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보다 높았던 조계종 종단의 벽이 드디어 무너졌다. 우리나라 불교 역사에서 처음으로 조계종 종단 부장급에 비구니 스님이 임명된 것. 탁연스님의 문화부장 임명 건을 바라보며 불교 안에 깔려있는 ‘가부장성’과 그 변화의 가능성을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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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운문사>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온 지 1600여 년. 차마 손으로 헤아리기 어려운 숫자다. 그 긴 시간동안 우리 불교 정치에는 ‘여성’이 없었다. 이는 불교계의 ‘청와대’로 불리는 종단 구성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지금까지 총무원장, 포교원장, 교육원장 등 종단의 요직에는 비구니가 한 명도 없었다. 종무원의 자격을 나타내고 있는 종무원법은 ‘비구니 법계 요건은 비구법계에 준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때문에 탁연스님의 임명을 두고 불교 내부에서 ‘종무원법에 총무원 부·실장은 대덕 이상의 법계를 품수한 자라고 정해있고, 대덕은 비구의 법계이므로 비구니스님의 문화부장 임명은 위법이 아닌가’하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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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운문사>

그러나 조계종 측은 “종무원법·총무원법이 중앙종무기관에서 비구니스님의 종무직을 제한하고 있지 않다”는 해석을 내렸다. 불교여성개발원 한주영 연구과장은 “최고 의사결정 기관인 종무회의에 여성이 참여할 수 없었던 것은 종무원법을 비롯한 불교 제도의 불평등 때문”이라며 “탁연스님의 문화부장 임명은 종단 운영에 비구니 참여가 확대되는 혁신적인 변화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불교 페미니스트들이 나설 때

가부장제의 밑바탕에 유교가 있다면 불교 안 여성차별의 핵심에는 팔경법(八敬法)이 있다. ‘100세의 비구니도 처음 출가한 어린 비구에게 절을 해야 한다’를 비롯해 8가지의 내용을 담은 팔경법은 제도적인 남성중심주의를 강화한다는 면에서 지적을 받아왔다. 운문사 세등스님은 “오늘날 불교사회 속에 거의 모든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남성지도자들은 팔경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많은 비구들은 팔경법이 제시하는 비구중심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일부 지도자급 비구들은 팔경법이 ‘부처님 말씀’이라며 비구니에게 권한을 양보하려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이혜숙 겸임교수도 “팔경법은 어떻게 읽어도 명백하게 남성출가자 중심의 권위체계를 세우고 여성출가자는 그 아래 예속되도록 하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비구가 되기 위한 계율은 250조인데 비구니의 계율은 348조며 여성이 출가하기 위해서는 비구니계를 거친 후 다시 한 번 비구계를 거쳐야 하는 것도 불교 안 여성차별의 예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팔경법이 부처님 말씀으로 전해지고 있는 만큼 더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상사 주지인 도법스님은 “팔경법은 당시 상황에서 여성 출가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만들어졌으며 현실적으로 많이 바뀐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좀 더 다듬어지고 재조정 될 필요가 있다”고 인정했다. 그는 또 “팔경법에 대한 논의는 비구니 사이에서만 이뤄질 게 아니라 비구들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도록 공론화 시켜야 한다”며 “종단에서 이야기의 장을 만드는 것이 가장 좋다”고 조언했다.

올해부터 이화여대에서 ‘불교와 페미니즘’을 가르치고 있는 김정희 교수는 “가부장제가 바탕이 된 8경법은 오히려 부처님의 첫 마음과 맞지 않는 내용이죠. 부처님 말씀으로 돌아가려면 팔경법이 현실에 적용돼서는 안될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불교 페미니스트들이 나서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비구니 종단 참여 더 늘 것

유교보다 1000년 가까이 먼저 들어온 불교. 제도와 관습이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어렵다. 그러나 1600년의 불문율이 허물어졌기에 변화의 물꼬는 튼 셈. 한주영 과장은 “사찰운영위원회나 신도회장에는 이미 여성이 많이 진출했으며 사회복지 등 대중과 가까운 불교 운동도 여승들이 앞장서고 있다”며 “비구중심으로 운영되는 종단에 여성 참여를 확대시키자는 목소리를 높일 것”이라고 제시했다. 지난 2000년에 불교여성개발원이 생긴 것을 시작으로 경제정의실천 불교시민연합에 여성위원회가 생기고 중앙승가대학교에 ‘비구니 연구소’가 생기는 등 불교 내부의 여성 운동도 한창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젊은 불교를 위한 여성연대를 내건 불교여성학연구모임(cafe.daum.net/sakyadita)도 만들어졌다.

총무원장 법장스님은 총무원장 선거를 앞둔 공약에서 ‘비구니 위상을 제고하고 교단 활동을 확대하겠다’고 내걸었으며 “탁연스님 임명은 사회와 종단의 여성 비율과 시대적인 요청을 반영했다”고 말했다. 조계종 박정규 홍보계장도 “그 동안 관습이 비구니의 종단 참여를 제한했다면 탁연 스님을 필두로 비구니들의 종단 참여는 더욱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1만2000여명의 스님들 가운데 비구니(사나미 포함) 수는 절반에 이르며 천만에 가까운 신도는 대부분 여성이다. 여성이 ‘이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종교 밖 현실세계와 비슷한 모습이다. 부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안 된다는 ‘종교의 신성성’보다는 성(性)에 구애받지 않고 ‘편견과 집착 없이 삶 속에서 스스로 깨닫고, 남을 깨닫게 하는’ 이를 부처라 할 수 있을 때 불교는 그 본래의 뜻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붓다는 팔경법이라는 성차별 제도가 만들어지고 후세에 전해진 것이 당신의 실수였다는 것을 인정하시리라고 믿는다. 이 시대의 불자들은 성차별 제도와 관습을 없애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불교계의 이단자’라는 오명도 아랑곳하지 않는 세등스님의 주문이다.

조혜원 기자nancal@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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