로 소속기관이 가해자에게 징벌적 수준에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시킬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신설하는 것은 어떨까? 가해자 개인이 피해자에 대해서 지는 손해배상책임과는 별도의 책임으로서 말이다.

사용자책임의 일반적 법리를 거스르거나 무시하자는 뜻은 아니다. 피해 예방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잘못이 소속기관에도 있다면 이때는 그 책임을 방기한 기관이 부당하게 이득을 얻는 일은 당연히 없어야 하며 그 잘못에 관한 책임은 기관에도 따로 엄격히 물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기관이 나름대로의 충분한 예방노력을 했던 점이 인정될 수 있어서 직접 가해자 아닌 소속기관의 책임을 논하는 것까지는 불필요한 상황이라면 이때는 최대한 지체 없이 대체교원을 찾아낼 수 있게끔 하는 유인을 기관에 제공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선의에 기대는 대응책으로는 충분치 않다. 피해자의 학습권 등에 추가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수준의 막연하고 추상적인 규정만으로 소속기관으로부터 제대로 된 보호조치가 이뤄지리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우리에게는 실효적인 유인과 강제적인 불이익조치를 수반한 구체적 대안이 필요하다. 충분한 의지와 노력이 있다면 많은 경우에 교원이나 지도자의 대체가 정말로 불가능한 것도 아닐 것이다. 심도 깊은 후속 논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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